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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연지구 디 오리지널 4K- 그 놈의 사랑은 왜 50년을 버텄을까.
그 놈의 사랑은 왜 50년을 버텄을까. -영화 <연지구>. 그때 그 홍콩의 밤거리는 축축한 습기와 더불어,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전조’같은 것들이 공기 중에 떠 다녔던 것 같다. 1987년. 영화 <연지구> 속 배경이다. 그때 홍콩인들은 분주했다. 누군가는 주식을 샀다가 망했고, 누군가는 캐나다 이민 서류를 쓰면서 나라를 바꿀 준비를 했다. 그 소란한 홍콩의 소식이 바다를 건너오던 무련, 서울의 학생이었던 필자는 회수권을 모으고 있었다. 두 장이면 풀빵이 하나와 바꿔 먹을 수 있다. 팥은 늘 적었고, 우리는 늘 배고팠다. 학교 앞에서 풀빵으로 바꿔먹으며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을 이야기했다. 총은 슬로모션으로 쏘는 게 맞다고 믿었고 긴 바바리코트에 이쑤시개를 입에 물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취권으로 대변되던 성룡의 홍콩영화가 눅눅함과 끈적함, 그리고 홍콩의 비릿한 밤거리를 조명한 누아르 영화들로 변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대학생 형과 누나들이 민주항쟁의 한복판에 있었고, 세기말적 분위기와 새 시대에 대한 불안과 뜨거움이 교차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 혼돈의 1987년 한복판에, 영화는 1934년의 화려한 유곽 ‘의홍루’를 소환한다. 남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여화(매염방)의 눈빛, 그 눈빛과 목소리에 단번에 포획된 진진방(장국영)의 시선이 마주치는 그 찰나 그 두 사람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때는 화려했던 청나라가 몰락하고 내전과 격동의 시기인 중화민국 시절이다. 이때 여화가 부른 노래는 광동 전통음악인 <객도추한(客途秋恨)>이라고 한다. 객도, 나그네 길. 추한, 가을 느끼는 한(恨). 떠도는 나그네 길에서 맞는 가을의 슬픔이라니. 남성 화자가 기생과의 짧은 사랑을 회상하며 다시 만날 수 없는 현실을 한탄하는 노래이다. 여화는 바로 그 남성 화자의 역할로 남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다가 진진방을 만난다. 이 노래를 아는 중국인이라면 이미 이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를 스포한 셈이다. 그들은 사랑했다. 의홍루의 붉은 등불 아래서, 신분도 시대도 아랑곳없이. 하지만 기생이었던 여화와 부잣집 도련님 진진방은 끝내 그 차이를 뛰어넘을 수가 없었다. 사랑을 이어갈 수 없던 두 사람은 사랑의 증표인 연지구(臙脂扣, 연지가 담긴 화장품 장신구)를 목에 걸어주며 저승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여화는 저승에서 50년이 넘도록 진진방을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1987년, 이승으로 내려온다. 사실 흔한 이야기다. 사랑이 시들기 전에 삶을 꺾어 버리는 비극적 사랑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랬고, 와타나베 준이치의 <실락원> 속 구키와 린코도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연지구>는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죽음 이후에 50여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그놈의 사랑’을 확인하려 드는 데서 진짜 비극이 시작된다. 1987년, 구천을 떠돌던 여화가 차가운 콘크리트 보도블록 위에 다시 섰을 때는 여화가 알던 아름답고 몽환적이며 화려했던 홍콩이 아니었다. 여화의 눈을 통해 우리는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섰다는 변화가 아니라, 한 시대의 정서가 통째로 증발해 버린 것에 대한 당혹감이다. 화려했던 목재 건물도, 붉은 치파오도, 금빛 장식도 사라졌다. 대신에 회색 콘크리트위에 그저 무색인 와이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홍콩의 반환을 앞두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홍콩인들은 과거의 좌표를 잃어버린 유령 여화의 불안을 비추는 거울처럼 보였다. 영화는 그렇게 과거의 비극적 낭만과 세기말적 우울을 겹쳐 놓으며 묻는다. 현대인이 바쁘게 살아남기 위해 버티는 현실이 반세기를 버틴 순애보보다 값진 것인가라고. 결국 여화는 진진방을 찾아낸다. 진진방은 죽지 않았었다. 그리고 살아남아 늙고 초라해져 있었다. 여화는 이십대의 꽃다운 모습 그대로이지만, 진진방은 단역 배우로 겨우 풀칠하는 노인에 불과했다. 두 사람이 마주한 순간, 말 대신 긴 침묵이 흘렀다. 그럴 수밖에. 그 재회의 순간은 숭고하지도 눈물겹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독하게 환멸스러웠다. 인생을 바쳐 기다린 결과가 이런 비루한 생존의 찌꺼기였다니. 여화는 연지구를 돌려주며 말한다. 이제 당신을 기다리지 않겠다고. 그건 배신에 대한 원망이라기보다는 오래 붙잡고 있던 과거의 환상에서 비로소 탈출하는 영혼의 마지막 인사였다. 진진방은 비겁하게 살아남아 추해졌지만, 여화는 그 약속을 지키려 했던 그 뜨거운 집념 덕분에 영원히 그 시절의 찬란한 모습으로 남았다. 영화는 그렇게 1930년대의 그 뜨겁고도 서늘한 아름다움과 1987년의 불안했던 홍콩의 공기를 한권의 앨범처럼 묶어 우리 앞에 내놓는다. 이제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 시절의 홍콩. 회수권을 아껴서 극장표로 바꿔보던 홍콩영화. 그리고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장국영과 매염방. 아이러니하게도 두 배우는 2003년, 약속이라도 한 듯 나란히 모두 우리 곁을 떠났다. 불멸의 별이 되어. 연지구 속에 있던 붉은 연지는 지워졌어도 그 자리에 남은 서늘한 자국은 여전하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어쩌면 지키지 못한 약속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비루한 진실을 마주하고도 기꺼이 과거의 자신을 놓아줄 수 있는 그 서글픈 용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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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김경태, 현장에서 답을 찾는 지역 일꾼
[GN NEWS=가평군]이성아 기자=가평 지역에서 오랜 시간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봉사의 길을 걸어온 김경태(52) 국민의힘 당원이 경기도의원 출마를 준비하며 지역 정가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화려한 정치 경력보다는 현장에서 축적해 온 생활 경험과 주민과의 소통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현장형 인물’이라는 평가다. 김경태 예정자는 현재 국민의힘 SNS 가평군 위원장을 맡아 지역 현안과 정책 정보를 온라인을 통해 공유하고 주민들과 소통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SNS를 활용해 지역 정책과 행정 현안을 쉽게 전달하며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 정치권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그는 이전에 가평군 인권센터장과 설악마을공동체 대표를 역임하며 지역 공동체 활성화와 주민 참여 확대를 위한 활동을 이어왔다. 주민 생활과 밀접한 문제를 직접 듣고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방식으로 지역 사회와의 접점을 넓혀 왔다는 평가다. 풀뿌리 활동으로 다져온 지역 기반 김 예정자의 정치 행보는 지역사회 활동에서 시작됐다. 설악면 주민자치위원과 새마을지도자, 기동대원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의 크고 작은 일에 참여해 왔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생활 현장의 문제를 가까이에서 접해왔다. 또한 경기도교육청 주민참여예산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책과 예산이 지역 사회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경험을 쌓았고, 가평군 자유총연맹 설악면 회장을 맡아 지역 공동체 결속과 사회 봉사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김 예정자는 “주민들과 눈을 맞추며 들었던 생활 속 어려움이 곧 정책의 출발점이 된다”며 “행정과 정책은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완성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가평의 잠재력을 현실로 만들겠다” 김경태 예정자는 가평이 가진 자연환경과 관광 자원을 중요한 성장 기반으로 평가하면서도 교통, 교육, 의료 등 생활 기반시설 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가평은 수도권과 가까운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교통 인프라와 의료 서비스 등 생활 기반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경기도와 가평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통해 예산 확보와 정책 반영을 이끌어내는 도의원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가평이 더 이상 소외 지역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지역의 강점을 살린 정책과 지원을 적극적으로 끌어내겠다”며 “지역 발전을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원칙과 책임의 정치” 김 예정자는 스스로를 ‘현장에서 답을 찾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선거 시기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정치가 아니라 평소에도 주민 곁에서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믿습니다.” 이어 그는 “원칙을 지키는 정치, 약속을 책임지는 정치가 결국 신뢰를 만든다”며 “군민 한 분 한 분의 목소리를 소중히 여기고 낮은 자세로 지역을 섬기겠다”고 말했다. 설악면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역 활동을 이어온 김경태 예정자의 도전이 향후 가평 정치 지형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지역 사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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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혹독한 추위, 흔들리는 본성 -영화
[GN NEWS=가평군]이성아 기자=가끔은 잘 만든 B급영화가 어설픈 대작보다 더 정확히 우리의 감각을 건드려준다. <콜드 미트>는 바로 그런 영화이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생존 스릴러다. 영하25도, 폭설, 산속에 고립된 차량, 휴대전화는 먹통. ‘인간 대 자연’이라는 장르의 공식을 따른다. 그러나 이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자연이 배경이 아니라 영화를 구성하는 강력한 서사의 하나가 된다. 영화는 익숙한 장르문법으로 시작한다. 데이비드(앨런 리치)가 학대하는 전 남편에게서 웨이트리스 애나를 구하며 등장한다. 관객은 의심하지 않고 그의 서사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눈길에 미끄러지는 사고로 인해 고립되고 그의 차 트렁크가 열리는 순간 영화는 관객의 윤리적 판단을 전복시킨다. 첫 번째 반전은 놀라움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쉽게 인물을 ‘선’으로 분류하는지를 드러낸다. 이후 영화는 속도와 결을 바꾼다. 눈보라의 혹독함 속 고립된 차안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심리전 대화, 제한된 공간, 제한된 인물, 제한된 정보. 이 가운데에 정보를 두 인물이 대사로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선택으로 서사를 밀고 나간다. 세바스찬 두루인 감독은 인물의 선택이라는 연출로 관객들도 선택의 갈림길을 생각할 수 있도록 내어준다. 이런 방법만으로 관객이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각본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비록 인과관계의 치밀함이나 대사의 정교함에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 감독은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선과 악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밝혔지만 영화는 철학을 확장하고 표현하기 보다는 긴장 유지에 집중했다. 그래서 존재론적 탐구보다는 체감형 생존극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무너지지 않고 밀고 가는 힘은 미장센에 있다. 세바스찬 드루인 감독은 프랑스 VFX스튜디오 출신으로 시각효과 분야에 오랜 경력을 쌓았다. 거대한 스펙터클을 설계하던 사람이 이 작품에선 공간을 최소화하고 과시적 CG가 아닌 프레임의 정밀함과 클로즈업으로 영화적 감각을 극대화시켰다. 피부, 속눈썹에 맺힌 고드름. 차 안을 익숙하면서도 생존 투쟁터로 재구성했다. 특히 사운드 설계는 인상적이다. 눈과 함께 몰아치는 바람소리는 극도의 압박감을 주고, 금속이 수축하는 소리, 거칠어지는 호흡, 차체를 때리는 눈보라. 관객은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추위를 듣는다.’ 자연은 또 하나의 빌런으로 기능한다. 밖으로 나가면 얼어 죽고, 안에 있어도 안전하지 않다. 서사는 넓히기보다는 온도를 낮추는 표현으로 전환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선택한 것은 서사적 완성도보다 물리적 체감을 택했다. 이 영화는 이야기를 확장하지 않는 대신 끊임없이 조건을 악화시키는 방식으로 긴장을 설계한다. 그렇게 했기에 이 작품이 우리의 감각을 건드리고, 우리를 생리적으로 얼어붙게 만들어 버린다. <콜드 미트>는 거대한 철학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눈보라 속에 차 한 대를 세워두고 묻는다.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것은 당신의 신념인가, 아니면 당신의 본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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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영화가 잃어버린 '인간의 무게’
<사진자료=프로젝트Y 포스터> 영화<프로젝트 Y>가 잃어버린 '인간의 무게’ 영화 <프로젝트 Y>의 오프닝과 엔딩씬은 지하보도에서 걷는 미선(한소희)과 도경(전종서)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영화전체의 톤이 무엇인지, 지향하는 스타일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90년대 홍콩영화의 그것이었다. 서울의 밤 지하보도의 인공광과 레드, 블랙의 강렬한 대비를 시킨 이 장면을 가장 힘주어 찍은 이환 감독은 <영웅본색>, <천장지구>처럼 홍콩 영화 르네상스 시기의 색감과 빛을 구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왜 이 영화는 90년대 홍콩 영화의 색감과 미장센을 구현하고 싶었을까? 그것은 이 영화가 세기말적인 청춘의 방황과 갈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왕가위 감독으로 대변되는 90년대 홍콩영화를 들여다보면 번잡한 도시 속 청춘들의 방황, 화려한 네온사인 속에 청춘의 고독을 담아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군가의 마음(사랑)을 갈구했고,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을 먹으며 사라져가는 시간과 인간성을 붙잡으려 몸부림쳤다. 90년대엔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때문에 그들이 누리던 모든 것들이 사라질 거라는 세기말적 두려움과 불안감이 팽배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6년에 그 홍콩영화의 변주곡을 자처한 <프로젝트Y>에는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대신 유통기한 없는 금괴를 위해 자신의 삶을 팔아치운다. 여기에선 그 찬란한 슬픔도, 청춘의 무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황금의 욕망을 향한 맹목적인 질주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사진자료=프로젝트Y 스틸컷> 세기말적 미학의 오용 이 영화는 90년대 홍콩영화의 색감과 미장센을 복제하고자 하지만 그 색채 아래 담긴 것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파괴되어가는 인간성의 전시였다. 영화는 ‘우연히 알게 된 정보로 유흥가의 실세 토사장의 은닉자금을 훔치려던 미선과 도경이 돌이킬 수 없는 수렁을 향해 질주’하는 서사를 담고 있다. 문제는 이 ‘질주’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이다. 폭력과 피로 가득한 이 영화는 어떠한 것으로 승화되지 못한 채 관객은 그들의 폭력을 관조하며 소리와 촉각의 자극을 탐닉하게 만든다. 이는 ‘탐미주의’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미적 빈곤이자 스타일의 과잉이 낳은 불쾌한 결과물이다. 거세된 저항과 매몰된 연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2007년작 <데쓰 프루프(Death Proof)>는 여성들이 남성 살인마(가해자)를 응징하며 얻는 전복적인 쾌감을 주는 동시에 ‘복수’와 ‘해방’이라는 여성서사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프로젝트 Y>는 물질적 몰락에서 헤어 나오고자 인간성을 거세하는 퇴행을 보여준다. 낮에는 꽃집 주인으로, 밤에는 유흥가의 에이스로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미선과 도경은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는다. 그들이 저항해야 할 대상은 명확하다. 토사장으로 대변되는 자본권력과 그들을 착취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저항을 7억원의 현금보따리와 금괴상자의 탈취라는 또다른 범죄로만 치환한다. 저항의 대상은 명확하지 않다. 저항의 방식은 오직 폭력과 누가 물질을 가로챘것인가의 서사에서 관객이 느낄 수 있는 것은 허무뿐이다. 이렇듯 문학과 영화가 쌓아올린 ‘여성의 연대와 저항’마저 자본의 논리와 세기말적 무력감에 매몰되었다는 점이 안타깝다. “엄마가 죽었어. 엄마가 죽었다고!”라며 도경(전종서)에게 원망하듯 외치는 미선(한소희)에게 도경은 ‘너도 엄마가 죽기를 바랬잖아’라고 받아친다. 엄마(김신록) 역시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살아가지만 도경과 미선이 가져온 황금을 보고 기회를 다시 잡으려는 추한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비춰진다. Y세대인 도경에겐 '엄마의 시대'가 저무는 것을 슬퍼하고 동정하는 것은 잠시이고 당연한 폐기로 받아들인다. 과거(역사)에 대한 부채 의식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생존'이라는 본능만 남는다. 이들의 관계는 마치 영혼을 잃어버리고 본능적 욕망만이 존재하는 좀비 공동체에 불과했다. 자신을 구해준 엄마(김신록)은 도경에게 두 손으로 얼굴을 붙잡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 모든 것이 잘 설명된다. “물러 터졌어. 우리 도경이. 너 꼴리는 대로 살아. 너 꼴리는 대로 살라고!” 감독은 "차에 한 번 올라타면 끝까지 달려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 것처럼, 영화는 멈추지 않는 질주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질주의 끝에 무엇이 있는가? 미래와 희망이 거세된 채 금괴라는 물질적 가치를 쫓다 그 세계를 떠나버리는 결말은, 탈출이라기보다 열패감 끝에 시스템에 투항한 현실 순응자의 뒷모습처럼 보였다. <사진자료=프로젝트Y 스틸컷> 복제되지 못한 ‘인간의 무게’ '사람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고 하는 감독의 말과는 달리,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의 욕망을 위해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장치처럼 보인다. 미선과 도경의 선택은 예측 가능하고, 그들의 행동은 플롯을 진행시키기 위한 장치에 그친다. 평범한 일상을 꿈꾸던 그들이 범죄의 세계로 뛰어드는 과정에서 내적 갈등이나 도덕적 고뇌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90년대 홍콩 영화가 '파멸' 앞에서도 인연의 찰나와 고독의 무게를 긍정했다면, <프로젝트 Y>는 그 자리에 냉소와 생존 본능만을 채워 넣었다. 한소희와 전종서라는 아이코닉한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겪는 고통은 관객에게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비극의 전시'로 휘발된다. 90년대 홍콩 느와르의 스타일은 복제했을지언정, 그 스타일이 지탱해야 할 '인간에 대한 연민' 그 무게감까지는 담아내지 못한 셈이다.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디스토피아는 예술적 통찰이 아니라 냉소적 상업주의 산물로 전락하기 쉽다. 이 영화가 남긴 ‘불쾌한 허무’는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상업주의적 포장의 한계 이 영화는 제작 단계부터 최근 극장에서 보기 드문 여성 투톱영화로 화제를 모았다. 토론토국제영화제 특별 프레젠테이션 섹션초청, 이환감독의 전작 <박화영>이 영화제에서 쌓아올린 명성에 한소희 전종서라는 대중적 스타파워를 결합한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마케팅 전략이 오히려 작품의 본질을 가리거나 작품의 방향성마저 흐트러 놓은 것은 아닐까. 여성 주인공에 장르물을 붙이면 여성서사의 완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라도 하는 것일까. 여성 서사가 단순히 '여성이 주인공인 범죄물'을 넘어 시대의 울림이 되려면, 총구와 차가운 네온사인 너머에 있는 '억압된 인간, 차별받는 인간에 대한 무게'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독자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해졌다. 독자들은 이 영화를 '희망이 거세된 시대의 자화상'으로 읽을까? 이 영화가 주는 불쾌함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 존엄'의 가치를 환기할까? 제작진이 의도한 '좋은 배신감'이 과연 관객에게 긍정적인 카타르시스를 줄 것인지, 아니면 그저 공허한 냉소만을 남기는지는 관객 각자의 몫이 될 것이다. 냉소와 통찰은 한 끗 차이이다. 마치 윳놀이의 ‘도’와 ‘빽도’처럼 말이다. 단순히 세상은 망했고 희망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예술적 게으름에 가깝다. 이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왜, 여전히 인간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계속 살아내야 하는가’에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게 해야 한다. "미선과 도경은 세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정작 그들이 쏜 것은 자신들의 마지막 인간성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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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이념이 타버린 터널 속, 인간은 여전히 유효한가.
<사진자료=영화<터널>포스터> 이념이 타버린 터널 속, 인간은 여전히 유효한가. 베트남 전쟁을 다룬 수많은 영화는 대게 두 가지 시선 중 하나를 택해왔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비극적 충돌로 보거나, 혹은 화염방사기와 헬기 소리로 대변되는 압도적인 화력의 스펙터클과 영웅주의로 소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부이 탁 추옌(Bùi Thạc Chuyên) 감독의 영화 <터널>(Địa Đạo)은 이 모든 외피를 난폭하게 벗겨낸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꾸찌 터널은 베트남 전쟁 당시 게릴라군이 압도적인 화력을 가진 미군에 맞서 생존과 투쟁을 이어가기 위해 거미줄처럼 파내려 간 터널이다. 총 길이 약 250km에 달하는 거대한 요새였다. 이 영화 속에는 승리에 대한 결연함, 숭고한 희생 대신에 물속에서 대나무 빨대에 숨을 의지한 채 살아내야 하는 원초적인 공포와 지독한 생존 본능만을 응시한다. <사진자료=영화<터널>스틸컷> 영화 <터널>은 1967년 꾸찌터널에서 미군에 대항하던 스물한 명의 해방군의 전사를 따라간다. 이들은 실존 인물이 아닌 감독이 의도하는 영화적 픽션이다. 빛 한 점 없는 지하벙커 속에서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그곳에서 ‘인간’이라는 정의는 여전히 유효한가를 묻는다. 부이 탁 추엔감독은 꾸찌터널이 구축되어 있어있는 지하 3층의 입체적인 구조를 고증하여 세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수직으로 이동시키며 공간을 수직적으로 분할하였다. 이는 영화의 핵심 메타포를 구축하기 위함인데, 지상은 이념의 공간이다. 성조기가 펄럭이고, 화염방사 전차가 불을 뿜어대고 네이팜탄이 쉴세없이 떨어진다. 그야말로 문명이 설계한 지옥이다. 반면 지하는 생존의 공간이다. 어둡고 인물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채 그들의 거친 숨소리와 흙을 파는 손의 움직임만이 사운드를 채운다. 이곳에서 인물들은 이데올로기를 토론하지 않는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뭉쳐야 했으며, 인간이라는 종을 잇기 위해 섹스하며, 죽지않기위해 살상한다. 특히 터널 벙커 깊숙한 곳에 두 남녀가 격렬하게 뒤엉키는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논란의 여지를 만든다. 하지만 이 장면이 단순히 생물학적 욕구의 발산으로 보이지 않는다. 터널 위에서 떨어지는 포탄가운데서도, 죽음이 가득한 공간에서 생명을 잉태하려는 몸짓. 그것은 절망에 대한 원초적인 반역이며 미래를 향한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취하는 행동이 결국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물학적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을 적나라하게 말한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인간 존엄의 타락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베트남의 원동력을 발견한다. 명분은 사라지고 본능만 남은 상태에서 투쟁은 오히려 그 무엇보다 강력했다. 이념을 위해 죽는 사람은 흔치 않지만, 살고자 하는 생명체의 의지는 결코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터널 속의 삶은 비참하지만 그 비참함이야말로 침략자가 결코 정복할 수 없었던 ‘뿌리’였다. 그것이 저항이었고, 베트남의 정신을 그 속에서 찾아야 볼 수 있다. <사진자료=영화<터널>스틸컷> 베트남 통일 50주년을 맞아 자국 관객에게 주는 메시지는 “우리는 이렇게 비참하게, 그러나 지독하게 살아남아 오늘을 만들었다”일 것이다. 마치 선전영화로 보일법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감독이 묘하게 배치한 밑바닥의 저변에 깔린 메시지를 읽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승리에 대한 자취(自取)가 아니라 생존에 대한 경외다. 이상하게 기억에 오래 남는 장면이 있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군이 원시적인 죽창에 찔려 죽어가는 장면이다. 20세기의 기술을 상징하는 미군이 이 원시적인 도구에 찔리는 순간 전쟁은 문명과 문명과의 전쟁이 아니라 육체와 육체의 충돌로 격하된다. 죽어가던 미군이 마지막을 내뱉은 말을 ‘물을 달라’라는 외침이었다. 그가 마지막에 갈구한 것은 승리도, 성조기도, 민주주의 수호도 아니었다. 단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 원소였다. 이 순간 흙탕물을 마시던 베트남 게릴라와 미국 군인은 갈증을 느끼지는 생명체로서 평등해진다. 인간이 겹겹이 쌓아올린 기술, 이념, 힘은 갈증 앞에서 무력해질 뿐이다. 이쯤 되면 영화는 프로파간다(선전영화)를 넘어 실존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참호 속에서, 가자기구의 무너진 건물 아래서 인간은 여전히 ‘물을 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터널>은 이념의 이름으로 타인의 육체를 파괴하는 행위가 얼마나 원시적이고 헛된 것인지를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인 반전(反戰) 메시지를 완성한다. <사진자료=영화<터널>스틸컷> 극장 문을 나서면서도 그 압도적인 공포의 잔상이 꺼지지 않았다. 화염방사 전차가 숲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드는 거대한 불길이 눈에 새겨졌다. 고막을 찢는 듯한 네이팜탄의 폭음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예고 없이 번쩍이며 끊임없이 쏟아지는 총알의 빛과 날카로운 소음. 이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하나, 땅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마치 기독교인들이 로마황제의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카타콤’을 연상시킨다.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지하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렸다면, 베트남인에게 꾸찌터널은 생존이라는 신을 모시는 성전이 되었다. 영화 <터널>이 보여주는 지독한 생존의 풍경은 우리에게 낯선 타국의 역사가 아니다. 한국의 근현대 역시 거대한 화염이 지상을 휩쓸고 간 터널의 시간이었다. 식민지의 어둠을 견뎌낸 정신적 카타콤부터,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방공호로, 숲으로 기어들었던 우리의 어머니들까지. 우리 역시 ‘물을 달라’라는 비명이 가득한 지옥 속에서 오늘을 일궈냈다. 이 영화<터널>은 마치 우리에게 질문하고 건네고 있다고 느꼈다. 베트남의 꾸찌터널이 지금의 베트남을 있게 한 원동력이듯, 한국을 지탱해온 그 질긴 생존의 에너지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혹시 그것은 경쟁과 성장이라는 또 다른 전쟁터로 변질되지는 않았는가. 터널 속에서 배운 생명에 대한 경외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개인주의와 혐오 속에서도 여전히 마르지 않는 마중물처럼 흐르고 있는가,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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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마을교육공동체, 추억 담은 찻집 수익금으로 따뜻한 나눔 실천
[GN NEWS=가평군]기문정 기자=가평마을교육공동체가 올 한 해 동안 지역과 함께 펼쳐온 활동의 결실을 따뜻한 나눔으로 이어갔다. 지난 12월 19일 진행된 ‘추억의 일일찻집’ 행사 수익금 100만 원을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지정기탁금으로 가평군청 행복돌봄과 아동복지팀에 전달하며 지역사회 돌봄 실천의 모범을 보였다. 이번 일일찻집 행사는 옛 추억을 되살리는 레트로 감성과 주민 참여형 나눔 문화를 결합해 지역 주민의 큰 호응을 얻었으며, 음식과 음악, 깜짝 이벤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아라비안나이트7080(구 유튜브)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2014년 설립된 가평마을교육공동체는 지난 10여 년간 팜파티, 꿈의학교, 마을밥상, 영화 만들기 등 다양한 교육·문화활동을 통해 마을과 학교, 그리고 주민이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 모델을 구축해 왔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마을 영화 만들기’, ‘가마공 벼룩시장’ 등 주민이 주체가 되어 기획하고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공동체 역량과 나눔의 가치를 확산해 왔다. 가평마을교육공동체 관계자는 “이번 나눔이 단발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연대하고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 문화로 확장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세대와 이웃을 잇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해 더 많은 주민이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평군 관계자는 “지역 공동체의 자발적인 참여로 마련된 이번 기탁은 보호종료아동들에게 실질적인 응원과 힘이 될 것”이라며 “전달된 후원금은 자립을 준비하는 보호종료아동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정성으로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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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마을교육공동체, 함께해서 더 따뜻했던 ‘가마공 벼룩시장’ 성황리 마무리
[GN NEWS=가평군]기문정 기자=가평마을교육공동체(가마공)가 주관한 ‘가마공 벼룩시장’이 지난 11월 2일 가평 철길공원에서 개최되어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민들과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따뜻한 참여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약 20여 팀의 셀러가 함께한 이번 행사는 아이들이 팀을 이루어 직접 물건을 준비하고 판매에 참여하면서 단순한 거래를 넘어 배움과 책임, 자립심을 길러주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고, 구석구석 다양한 물건과 손수 만든 수공예품, 먹거리들이 가득해 보는 즐거움도 더해졌다. 행사장 곳곳에는 ‘두부 저염 쌈장 만들기’, ‘요거트 컵과일 만들기’, ‘커피화분’, ‘립밤·비누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게 마련되어 어린이와 가족 모두가 즐기며 직접 만들고 체험하는 교육적 시간이 함께했고, 고사리손으로 판매 부스를 운영하며 설명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방문객들의 발길을 오래도록 머물게 했다. 행사 중 펼쳐진 버스킹 공연은 영화음악, 대중가요, 연주곡이 어우러진 감성 가득한 무대로 구성되었고, 현장 관객의 즉석 신청곡 연주와 아이들의 참여 무대까지 더해져 마치 마을 축제 같은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올해 진행된 ‘우리마을 영화 만들기’ 프로젝트는 마을과 공동체가 함께 참여해 가평의 일상과 이야기를 영화로 기록하며, 마을의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작업으로 평가받았으며, 주민들 사이에서는 내년에도 꼭 이어가길 바란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평마을교육공동체는 지난 10여 년간 팜파티 축제, 꿈의학교, 마을밥상, 직업체험, 영화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마을과 학교, 아이와 어른이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꾸준히 실천해왔고, 이번 벼룩시장을 통해 다시 한 번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 깨닫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전했다. 이성아 가마공 회장은 “앞으로도 가마공은 주민과 가족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마을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며, 언제든 이 여정에 함께할 가족들을 기다린다”며 공동체와 교육이 함께하는 마을 문화를 확산해나갈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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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를 통해 본 경계와 배제의 정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통해 본 경계와 배제의 정치 1. 국경은 누구를 막는가. 국가는 경계를 통해 자신을 정의한다. 그 경계는 지리적일 수도 있고, 법적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문화적·이념적 기준에 따라 설정된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tfer Another)는 이러한 경계의 정치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이민자와 난민을 둘러싼 국가의 태도는 ‘누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권력과 인간성의 본질을 묻는다. 영화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에 있는 이민자 구금시설을 급습하는 ‘프렌치75’의 액션으로 시작한다. 이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핵심 주제를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국경은 단순히 두 나라를 나누는 지리적 선이 아님을 보여준다. 구금된 이민자들은 이미 미국 영토 안에 있지만, 여전히 ‘밖의 존재’로 취급된다. 이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말한 ‘예외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법의 테두리안에 있지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존재들. 그들은 국경을 넘었지만 여전히 경계 바깥에 머문다. 이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 국가는 무제한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구금된 이민자들이 처한 예외상태는 트럼프 행정부가 벌인 이민정책의 폭력성, 타국에 대한 폭력적 권력행사를 떠올리게 한다. 국가 권력이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특정 집단을 비인간적인 존재로 낙인찍어 배제하는 폭력적인 정치의 장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록조 대령(숀펜 분)으로 대표되는 국가 시스템은 이 경계선을 통해 ‘안보’라는 명분 아래 이민자들을 통제하고 억압한다. 영화 속 ‘프렌치75’의 혁명은 이 배제의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었지만, 그 방식 역시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점에서 경계가 만들어낸 갈등의 악순환을 표현했다. 2.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존재, 퍼피디아의 저항 주인공 퍼피디아는 프렌치75라는 급진적인 단체의 핵심 인물로, 체제에 대한 저항을 상징한다. 그녀는 미국 시민이지만, 자유라는 기치를 들고 국가의 이념과 충돌하는 순간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녀의 행동은 범죄로 규정되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경계가 국적이나 출생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념적 경계를 넘는 순간 시민조차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퍼피디아는 국가가 받아들이지 않는 자의 상징이다. 3. 록조 대령과 제도적 경계 록조 대령은 퍼피디아를 과거에 ‘가르쳤다’라고 말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복잡한 개인사가 있다. 록조는 퍼피디아에게 집착적 감정을 품었다. 그녀에게 남자친구(밥 퍼거슨역,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있었음에도, 록조는 그녀와 관계를 맺었고 자식까지 낳았다. 하지만 그는 국가 권력의 대리자로서 그녀를 탄압하는 역할을 수행 한다. 결국 그녀를 체포하고, 과거를 지우기 위해 그 자식마저 죽이려 한다. 이 설정이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여기에는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있다. 국가권력은 ‘개인의 이념이나 윤리보다 제도적 질서를 우선시 한다’는 것이다. 록조 대령에게 퍼피디아는 한때 사랑했을지 모르는 개인이 아니라, 체제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그가 자신의 과거를 지우려는 행위는 국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은폐했던 역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4.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 이념.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중심 갈등은 극좌 혁명조직 ‘프렌치75’와 록조 대령의 극우 세력이라는 양극단의 이념적 대립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각자의 신념이라는 견고한 경계선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상대를 절멸시켜야 할 ‘적’으로 규정한다. 이들에게 대화나 타협의 여지는 없다. 오직 ‘하나의 전투가 끝난 뒤 또 다른 전투’(One Battle after another)가 있을 뿐이다. 영화는 이처럼 타협 없는 이념의 경계가 얼마나 허망한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혁명을 부르짖던 ‘프렌치75’는 내부의 배신과 외부의 탄압으로 와해되고, 조직원들은 역사의 패배자로 남아 무력감에 시달린다.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밥 퍼거슨이 그렇다. 반면, 체제수호의 신념을 가졌던 록조 대령은 권력욕과 편집증에 사로잡혀 자신의 핏줄마저 위협하는 괴물이 된다. 극단적인 이념은 결국 외부의 적이 아닌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감옥이었던 것이다. 5. 부모 세대가 그어놓은 경계선, 비극으로 맞이하는 다음 세대 퍼피디아의 딸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는 이 모든 비극의 결과물이다. 부모 세대가 그어놓은 경계선이 만들어낸 비극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다음 세대를 상징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과잉보호와 편집증 속에서 성장했고, 만나본 적 없는 엄마의 과격한 이상과 아버지 세대의 실패를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윌라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부모세대가 가졌던 거창하고도 잘못된 신념들이 다음 세대의 삶을 어떻게 옥죄고 파괴하는 지를 처절하게 보게 된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는 경계가 단지 지리적 선이 아니라, 인간을 분류하고 배제하는 권력의 매커니즘임을 보여준다. 국경은 이민자를 막고, 이념은 시민을 배제하고 나누며, 세대 간 경계는 미래를 위협한다. 영화의 엔딩장면은 이렇다. 다음세대의 상징인 윌라가 다시 혁명전투에 불려나가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가 제기하는 질문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유효하다. 국가는 어떤 인간을 받아들이는가?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타인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준은 과연 정당한가? 이념적 양극단이 모두 실패하는 모습은 경계 자체를 재사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렇지 않으면 ‘끝없는 전투’의 수렁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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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암 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 성료… 글과 그림으로 나눈 마음의 풍경
[GN NEWS=가평군]기문정 시민기자=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가 깊어가는 가을, 가평 청평암 대웅전에서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가을비가 조용히 내리는 가운데에도 많은 이들이 우산을 들고 행사장을 찾아 자리를 지켰고, 그 정성 어린 발걸음이 축제의 의미를 한층 더 깊게 했다. 올해로 일곱 번째를 맞은 이 축제는 전국 단위의 글짓기·그리기 공모전과 함께, 참가자와 관람객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마련된 체험 부스와 먹거리 부스, 그리고 수상자들이 참여한 ‘끼자랑’ 무대가 더해져 따뜻하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이번 축제에는 전국 각지에서 창의적이고 진정성 있는 작품들이 다수 출품되었고, 글짓기 부문 74명, 그리기 부문 243명 등 총 317명의 입상자가 선정되었으며, 글짓기에서는 3명, 그리기에서는 8명이 공동 대상을 수상해 해마다 높아지는 참여도와 수준을 다시금 확인케 했다. 청평암 조실 명요 구암 스님은 개회사에서 “예술은 자비의 표현이며, 진심을 담은 글과 그림은 세상을 맑히는 수행의 한 길”이라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이야말로 가장 깊은 치유의 언어”라고 강조했다. 서태원 가평군수는 “이번 공모전의 주제처럼 ‘사찰, 나눔, 칭찬, 사랑, 어리석음, 자유’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부처님의 말씀이라 생각하며, 6회째를 거치면서 매년 훌륭한 작품들이 탄생가게 된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며, " '꽃나무 울타리 세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경치가 좋은 사찰, 청평암에서 뛰어난 수준의 문화축제가 해마다 열리게 되어 가평군의 또 하나의 문화자산으로 이 대회가 오래도록 함께 가기를 염원한다"고 축하 메세지를 전했다. 김용태 국회의원(가평·포천)은 “대회에 참가하여 영예로운 상을 받은 수상자 여러분께 진심 어린 축하 를 전하며, 이 뜻깊은 행사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써주신 구암 조실 스님과 청평암 관계자께도 깊은 감사의 마을을 드린다”며, "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재능을 발휘하고 꿈을 펼치는 축제의 장일뿐 아니라 불교문화예술을 이어가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격려를 보냈다. 특히 올해는 가평 지역 출신 수상자 두 명이 공동대상에 오르며 지역사회에 큰 자긍심을 안겼다. 일반부 대상 수상자인 이경민 씨는 ‘산이 주는 자유’라는 수필을 통해 도심의 숨 가쁜 일상에서 벗어나 계절의 리듬과 산의 품 안에서 자유를 느끼는 정서적 해방감을 섬세한 언어로 표현해냈고, 심사위원단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사색적으로 풀어낸 문장이 깊고 따뜻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단연 이번 축제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 수상자는 청평고등학교 2학년 이소윤 학생이었다. 고등부 대상작인 ‘하루 일찍’은 자폐장애를 가진 동생을 둔 누나로서 가족의 현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창작소설로, 격정 없이 절제된 문체 안에 담긴 가족의 인내와 연민, 그 속에서도 지켜지는 사랑과 희망의 정서가 조용하지만 묵직한 감동을 자아냈다. ‘하루 일찍’이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 메시지였다. 자폐를 가진 아이를 둔 어머니가 왜 아이보다 하루 더 살아야 하는지, 또 하루 먼저 보내야만 하는지에 대한 절절한 고백이 담겨 있다. 세상보다 하루 앞서 깨어야 하는 어머니의 삶, 눈치보다 한 발 먼저 움직여야 하는 가족의 리듬을 상징하며, 이소윤 학생은 그 복잡한 감정과 삶의 모순을 감정에 기대지 않고 깊은 이해와 애정의 언어로 담담히 풀어냈다. 이소윤 학생은 수상 후 인터뷰에서 “제 동생은 말은 없지만 제게 많은 말을 하게 만든 존재예요. 글을 쓸 수 있게 해줘서 고맙고, 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실제 자폐를 가진 동생을 둔 누나로서, 가족 안에서 느껴온 복합적인 감정과 삶의 단면들이 작품 「하루 일찍」의 모티브가 되었다. <사진자료=청평암 공식카페> 글짓기 심사평에서는 다음과 같은 평가가 전해졌다. “올해에도 여전히 뜨거운 기온에 장마와 가뭄과 열대야 속에서 한 계절이 가고 있다. 점점 우리의 대지도 공해에 몸살을 하는지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였다. 하늘의 상황도 이곳처럼 그리 만만치 않아서일까 싶다. 그래도 많은 작품들이 출품되어 마음은 풍요로웠다. 문학적 기량이 돋보이는 작품들도 보이고, 작은 손으로 조곤조곤 말하는 예쁜 글들도 보였다. 심사하면서 잘 쓰인 문장의 기교보다는 글쓴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했고, 공감이 가는 글에 애정을 담았다. 채혜원의 ‘<빗을 잃어버린 인어>를 읽고’라는 책 속 소년과 소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고 간결하다. 그 여린 심성을 잘 유지하여 좋은 시를 쓰길 바란다. 장서진의 ‘자유는 날개’라는 자연스럽게 잘 쓰인 시다. 누구든 함께 그 길을 따라 즐기며 같은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한 번쯤은 해 본 경험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된다. 고등부의 이소윤의 ‘하루 일찍’은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을 담담한 어투로 차분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자폐아를 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절절한지, 얼마나 애쓰고 아픈지를 담백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루 일찍’ 이라는 제목부터 마음을 흔들고 아프게 했다. 과하지 않게 절제하며 써 내려가는 문장이 더욱더 문제의 앞으로 다가가게 만든다. 조금만 더 다듬어지면 더욱 좋은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정진하길 바란다. 일반부 이경민의 ‘산이 주는 자유’는 도시인의 숨 가쁜 삶 속에서 우연히 산행하며 자유를 느끼는 일을 계절별로 쓴 글이다. 막힘없이 매끄러운 글이다. 계절마다 다른 느낌의 자유를 잘 묘사하여 함께 기분 좋게 산행을 한 느낌이다. 자연과 더불어 삶의 시선을 맑게 하는 일의 중요성도 보여 준 작품이었다.”고 평하며, 이번 공모전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진심 어린 시도와 가능성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번 축제는 단순한 문예대회나 경연을 넘어, 서로 다른 세대와 지역, 시선을 하나로 모으는 문화적 공감의 장이었다. 유치부부터 일반부에 이르기까지 본선 진출작들은 청평암 대웅전 마루에 전시되어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전했고, 어린이의 해맑음부터 성인의 성찰까지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며 큰 울림을 남겼다. 심만기 심사위원(BS㈜ 밝은생각 대표이사)은 “예술은 결과보다 과정에서의 진심이 중요하다. 특히 올해는 유아·청소년 부문의 작품 수준이 높아 구성력과 감정표현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행사 주최 측은 “참가자 한 명 한 명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모든 출품작은 예술로서의 가치가 충분했다”며 “앞으로도 아라한 문화축제가 단지 수상 중심이 아닌 성장과 나눔의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는 자연 속 사찰이라는 공간에서 예술을 통한 치유와 공감, 연대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 뜻깊은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행사 말미에는 청평암에서 참석자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마련한 따뜻한 공양이 제공되었으며, 빗속에서도 축제의 자리를 지켜낸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이자 깊은 나눔의 실천이 되었다. 단순한 식사가 아닌, 마음을 담은 대접이었던 그 공양은 서로의 마음을 잇는 또 하나의 예술로 기억되었다. <사진자료=청평암 공식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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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연지구 디 오리지널 4K- 그 놈의 사랑은 왜 50년을 버텄을까.
- 그 놈의 사랑은 왜 50년을 버텄을까. -영화 <연지구>. 그때 그 홍콩의 밤거리는 축축한 습기와 더불어,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전조’같은 것들이 공기 중에 떠 다녔던 것 같다. 1987년. 영화 <연지구> 속 배경이다. 그때 홍콩인들은 분주했다. 누군가는 주식을 샀다가 망했고, 누군가는 캐나다 이민 서류를 쓰면서 나라를 바꿀 준비를 했다. 그 소란한 홍콩의 소식이 바다를 건너오던 무련, 서울의 학생이었던 필자는 회수권을 모으고 있었다. 두 장이면 풀빵이 하나와 바꿔 먹을 수 있다. 팥은 늘 적었고, 우리는 늘 배고팠다. 학교 앞에서 풀빵으로 바꿔먹으며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을 이야기했다. 총은 슬로모션으로 쏘는 게 맞다고 믿었고 긴 바바리코트에 이쑤시개를 입에 물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취권으로 대변되던 성룡의 홍콩영화가 눅눅함과 끈적함, 그리고 홍콩의 비릿한 밤거리를 조명한 누아르 영화들로 변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대학생 형과 누나들이 민주항쟁의 한복판에 있었고, 세기말적 분위기와 새 시대에 대한 불안과 뜨거움이 교차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 혼돈의 1987년 한복판에, 영화는 1934년의 화려한 유곽 ‘의홍루’를 소환한다. 남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여화(매염방)의 눈빛, 그 눈빛과 목소리에 단번에 포획된 진진방(장국영)의 시선이 마주치는 그 찰나 그 두 사람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때는 화려했던 청나라가 몰락하고 내전과 격동의 시기인 중화민국 시절이다. 이때 여화가 부른 노래는 광동 전통음악인 <객도추한(客途秋恨)>이라고 한다. 객도, 나그네 길. 추한, 가을 느끼는 한(恨). 떠도는 나그네 길에서 맞는 가을의 슬픔이라니. 남성 화자가 기생과의 짧은 사랑을 회상하며 다시 만날 수 없는 현실을 한탄하는 노래이다. 여화는 바로 그 남성 화자의 역할로 남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다가 진진방을 만난다. 이 노래를 아는 중국인이라면 이미 이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를 스포한 셈이다. 그들은 사랑했다. 의홍루의 붉은 등불 아래서, 신분도 시대도 아랑곳없이. 하지만 기생이었던 여화와 부잣집 도련님 진진방은 끝내 그 차이를 뛰어넘을 수가 없었다. 사랑을 이어갈 수 없던 두 사람은 사랑의 증표인 연지구(臙脂扣, 연지가 담긴 화장품 장신구)를 목에 걸어주며 저승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여화는 저승에서 50년이 넘도록 진진방을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1987년, 이승으로 내려온다. 사실 흔한 이야기다. 사랑이 시들기 전에 삶을 꺾어 버리는 비극적 사랑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랬고, 와타나베 준이치의 <실락원> 속 구키와 린코도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연지구>는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죽음 이후에 50여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그놈의 사랑’을 확인하려 드는 데서 진짜 비극이 시작된다. 1987년, 구천을 떠돌던 여화가 차가운 콘크리트 보도블록 위에 다시 섰을 때는 여화가 알던 아름답고 몽환적이며 화려했던 홍콩이 아니었다. 여화의 눈을 통해 우리는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섰다는 변화가 아니라, 한 시대의 정서가 통째로 증발해 버린 것에 대한 당혹감이다. 화려했던 목재 건물도, 붉은 치파오도, 금빛 장식도 사라졌다. 대신에 회색 콘크리트위에 그저 무색인 와이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홍콩의 반환을 앞두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홍콩인들은 과거의 좌표를 잃어버린 유령 여화의 불안을 비추는 거울처럼 보였다. 영화는 그렇게 과거의 비극적 낭만과 세기말적 우울을 겹쳐 놓으며 묻는다. 현대인이 바쁘게 살아남기 위해 버티는 현실이 반세기를 버틴 순애보보다 값진 것인가라고. 결국 여화는 진진방을 찾아낸다. 진진방은 죽지 않았었다. 그리고 살아남아 늙고 초라해져 있었다. 여화는 이십대의 꽃다운 모습 그대로이지만, 진진방은 단역 배우로 겨우 풀칠하는 노인에 불과했다. 두 사람이 마주한 순간, 말 대신 긴 침묵이 흘렀다. 그럴 수밖에. 그 재회의 순간은 숭고하지도 눈물겹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독하게 환멸스러웠다. 인생을 바쳐 기다린 결과가 이런 비루한 생존의 찌꺼기였다니. 여화는 연지구를 돌려주며 말한다. 이제 당신을 기다리지 않겠다고. 그건 배신에 대한 원망이라기보다는 오래 붙잡고 있던 과거의 환상에서 비로소 탈출하는 영혼의 마지막 인사였다. 진진방은 비겁하게 살아남아 추해졌지만, 여화는 그 약속을 지키려 했던 그 뜨거운 집념 덕분에 영원히 그 시절의 찬란한 모습으로 남았다. 영화는 그렇게 1930년대의 그 뜨겁고도 서늘한 아름다움과 1987년의 불안했던 홍콩의 공기를 한권의 앨범처럼 묶어 우리 앞에 내놓는다. 이제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 시절의 홍콩. 회수권을 아껴서 극장표로 바꿔보던 홍콩영화. 그리고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장국영과 매염방. 아이러니하게도 두 배우는 2003년, 약속이라도 한 듯 나란히 모두 우리 곁을 떠났다. 불멸의 별이 되어. 연지구 속에 있던 붉은 연지는 지워졌어도 그 자리에 남은 서늘한 자국은 여전하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어쩌면 지키지 못한 약속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비루한 진실을 마주하고도 기꺼이 과거의 자신을 놓아줄 수 있는 그 서글픈 용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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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연지구 디 오리지널 4K- 그 놈의 사랑은 왜 50년을 버텄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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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김경태, 현장에서 답을 찾는 지역 일꾼
- [GN NEWS=가평군]이성아 기자=가평 지역에서 오랜 시간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봉사의 길을 걸어온 김경태(52) 국민의힘 당원이 경기도의원 출마를 준비하며 지역 정가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화려한 정치 경력보다는 현장에서 축적해 온 생활 경험과 주민과의 소통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현장형 인물’이라는 평가다. 김경태 예정자는 현재 국민의힘 SNS 가평군 위원장을 맡아 지역 현안과 정책 정보를 온라인을 통해 공유하고 주민들과 소통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SNS를 활용해 지역 정책과 행정 현안을 쉽게 전달하며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 정치권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그는 이전에 가평군 인권센터장과 설악마을공동체 대표를 역임하며 지역 공동체 활성화와 주민 참여 확대를 위한 활동을 이어왔다. 주민 생활과 밀접한 문제를 직접 듣고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방식으로 지역 사회와의 접점을 넓혀 왔다는 평가다. 풀뿌리 활동으로 다져온 지역 기반 김 예정자의 정치 행보는 지역사회 활동에서 시작됐다. 설악면 주민자치위원과 새마을지도자, 기동대원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의 크고 작은 일에 참여해 왔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생활 현장의 문제를 가까이에서 접해왔다. 또한 경기도교육청 주민참여예산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책과 예산이 지역 사회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경험을 쌓았고, 가평군 자유총연맹 설악면 회장을 맡아 지역 공동체 결속과 사회 봉사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김 예정자는 “주민들과 눈을 맞추며 들었던 생활 속 어려움이 곧 정책의 출발점이 된다”며 “행정과 정책은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완성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가평의 잠재력을 현실로 만들겠다” 김경태 예정자는 가평이 가진 자연환경과 관광 자원을 중요한 성장 기반으로 평가하면서도 교통, 교육, 의료 등 생활 기반시설 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가평은 수도권과 가까운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교통 인프라와 의료 서비스 등 생활 기반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경기도와 가평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통해 예산 확보와 정책 반영을 이끌어내는 도의원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가평이 더 이상 소외 지역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지역의 강점을 살린 정책과 지원을 적극적으로 끌어내겠다”며 “지역 발전을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원칙과 책임의 정치” 김 예정자는 스스로를 ‘현장에서 답을 찾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선거 시기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정치가 아니라 평소에도 주민 곁에서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믿습니다.” 이어 그는 “원칙을 지키는 정치, 약속을 책임지는 정치가 결국 신뢰를 만든다”며 “군민 한 분 한 분의 목소리를 소중히 여기고 낮은 자세로 지역을 섬기겠다”고 말했다. 설악면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역 활동을 이어온 김경태 예정자의 도전이 향후 가평 정치 지형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지역 사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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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김경태, 현장에서 답을 찾는 지역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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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혹독한 추위, 흔들리는 본성 -영화
- [GN NEWS=가평군]이성아 기자=가끔은 잘 만든 B급영화가 어설픈 대작보다 더 정확히 우리의 감각을 건드려준다. <콜드 미트>는 바로 그런 영화이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생존 스릴러다. 영하25도, 폭설, 산속에 고립된 차량, 휴대전화는 먹통. ‘인간 대 자연’이라는 장르의 공식을 따른다. 그러나 이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자연이 배경이 아니라 영화를 구성하는 강력한 서사의 하나가 된다. 영화는 익숙한 장르문법으로 시작한다. 데이비드(앨런 리치)가 학대하는 전 남편에게서 웨이트리스 애나를 구하며 등장한다. 관객은 의심하지 않고 그의 서사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눈길에 미끄러지는 사고로 인해 고립되고 그의 차 트렁크가 열리는 순간 영화는 관객의 윤리적 판단을 전복시킨다. 첫 번째 반전은 놀라움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쉽게 인물을 ‘선’으로 분류하는지를 드러낸다. 이후 영화는 속도와 결을 바꾼다. 눈보라의 혹독함 속 고립된 차안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심리전 대화, 제한된 공간, 제한된 인물, 제한된 정보. 이 가운데에 정보를 두 인물이 대사로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선택으로 서사를 밀고 나간다. 세바스찬 두루인 감독은 인물의 선택이라는 연출로 관객들도 선택의 갈림길을 생각할 수 있도록 내어준다. 이런 방법만으로 관객이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각본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비록 인과관계의 치밀함이나 대사의 정교함에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 감독은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선과 악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밝혔지만 영화는 철학을 확장하고 표현하기 보다는 긴장 유지에 집중했다. 그래서 존재론적 탐구보다는 체감형 생존극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무너지지 않고 밀고 가는 힘은 미장센에 있다. 세바스찬 드루인 감독은 프랑스 VFX스튜디오 출신으로 시각효과 분야에 오랜 경력을 쌓았다. 거대한 스펙터클을 설계하던 사람이 이 작품에선 공간을 최소화하고 과시적 CG가 아닌 프레임의 정밀함과 클로즈업으로 영화적 감각을 극대화시켰다. 피부, 속눈썹에 맺힌 고드름. 차 안을 익숙하면서도 생존 투쟁터로 재구성했다. 특히 사운드 설계는 인상적이다. 눈과 함께 몰아치는 바람소리는 극도의 압박감을 주고, 금속이 수축하는 소리, 거칠어지는 호흡, 차체를 때리는 눈보라. 관객은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추위를 듣는다.’ 자연은 또 하나의 빌런으로 기능한다. 밖으로 나가면 얼어 죽고, 안에 있어도 안전하지 않다. 서사는 넓히기보다는 온도를 낮추는 표현으로 전환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선택한 것은 서사적 완성도보다 물리적 체감을 택했다. 이 영화는 이야기를 확장하지 않는 대신 끊임없이 조건을 악화시키는 방식으로 긴장을 설계한다. 그렇게 했기에 이 작품이 우리의 감각을 건드리고, 우리를 생리적으로 얼어붙게 만들어 버린다. <콜드 미트>는 거대한 철학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눈보라 속에 차 한 대를 세워두고 묻는다.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것은 당신의 신념인가, 아니면 당신의 본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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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혹독한 추위, 흔들리는 본성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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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영화가 잃어버린 '인간의 무게’
- <사진자료=프로젝트Y 포스터> 영화<프로젝트 Y>가 잃어버린 '인간의 무게’ 영화 <프로젝트 Y>의 오프닝과 엔딩씬은 지하보도에서 걷는 미선(한소희)과 도경(전종서)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영화전체의 톤이 무엇인지, 지향하는 스타일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90년대 홍콩영화의 그것이었다. 서울의 밤 지하보도의 인공광과 레드, 블랙의 강렬한 대비를 시킨 이 장면을 가장 힘주어 찍은 이환 감독은 <영웅본색>, <천장지구>처럼 홍콩 영화 르네상스 시기의 색감과 빛을 구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왜 이 영화는 90년대 홍콩 영화의 색감과 미장센을 구현하고 싶었을까? 그것은 이 영화가 세기말적인 청춘의 방황과 갈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왕가위 감독으로 대변되는 90년대 홍콩영화를 들여다보면 번잡한 도시 속 청춘들의 방황, 화려한 네온사인 속에 청춘의 고독을 담아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군가의 마음(사랑)을 갈구했고,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을 먹으며 사라져가는 시간과 인간성을 붙잡으려 몸부림쳤다. 90년대엔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때문에 그들이 누리던 모든 것들이 사라질 거라는 세기말적 두려움과 불안감이 팽배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6년에 그 홍콩영화의 변주곡을 자처한 <프로젝트Y>에는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대신 유통기한 없는 금괴를 위해 자신의 삶을 팔아치운다. 여기에선 그 찬란한 슬픔도, 청춘의 무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황금의 욕망을 향한 맹목적인 질주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사진자료=프로젝트Y 스틸컷> 세기말적 미학의 오용 이 영화는 90년대 홍콩영화의 색감과 미장센을 복제하고자 하지만 그 색채 아래 담긴 것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파괴되어가는 인간성의 전시였다. 영화는 ‘우연히 알게 된 정보로 유흥가의 실세 토사장의 은닉자금을 훔치려던 미선과 도경이 돌이킬 수 없는 수렁을 향해 질주’하는 서사를 담고 있다. 문제는 이 ‘질주’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이다. 폭력과 피로 가득한 이 영화는 어떠한 것으로 승화되지 못한 채 관객은 그들의 폭력을 관조하며 소리와 촉각의 자극을 탐닉하게 만든다. 이는 ‘탐미주의’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미적 빈곤이자 스타일의 과잉이 낳은 불쾌한 결과물이다. 거세된 저항과 매몰된 연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2007년작 <데쓰 프루프(Death Proof)>는 여성들이 남성 살인마(가해자)를 응징하며 얻는 전복적인 쾌감을 주는 동시에 ‘복수’와 ‘해방’이라는 여성서사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프로젝트 Y>는 물질적 몰락에서 헤어 나오고자 인간성을 거세하는 퇴행을 보여준다. 낮에는 꽃집 주인으로, 밤에는 유흥가의 에이스로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미선과 도경은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는다. 그들이 저항해야 할 대상은 명확하다. 토사장으로 대변되는 자본권력과 그들을 착취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저항을 7억원의 현금보따리와 금괴상자의 탈취라는 또다른 범죄로만 치환한다. 저항의 대상은 명확하지 않다. 저항의 방식은 오직 폭력과 누가 물질을 가로챘것인가의 서사에서 관객이 느낄 수 있는 것은 허무뿐이다. 이렇듯 문학과 영화가 쌓아올린 ‘여성의 연대와 저항’마저 자본의 논리와 세기말적 무력감에 매몰되었다는 점이 안타깝다. “엄마가 죽었어. 엄마가 죽었다고!”라며 도경(전종서)에게 원망하듯 외치는 미선(한소희)에게 도경은 ‘너도 엄마가 죽기를 바랬잖아’라고 받아친다. 엄마(김신록) 역시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살아가지만 도경과 미선이 가져온 황금을 보고 기회를 다시 잡으려는 추한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비춰진다. Y세대인 도경에겐 '엄마의 시대'가 저무는 것을 슬퍼하고 동정하는 것은 잠시이고 당연한 폐기로 받아들인다. 과거(역사)에 대한 부채 의식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생존'이라는 본능만 남는다. 이들의 관계는 마치 영혼을 잃어버리고 본능적 욕망만이 존재하는 좀비 공동체에 불과했다. 자신을 구해준 엄마(김신록)은 도경에게 두 손으로 얼굴을 붙잡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 모든 것이 잘 설명된다. “물러 터졌어. 우리 도경이. 너 꼴리는 대로 살아. 너 꼴리는 대로 살라고!” 감독은 "차에 한 번 올라타면 끝까지 달려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 것처럼, 영화는 멈추지 않는 질주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질주의 끝에 무엇이 있는가? 미래와 희망이 거세된 채 금괴라는 물질적 가치를 쫓다 그 세계를 떠나버리는 결말은, 탈출이라기보다 열패감 끝에 시스템에 투항한 현실 순응자의 뒷모습처럼 보였다. <사진자료=프로젝트Y 스틸컷> 복제되지 못한 ‘인간의 무게’ '사람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고 하는 감독의 말과는 달리,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의 욕망을 위해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장치처럼 보인다. 미선과 도경의 선택은 예측 가능하고, 그들의 행동은 플롯을 진행시키기 위한 장치에 그친다. 평범한 일상을 꿈꾸던 그들이 범죄의 세계로 뛰어드는 과정에서 내적 갈등이나 도덕적 고뇌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90년대 홍콩 영화가 '파멸' 앞에서도 인연의 찰나와 고독의 무게를 긍정했다면, <프로젝트 Y>는 그 자리에 냉소와 생존 본능만을 채워 넣었다. 한소희와 전종서라는 아이코닉한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겪는 고통은 관객에게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비극의 전시'로 휘발된다. 90년대 홍콩 느와르의 스타일은 복제했을지언정, 그 스타일이 지탱해야 할 '인간에 대한 연민' 그 무게감까지는 담아내지 못한 셈이다.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디스토피아는 예술적 통찰이 아니라 냉소적 상업주의 산물로 전락하기 쉽다. 이 영화가 남긴 ‘불쾌한 허무’는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상업주의적 포장의 한계 이 영화는 제작 단계부터 최근 극장에서 보기 드문 여성 투톱영화로 화제를 모았다. 토론토국제영화제 특별 프레젠테이션 섹션초청, 이환감독의 전작 <박화영>이 영화제에서 쌓아올린 명성에 한소희 전종서라는 대중적 스타파워를 결합한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마케팅 전략이 오히려 작품의 본질을 가리거나 작품의 방향성마저 흐트러 놓은 것은 아닐까. 여성 주인공에 장르물을 붙이면 여성서사의 완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라도 하는 것일까. 여성 서사가 단순히 '여성이 주인공인 범죄물'을 넘어 시대의 울림이 되려면, 총구와 차가운 네온사인 너머에 있는 '억압된 인간, 차별받는 인간에 대한 무게'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독자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해졌다. 독자들은 이 영화를 '희망이 거세된 시대의 자화상'으로 읽을까? 이 영화가 주는 불쾌함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 존엄'의 가치를 환기할까? 제작진이 의도한 '좋은 배신감'이 과연 관객에게 긍정적인 카타르시스를 줄 것인지, 아니면 그저 공허한 냉소만을 남기는지는 관객 각자의 몫이 될 것이다. 냉소와 통찰은 한 끗 차이이다. 마치 윳놀이의 ‘도’와 ‘빽도’처럼 말이다. 단순히 세상은 망했고 희망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예술적 게으름에 가깝다. 이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왜, 여전히 인간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계속 살아내야 하는가’에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게 해야 한다. "미선과 도경은 세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정작 그들이 쏜 것은 자신들의 마지막 인간성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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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영화가 잃어버린 '인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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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이념이 타버린 터널 속, 인간은 여전히 유효한가.
- <사진자료=영화<터널>포스터> 이념이 타버린 터널 속, 인간은 여전히 유효한가. 베트남 전쟁을 다룬 수많은 영화는 대게 두 가지 시선 중 하나를 택해왔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비극적 충돌로 보거나, 혹은 화염방사기와 헬기 소리로 대변되는 압도적인 화력의 스펙터클과 영웅주의로 소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부이 탁 추옌(Bùi Thạc Chuyên) 감독의 영화 <터널>(Địa Đạo)은 이 모든 외피를 난폭하게 벗겨낸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꾸찌 터널은 베트남 전쟁 당시 게릴라군이 압도적인 화력을 가진 미군에 맞서 생존과 투쟁을 이어가기 위해 거미줄처럼 파내려 간 터널이다. 총 길이 약 250km에 달하는 거대한 요새였다. 이 영화 속에는 승리에 대한 결연함, 숭고한 희생 대신에 물속에서 대나무 빨대에 숨을 의지한 채 살아내야 하는 원초적인 공포와 지독한 생존 본능만을 응시한다. <사진자료=영화<터널>스틸컷> 영화 <터널>은 1967년 꾸찌터널에서 미군에 대항하던 스물한 명의 해방군의 전사를 따라간다. 이들은 실존 인물이 아닌 감독이 의도하는 영화적 픽션이다. 빛 한 점 없는 지하벙커 속에서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그곳에서 ‘인간’이라는 정의는 여전히 유효한가를 묻는다. 부이 탁 추엔감독은 꾸찌터널이 구축되어 있어있는 지하 3층의 입체적인 구조를 고증하여 세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수직으로 이동시키며 공간을 수직적으로 분할하였다. 이는 영화의 핵심 메타포를 구축하기 위함인데, 지상은 이념의 공간이다. 성조기가 펄럭이고, 화염방사 전차가 불을 뿜어대고 네이팜탄이 쉴세없이 떨어진다. 그야말로 문명이 설계한 지옥이다. 반면 지하는 생존의 공간이다. 어둡고 인물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채 그들의 거친 숨소리와 흙을 파는 손의 움직임만이 사운드를 채운다. 이곳에서 인물들은 이데올로기를 토론하지 않는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뭉쳐야 했으며, 인간이라는 종을 잇기 위해 섹스하며, 죽지않기위해 살상한다. 특히 터널 벙커 깊숙한 곳에 두 남녀가 격렬하게 뒤엉키는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논란의 여지를 만든다. 하지만 이 장면이 단순히 생물학적 욕구의 발산으로 보이지 않는다. 터널 위에서 떨어지는 포탄가운데서도, 죽음이 가득한 공간에서 생명을 잉태하려는 몸짓. 그것은 절망에 대한 원초적인 반역이며 미래를 향한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취하는 행동이 결국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물학적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을 적나라하게 말한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인간 존엄의 타락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베트남의 원동력을 발견한다. 명분은 사라지고 본능만 남은 상태에서 투쟁은 오히려 그 무엇보다 강력했다. 이념을 위해 죽는 사람은 흔치 않지만, 살고자 하는 생명체의 의지는 결코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터널 속의 삶은 비참하지만 그 비참함이야말로 침략자가 결코 정복할 수 없었던 ‘뿌리’였다. 그것이 저항이었고, 베트남의 정신을 그 속에서 찾아야 볼 수 있다. <사진자료=영화<터널>스틸컷> 베트남 통일 50주년을 맞아 자국 관객에게 주는 메시지는 “우리는 이렇게 비참하게, 그러나 지독하게 살아남아 오늘을 만들었다”일 것이다. 마치 선전영화로 보일법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감독이 묘하게 배치한 밑바닥의 저변에 깔린 메시지를 읽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승리에 대한 자취(自取)가 아니라 생존에 대한 경외다. 이상하게 기억에 오래 남는 장면이 있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군이 원시적인 죽창에 찔려 죽어가는 장면이다. 20세기의 기술을 상징하는 미군이 이 원시적인 도구에 찔리는 순간 전쟁은 문명과 문명과의 전쟁이 아니라 육체와 육체의 충돌로 격하된다. 죽어가던 미군이 마지막을 내뱉은 말을 ‘물을 달라’라는 외침이었다. 그가 마지막에 갈구한 것은 승리도, 성조기도, 민주주의 수호도 아니었다. 단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 원소였다. 이 순간 흙탕물을 마시던 베트남 게릴라와 미국 군인은 갈증을 느끼지는 생명체로서 평등해진다. 인간이 겹겹이 쌓아올린 기술, 이념, 힘은 갈증 앞에서 무력해질 뿐이다. 이쯤 되면 영화는 프로파간다(선전영화)를 넘어 실존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참호 속에서, 가자기구의 무너진 건물 아래서 인간은 여전히 ‘물을 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터널>은 이념의 이름으로 타인의 육체를 파괴하는 행위가 얼마나 원시적이고 헛된 것인지를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인 반전(反戰) 메시지를 완성한다. <사진자료=영화<터널>스틸컷> 극장 문을 나서면서도 그 압도적인 공포의 잔상이 꺼지지 않았다. 화염방사 전차가 숲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드는 거대한 불길이 눈에 새겨졌다. 고막을 찢는 듯한 네이팜탄의 폭음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예고 없이 번쩍이며 끊임없이 쏟아지는 총알의 빛과 날카로운 소음. 이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하나, 땅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마치 기독교인들이 로마황제의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카타콤’을 연상시킨다.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지하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렸다면, 베트남인에게 꾸찌터널은 생존이라는 신을 모시는 성전이 되었다. 영화 <터널>이 보여주는 지독한 생존의 풍경은 우리에게 낯선 타국의 역사가 아니다. 한국의 근현대 역시 거대한 화염이 지상을 휩쓸고 간 터널의 시간이었다. 식민지의 어둠을 견뎌낸 정신적 카타콤부터,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방공호로, 숲으로 기어들었던 우리의 어머니들까지. 우리 역시 ‘물을 달라’라는 비명이 가득한 지옥 속에서 오늘을 일궈냈다. 이 영화<터널>은 마치 우리에게 질문하고 건네고 있다고 느꼈다. 베트남의 꾸찌터널이 지금의 베트남을 있게 한 원동력이듯, 한국을 지탱해온 그 질긴 생존의 에너지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혹시 그것은 경쟁과 성장이라는 또 다른 전쟁터로 변질되지는 않았는가. 터널 속에서 배운 생명에 대한 경외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개인주의와 혐오 속에서도 여전히 마르지 않는 마중물처럼 흐르고 있는가,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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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이념이 타버린 터널 속, 인간은 여전히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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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마을교육공동체, 추억 담은 찻집 수익금으로 따뜻한 나눔 실천
- [GN NEWS=가평군]기문정 기자=가평마을교육공동체가 올 한 해 동안 지역과 함께 펼쳐온 활동의 결실을 따뜻한 나눔으로 이어갔다. 지난 12월 19일 진행된 ‘추억의 일일찻집’ 행사 수익금 100만 원을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지정기탁금으로 가평군청 행복돌봄과 아동복지팀에 전달하며 지역사회 돌봄 실천의 모범을 보였다. 이번 일일찻집 행사는 옛 추억을 되살리는 레트로 감성과 주민 참여형 나눔 문화를 결합해 지역 주민의 큰 호응을 얻었으며, 음식과 음악, 깜짝 이벤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아라비안나이트7080(구 유튜브)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2014년 설립된 가평마을교육공동체는 지난 10여 년간 팜파티, 꿈의학교, 마을밥상, 영화 만들기 등 다양한 교육·문화활동을 통해 마을과 학교, 그리고 주민이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 모델을 구축해 왔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마을 영화 만들기’, ‘가마공 벼룩시장’ 등 주민이 주체가 되어 기획하고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공동체 역량과 나눔의 가치를 확산해 왔다. 가평마을교육공동체 관계자는 “이번 나눔이 단발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연대하고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 문화로 확장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세대와 이웃을 잇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해 더 많은 주민이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평군 관계자는 “지역 공동체의 자발적인 참여로 마련된 이번 기탁은 보호종료아동들에게 실질적인 응원과 힘이 될 것”이라며 “전달된 후원금은 자립을 준비하는 보호종료아동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정성으로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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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마을교육공동체, 추억 담은 찻집 수익금으로 따뜻한 나눔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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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마을교육공동체, 함께해서 더 따뜻했던 ‘가마공 벼룩시장’ 성황리 마무리
- [GN NEWS=가평군]기문정 기자=가평마을교육공동체(가마공)가 주관한 ‘가마공 벼룩시장’이 지난 11월 2일 가평 철길공원에서 개최되어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민들과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따뜻한 참여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약 20여 팀의 셀러가 함께한 이번 행사는 아이들이 팀을 이루어 직접 물건을 준비하고 판매에 참여하면서 단순한 거래를 넘어 배움과 책임, 자립심을 길러주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고, 구석구석 다양한 물건과 손수 만든 수공예품, 먹거리들이 가득해 보는 즐거움도 더해졌다. 행사장 곳곳에는 ‘두부 저염 쌈장 만들기’, ‘요거트 컵과일 만들기’, ‘커피화분’, ‘립밤·비누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게 마련되어 어린이와 가족 모두가 즐기며 직접 만들고 체험하는 교육적 시간이 함께했고, 고사리손으로 판매 부스를 운영하며 설명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방문객들의 발길을 오래도록 머물게 했다. 행사 중 펼쳐진 버스킹 공연은 영화음악, 대중가요, 연주곡이 어우러진 감성 가득한 무대로 구성되었고, 현장 관객의 즉석 신청곡 연주와 아이들의 참여 무대까지 더해져 마치 마을 축제 같은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올해 진행된 ‘우리마을 영화 만들기’ 프로젝트는 마을과 공동체가 함께 참여해 가평의 일상과 이야기를 영화로 기록하며, 마을의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작업으로 평가받았으며, 주민들 사이에서는 내년에도 꼭 이어가길 바란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평마을교육공동체는 지난 10여 년간 팜파티 축제, 꿈의학교, 마을밥상, 직업체험, 영화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마을과 학교, 아이와 어른이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꾸준히 실천해왔고, 이번 벼룩시장을 통해 다시 한 번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 깨닫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전했다. 이성아 가마공 회장은 “앞으로도 가마공은 주민과 가족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마을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며, 언제든 이 여정에 함께할 가족들을 기다린다”며 공동체와 교육이 함께하는 마을 문화를 확산해나갈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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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를 통해 본 경계와 배제의 정치
-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통해 본 경계와 배제의 정치 1. 국경은 누구를 막는가. 국가는 경계를 통해 자신을 정의한다. 그 경계는 지리적일 수도 있고, 법적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문화적·이념적 기준에 따라 설정된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tfer Another)는 이러한 경계의 정치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이민자와 난민을 둘러싼 국가의 태도는 ‘누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권력과 인간성의 본질을 묻는다. 영화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에 있는 이민자 구금시설을 급습하는 ‘프렌치75’의 액션으로 시작한다. 이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핵심 주제를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국경은 단순히 두 나라를 나누는 지리적 선이 아님을 보여준다. 구금된 이민자들은 이미 미국 영토 안에 있지만, 여전히 ‘밖의 존재’로 취급된다. 이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말한 ‘예외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법의 테두리안에 있지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존재들. 그들은 국경을 넘었지만 여전히 경계 바깥에 머문다. 이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 국가는 무제한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구금된 이민자들이 처한 예외상태는 트럼프 행정부가 벌인 이민정책의 폭력성, 타국에 대한 폭력적 권력행사를 떠올리게 한다. 국가 권력이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특정 집단을 비인간적인 존재로 낙인찍어 배제하는 폭력적인 정치의 장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록조 대령(숀펜 분)으로 대표되는 국가 시스템은 이 경계선을 통해 ‘안보’라는 명분 아래 이민자들을 통제하고 억압한다. 영화 속 ‘프렌치75’의 혁명은 이 배제의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었지만, 그 방식 역시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점에서 경계가 만들어낸 갈등의 악순환을 표현했다. 2.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존재, 퍼피디아의 저항 주인공 퍼피디아는 프렌치75라는 급진적인 단체의 핵심 인물로, 체제에 대한 저항을 상징한다. 그녀는 미국 시민이지만, 자유라는 기치를 들고 국가의 이념과 충돌하는 순간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녀의 행동은 범죄로 규정되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경계가 국적이나 출생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념적 경계를 넘는 순간 시민조차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퍼피디아는 국가가 받아들이지 않는 자의 상징이다. 3. 록조 대령과 제도적 경계 록조 대령은 퍼피디아를 과거에 ‘가르쳤다’라고 말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복잡한 개인사가 있다. 록조는 퍼피디아에게 집착적 감정을 품었다. 그녀에게 남자친구(밥 퍼거슨역,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있었음에도, 록조는 그녀와 관계를 맺었고 자식까지 낳았다. 하지만 그는 국가 권력의 대리자로서 그녀를 탄압하는 역할을 수행 한다. 결국 그녀를 체포하고, 과거를 지우기 위해 그 자식마저 죽이려 한다. 이 설정이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여기에는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있다. 국가권력은 ‘개인의 이념이나 윤리보다 제도적 질서를 우선시 한다’는 것이다. 록조 대령에게 퍼피디아는 한때 사랑했을지 모르는 개인이 아니라, 체제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그가 자신의 과거를 지우려는 행위는 국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은폐했던 역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4.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 이념.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중심 갈등은 극좌 혁명조직 ‘프렌치75’와 록조 대령의 극우 세력이라는 양극단의 이념적 대립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각자의 신념이라는 견고한 경계선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상대를 절멸시켜야 할 ‘적’으로 규정한다. 이들에게 대화나 타협의 여지는 없다. 오직 ‘하나의 전투가 끝난 뒤 또 다른 전투’(One Battle after another)가 있을 뿐이다. 영화는 이처럼 타협 없는 이념의 경계가 얼마나 허망한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혁명을 부르짖던 ‘프렌치75’는 내부의 배신과 외부의 탄압으로 와해되고, 조직원들은 역사의 패배자로 남아 무력감에 시달린다.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밥 퍼거슨이 그렇다. 반면, 체제수호의 신념을 가졌던 록조 대령은 권력욕과 편집증에 사로잡혀 자신의 핏줄마저 위협하는 괴물이 된다. 극단적인 이념은 결국 외부의 적이 아닌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감옥이었던 것이다. 5. 부모 세대가 그어놓은 경계선, 비극으로 맞이하는 다음 세대 퍼피디아의 딸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는 이 모든 비극의 결과물이다. 부모 세대가 그어놓은 경계선이 만들어낸 비극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다음 세대를 상징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과잉보호와 편집증 속에서 성장했고, 만나본 적 없는 엄마의 과격한 이상과 아버지 세대의 실패를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윌라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부모세대가 가졌던 거창하고도 잘못된 신념들이 다음 세대의 삶을 어떻게 옥죄고 파괴하는 지를 처절하게 보게 된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는 경계가 단지 지리적 선이 아니라, 인간을 분류하고 배제하는 권력의 매커니즘임을 보여준다. 국경은 이민자를 막고, 이념은 시민을 배제하고 나누며, 세대 간 경계는 미래를 위협한다. 영화의 엔딩장면은 이렇다. 다음세대의 상징인 윌라가 다시 혁명전투에 불려나가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가 제기하는 질문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유효하다. 국가는 어떤 인간을 받아들이는가?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타인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준은 과연 정당한가? 이념적 양극단이 모두 실패하는 모습은 경계 자체를 재사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렇지 않으면 ‘끝없는 전투’의 수렁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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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를 통해 본 경계와 배제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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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암 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 성료… 글과 그림으로 나눈 마음의 풍경
- [GN NEWS=가평군]기문정 시민기자=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가 깊어가는 가을, 가평 청평암 대웅전에서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가을비가 조용히 내리는 가운데에도 많은 이들이 우산을 들고 행사장을 찾아 자리를 지켰고, 그 정성 어린 발걸음이 축제의 의미를 한층 더 깊게 했다. 올해로 일곱 번째를 맞은 이 축제는 전국 단위의 글짓기·그리기 공모전과 함께, 참가자와 관람객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마련된 체험 부스와 먹거리 부스, 그리고 수상자들이 참여한 ‘끼자랑’ 무대가 더해져 따뜻하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이번 축제에는 전국 각지에서 창의적이고 진정성 있는 작품들이 다수 출품되었고, 글짓기 부문 74명, 그리기 부문 243명 등 총 317명의 입상자가 선정되었으며, 글짓기에서는 3명, 그리기에서는 8명이 공동 대상을 수상해 해마다 높아지는 참여도와 수준을 다시금 확인케 했다. 청평암 조실 명요 구암 스님은 개회사에서 “예술은 자비의 표현이며, 진심을 담은 글과 그림은 세상을 맑히는 수행의 한 길”이라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이야말로 가장 깊은 치유의 언어”라고 강조했다. 서태원 가평군수는 “이번 공모전의 주제처럼 ‘사찰, 나눔, 칭찬, 사랑, 어리석음, 자유’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부처님의 말씀이라 생각하며, 6회째를 거치면서 매년 훌륭한 작품들이 탄생가게 된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며, " '꽃나무 울타리 세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경치가 좋은 사찰, 청평암에서 뛰어난 수준의 문화축제가 해마다 열리게 되어 가평군의 또 하나의 문화자산으로 이 대회가 오래도록 함께 가기를 염원한다"고 축하 메세지를 전했다. 김용태 국회의원(가평·포천)은 “대회에 참가하여 영예로운 상을 받은 수상자 여러분께 진심 어린 축하 를 전하며, 이 뜻깊은 행사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써주신 구암 조실 스님과 청평암 관계자께도 깊은 감사의 마을을 드린다”며, "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재능을 발휘하고 꿈을 펼치는 축제의 장일뿐 아니라 불교문화예술을 이어가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격려를 보냈다. 특히 올해는 가평 지역 출신 수상자 두 명이 공동대상에 오르며 지역사회에 큰 자긍심을 안겼다. 일반부 대상 수상자인 이경민 씨는 ‘산이 주는 자유’라는 수필을 통해 도심의 숨 가쁜 일상에서 벗어나 계절의 리듬과 산의 품 안에서 자유를 느끼는 정서적 해방감을 섬세한 언어로 표현해냈고, 심사위원단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사색적으로 풀어낸 문장이 깊고 따뜻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단연 이번 축제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 수상자는 청평고등학교 2학년 이소윤 학생이었다. 고등부 대상작인 ‘하루 일찍’은 자폐장애를 가진 동생을 둔 누나로서 가족의 현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창작소설로, 격정 없이 절제된 문체 안에 담긴 가족의 인내와 연민, 그 속에서도 지켜지는 사랑과 희망의 정서가 조용하지만 묵직한 감동을 자아냈다. ‘하루 일찍’이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 메시지였다. 자폐를 가진 아이를 둔 어머니가 왜 아이보다 하루 더 살아야 하는지, 또 하루 먼저 보내야만 하는지에 대한 절절한 고백이 담겨 있다. 세상보다 하루 앞서 깨어야 하는 어머니의 삶, 눈치보다 한 발 먼저 움직여야 하는 가족의 리듬을 상징하며, 이소윤 학생은 그 복잡한 감정과 삶의 모순을 감정에 기대지 않고 깊은 이해와 애정의 언어로 담담히 풀어냈다. 이소윤 학생은 수상 후 인터뷰에서 “제 동생은 말은 없지만 제게 많은 말을 하게 만든 존재예요. 글을 쓸 수 있게 해줘서 고맙고, 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실제 자폐를 가진 동생을 둔 누나로서, 가족 안에서 느껴온 복합적인 감정과 삶의 단면들이 작품 「하루 일찍」의 모티브가 되었다. <사진자료=청평암 공식카페> 글짓기 심사평에서는 다음과 같은 평가가 전해졌다. “올해에도 여전히 뜨거운 기온에 장마와 가뭄과 열대야 속에서 한 계절이 가고 있다. 점점 우리의 대지도 공해에 몸살을 하는지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였다. 하늘의 상황도 이곳처럼 그리 만만치 않아서일까 싶다. 그래도 많은 작품들이 출품되어 마음은 풍요로웠다. 문학적 기량이 돋보이는 작품들도 보이고, 작은 손으로 조곤조곤 말하는 예쁜 글들도 보였다. 심사하면서 잘 쓰인 문장의 기교보다는 글쓴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했고, 공감이 가는 글에 애정을 담았다. 채혜원의 ‘<빗을 잃어버린 인어>를 읽고’라는 책 속 소년과 소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고 간결하다. 그 여린 심성을 잘 유지하여 좋은 시를 쓰길 바란다. 장서진의 ‘자유는 날개’라는 자연스럽게 잘 쓰인 시다. 누구든 함께 그 길을 따라 즐기며 같은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한 번쯤은 해 본 경험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된다. 고등부의 이소윤의 ‘하루 일찍’은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을 담담한 어투로 차분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자폐아를 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절절한지, 얼마나 애쓰고 아픈지를 담백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루 일찍’ 이라는 제목부터 마음을 흔들고 아프게 했다. 과하지 않게 절제하며 써 내려가는 문장이 더욱더 문제의 앞으로 다가가게 만든다. 조금만 더 다듬어지면 더욱 좋은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정진하길 바란다. 일반부 이경민의 ‘산이 주는 자유’는 도시인의 숨 가쁜 삶 속에서 우연히 산행하며 자유를 느끼는 일을 계절별로 쓴 글이다. 막힘없이 매끄러운 글이다. 계절마다 다른 느낌의 자유를 잘 묘사하여 함께 기분 좋게 산행을 한 느낌이다. 자연과 더불어 삶의 시선을 맑게 하는 일의 중요성도 보여 준 작품이었다.”고 평하며, 이번 공모전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진심 어린 시도와 가능성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번 축제는 단순한 문예대회나 경연을 넘어, 서로 다른 세대와 지역, 시선을 하나로 모으는 문화적 공감의 장이었다. 유치부부터 일반부에 이르기까지 본선 진출작들은 청평암 대웅전 마루에 전시되어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전했고, 어린이의 해맑음부터 성인의 성찰까지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며 큰 울림을 남겼다. 심만기 심사위원(BS㈜ 밝은생각 대표이사)은 “예술은 결과보다 과정에서의 진심이 중요하다. 특히 올해는 유아·청소년 부문의 작품 수준이 높아 구성력과 감정표현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행사 주최 측은 “참가자 한 명 한 명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모든 출품작은 예술로서의 가치가 충분했다”며 “앞으로도 아라한 문화축제가 단지 수상 중심이 아닌 성장과 나눔의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는 자연 속 사찰이라는 공간에서 예술을 통한 치유와 공감, 연대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 뜻깊은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행사 말미에는 청평암에서 참석자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마련한 따뜻한 공양이 제공되었으며, 빗속에서도 축제의 자리를 지켜낸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이자 깊은 나눔의 실천이 되었다. 단순한 식사가 아닌, 마음을 담은 대접이었던 그 공양은 서로의 마음을 잇는 또 하나의 예술로 기억되었다. <사진자료=청평암 공식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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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암 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 성료… 글과 그림으로 나눈 마음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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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군 설악면, 미원천 정화 및 꽃밭 가꾸기 봉사로 마을 환경 개선 나서
- [GN NEWS=가평군]김경태 시민기자=가평군 설악면은 9월 2일 오전 9시부터 미원성당 앞 미원천 일대에서 하천 정화 및 꽃밭 가꾸기 봉사활동을 실시하며 쾌적하고 아름다운 마을 환경 조성에 나섰다. 이번 활동은 설악마을공동체와 설악면 행복마을관리소가 공동 주관하고, 한국수력원자력(주) 청평수력발전소의 후원으로 진행되었다. 참여자들은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하천 주변에 무단 투기된 쓰레기를 수거하고, 꽃밭을 정리‧가꾸며 구슬땀을 흘렸다. 특히 봉사자들은 활동을 통해 하천 주변이 점차 깨끗해지고 꽃밭이 아름답게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며 큰 보람을 느꼈다. 한 주민은 “깨끗해진 하천을 보니 힘든 줄도 모르고 즐겁게 봉사에 임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마을 환경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설악마을공동체 관계자는 “주민이 직접 나서는 작은 실천이 모여 마을의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며 “지속적인 환경 정화와 꽃밭 가꾸기를 통해 살기 좋은 설악면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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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군 설악면, 미원천 정화 및 꽃밭 가꾸기 봉사로 마을 환경 개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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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연지구 디 오리지널 4K- 그 놈의 사랑은 왜 50년을 버텄을까.
- 그 놈의 사랑은 왜 50년을 버텄을까. -영화 <연지구>. 그때 그 홍콩의 밤거리는 축축한 습기와 더불어,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전조’같은 것들이 공기 중에 떠 다녔던 것 같다. 1987년. 영화 <연지구> 속 배경이다. 그때 홍콩인들은 분주했다. 누군가는 주식을 샀다가 망했고, 누군가는 캐나다 이민 서류를 쓰면서 나라를 바꿀 준비를 했다. 그 소란한 홍콩의 소식이 바다를 건너오던 무련, 서울의 학생이었던 필자는 회수권을 모으고 있었다. 두 장이면 풀빵이 하나와 바꿔 먹을 수 있다. 팥은 늘 적었고, 우리는 늘 배고팠다. 학교 앞에서 풀빵으로 바꿔먹으며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을 이야기했다. 총은 슬로모션으로 쏘는 게 맞다고 믿었고 긴 바바리코트에 이쑤시개를 입에 물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취권으로 대변되던 성룡의 홍콩영화가 눅눅함과 끈적함, 그리고 홍콩의 비릿한 밤거리를 조명한 누아르 영화들로 변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대학생 형과 누나들이 민주항쟁의 한복판에 있었고, 세기말적 분위기와 새 시대에 대한 불안과 뜨거움이 교차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 혼돈의 1987년 한복판에, 영화는 1934년의 화려한 유곽 ‘의홍루’를 소환한다. 남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여화(매염방)의 눈빛, 그 눈빛과 목소리에 단번에 포획된 진진방(장국영)의 시선이 마주치는 그 찰나 그 두 사람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때는 화려했던 청나라가 몰락하고 내전과 격동의 시기인 중화민국 시절이다. 이때 여화가 부른 노래는 광동 전통음악인 <객도추한(客途秋恨)>이라고 한다. 객도, 나그네 길. 추한, 가을 느끼는 한(恨). 떠도는 나그네 길에서 맞는 가을의 슬픔이라니. 남성 화자가 기생과의 짧은 사랑을 회상하며 다시 만날 수 없는 현실을 한탄하는 노래이다. 여화는 바로 그 남성 화자의 역할로 남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다가 진진방을 만난다. 이 노래를 아는 중국인이라면 이미 이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를 스포한 셈이다. 그들은 사랑했다. 의홍루의 붉은 등불 아래서, 신분도 시대도 아랑곳없이. 하지만 기생이었던 여화와 부잣집 도련님 진진방은 끝내 그 차이를 뛰어넘을 수가 없었다. 사랑을 이어갈 수 없던 두 사람은 사랑의 증표인 연지구(臙脂扣, 연지가 담긴 화장품 장신구)를 목에 걸어주며 저승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여화는 저승에서 50년이 넘도록 진진방을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1987년, 이승으로 내려온다. 사실 흔한 이야기다. 사랑이 시들기 전에 삶을 꺾어 버리는 비극적 사랑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랬고, 와타나베 준이치의 <실락원> 속 구키와 린코도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연지구>는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죽음 이후에 50여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그놈의 사랑’을 확인하려 드는 데서 진짜 비극이 시작된다. 1987년, 구천을 떠돌던 여화가 차가운 콘크리트 보도블록 위에 다시 섰을 때는 여화가 알던 아름답고 몽환적이며 화려했던 홍콩이 아니었다. 여화의 눈을 통해 우리는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섰다는 변화가 아니라, 한 시대의 정서가 통째로 증발해 버린 것에 대한 당혹감이다. 화려했던 목재 건물도, 붉은 치파오도, 금빛 장식도 사라졌다. 대신에 회색 콘크리트위에 그저 무색인 와이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홍콩의 반환을 앞두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홍콩인들은 과거의 좌표를 잃어버린 유령 여화의 불안을 비추는 거울처럼 보였다. 영화는 그렇게 과거의 비극적 낭만과 세기말적 우울을 겹쳐 놓으며 묻는다. 현대인이 바쁘게 살아남기 위해 버티는 현실이 반세기를 버틴 순애보보다 값진 것인가라고. 결국 여화는 진진방을 찾아낸다. 진진방은 죽지 않았었다. 그리고 살아남아 늙고 초라해져 있었다. 여화는 이십대의 꽃다운 모습 그대로이지만, 진진방은 단역 배우로 겨우 풀칠하는 노인에 불과했다. 두 사람이 마주한 순간, 말 대신 긴 침묵이 흘렀다. 그럴 수밖에. 그 재회의 순간은 숭고하지도 눈물겹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독하게 환멸스러웠다. 인생을 바쳐 기다린 결과가 이런 비루한 생존의 찌꺼기였다니. 여화는 연지구를 돌려주며 말한다. 이제 당신을 기다리지 않겠다고. 그건 배신에 대한 원망이라기보다는 오래 붙잡고 있던 과거의 환상에서 비로소 탈출하는 영혼의 마지막 인사였다. 진진방은 비겁하게 살아남아 추해졌지만, 여화는 그 약속을 지키려 했던 그 뜨거운 집념 덕분에 영원히 그 시절의 찬란한 모습으로 남았다. 영화는 그렇게 1930년대의 그 뜨겁고도 서늘한 아름다움과 1987년의 불안했던 홍콩의 공기를 한권의 앨범처럼 묶어 우리 앞에 내놓는다. 이제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 시절의 홍콩. 회수권을 아껴서 극장표로 바꿔보던 홍콩영화. 그리고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장국영과 매염방. 아이러니하게도 두 배우는 2003년, 약속이라도 한 듯 나란히 모두 우리 곁을 떠났다. 불멸의 별이 되어. 연지구 속에 있던 붉은 연지는 지워졌어도 그 자리에 남은 서늘한 자국은 여전하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어쩌면 지키지 못한 약속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비루한 진실을 마주하고도 기꺼이 과거의 자신을 놓아줄 수 있는 그 서글픈 용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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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연지구 디 오리지널 4K- 그 놈의 사랑은 왜 50년을 버텄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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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김경태, 현장에서 답을 찾는 지역 일꾼
- [GN NEWS=가평군]이성아 기자=가평 지역에서 오랜 시간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봉사의 길을 걸어온 김경태(52) 국민의힘 당원이 경기도의원 출마를 준비하며 지역 정가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화려한 정치 경력보다는 현장에서 축적해 온 생활 경험과 주민과의 소통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현장형 인물’이라는 평가다. 김경태 예정자는 현재 국민의힘 SNS 가평군 위원장을 맡아 지역 현안과 정책 정보를 온라인을 통해 공유하고 주민들과 소통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SNS를 활용해 지역 정책과 행정 현안을 쉽게 전달하며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 정치권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그는 이전에 가평군 인권센터장과 설악마을공동체 대표를 역임하며 지역 공동체 활성화와 주민 참여 확대를 위한 활동을 이어왔다. 주민 생활과 밀접한 문제를 직접 듣고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방식으로 지역 사회와의 접점을 넓혀 왔다는 평가다. 풀뿌리 활동으로 다져온 지역 기반 김 예정자의 정치 행보는 지역사회 활동에서 시작됐다. 설악면 주민자치위원과 새마을지도자, 기동대원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의 크고 작은 일에 참여해 왔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생활 현장의 문제를 가까이에서 접해왔다. 또한 경기도교육청 주민참여예산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책과 예산이 지역 사회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경험을 쌓았고, 가평군 자유총연맹 설악면 회장을 맡아 지역 공동체 결속과 사회 봉사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김 예정자는 “주민들과 눈을 맞추며 들었던 생활 속 어려움이 곧 정책의 출발점이 된다”며 “행정과 정책은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완성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가평의 잠재력을 현실로 만들겠다” 김경태 예정자는 가평이 가진 자연환경과 관광 자원을 중요한 성장 기반으로 평가하면서도 교통, 교육, 의료 등 생활 기반시설 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가평은 수도권과 가까운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교통 인프라와 의료 서비스 등 생활 기반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경기도와 가평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통해 예산 확보와 정책 반영을 이끌어내는 도의원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가평이 더 이상 소외 지역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지역의 강점을 살린 정책과 지원을 적극적으로 끌어내겠다”며 “지역 발전을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원칙과 책임의 정치” 김 예정자는 스스로를 ‘현장에서 답을 찾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선거 시기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정치가 아니라 평소에도 주민 곁에서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믿습니다.” 이어 그는 “원칙을 지키는 정치, 약속을 책임지는 정치가 결국 신뢰를 만든다”며 “군민 한 분 한 분의 목소리를 소중히 여기고 낮은 자세로 지역을 섬기겠다”고 말했다. 설악면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역 활동을 이어온 김경태 예정자의 도전이 향후 가평 정치 지형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지역 사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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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김경태, 현장에서 답을 찾는 지역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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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혹독한 추위, 흔들리는 본성 -영화
- [GN NEWS=가평군]이성아 기자=가끔은 잘 만든 B급영화가 어설픈 대작보다 더 정확히 우리의 감각을 건드려준다. <콜드 미트>는 바로 그런 영화이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생존 스릴러다. 영하25도, 폭설, 산속에 고립된 차량, 휴대전화는 먹통. ‘인간 대 자연’이라는 장르의 공식을 따른다. 그러나 이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자연이 배경이 아니라 영화를 구성하는 강력한 서사의 하나가 된다. 영화는 익숙한 장르문법으로 시작한다. 데이비드(앨런 리치)가 학대하는 전 남편에게서 웨이트리스 애나를 구하며 등장한다. 관객은 의심하지 않고 그의 서사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눈길에 미끄러지는 사고로 인해 고립되고 그의 차 트렁크가 열리는 순간 영화는 관객의 윤리적 판단을 전복시킨다. 첫 번째 반전은 놀라움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쉽게 인물을 ‘선’으로 분류하는지를 드러낸다. 이후 영화는 속도와 결을 바꾼다. 눈보라의 혹독함 속 고립된 차안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심리전 대화, 제한된 공간, 제한된 인물, 제한된 정보. 이 가운데에 정보를 두 인물이 대사로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선택으로 서사를 밀고 나간다. 세바스찬 두루인 감독은 인물의 선택이라는 연출로 관객들도 선택의 갈림길을 생각할 수 있도록 내어준다. 이런 방법만으로 관객이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각본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비록 인과관계의 치밀함이나 대사의 정교함에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 감독은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선과 악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밝혔지만 영화는 철학을 확장하고 표현하기 보다는 긴장 유지에 집중했다. 그래서 존재론적 탐구보다는 체감형 생존극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무너지지 않고 밀고 가는 힘은 미장센에 있다. 세바스찬 드루인 감독은 프랑스 VFX스튜디오 출신으로 시각효과 분야에 오랜 경력을 쌓았다. 거대한 스펙터클을 설계하던 사람이 이 작품에선 공간을 최소화하고 과시적 CG가 아닌 프레임의 정밀함과 클로즈업으로 영화적 감각을 극대화시켰다. 피부, 속눈썹에 맺힌 고드름. 차 안을 익숙하면서도 생존 투쟁터로 재구성했다. 특히 사운드 설계는 인상적이다. 눈과 함께 몰아치는 바람소리는 극도의 압박감을 주고, 금속이 수축하는 소리, 거칠어지는 호흡, 차체를 때리는 눈보라. 관객은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추위를 듣는다.’ 자연은 또 하나의 빌런으로 기능한다. 밖으로 나가면 얼어 죽고, 안에 있어도 안전하지 않다. 서사는 넓히기보다는 온도를 낮추는 표현으로 전환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선택한 것은 서사적 완성도보다 물리적 체감을 택했다. 이 영화는 이야기를 확장하지 않는 대신 끊임없이 조건을 악화시키는 방식으로 긴장을 설계한다. 그렇게 했기에 이 작품이 우리의 감각을 건드리고, 우리를 생리적으로 얼어붙게 만들어 버린다. <콜드 미트>는 거대한 철학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눈보라 속에 차 한 대를 세워두고 묻는다.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것은 당신의 신념인가, 아니면 당신의 본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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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혹독한 추위, 흔들리는 본성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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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영화가 잃어버린 '인간의 무게’
- <사진자료=프로젝트Y 포스터> 영화<프로젝트 Y>가 잃어버린 '인간의 무게’ 영화 <프로젝트 Y>의 오프닝과 엔딩씬은 지하보도에서 걷는 미선(한소희)과 도경(전종서)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영화전체의 톤이 무엇인지, 지향하는 스타일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90년대 홍콩영화의 그것이었다. 서울의 밤 지하보도의 인공광과 레드, 블랙의 강렬한 대비를 시킨 이 장면을 가장 힘주어 찍은 이환 감독은 <영웅본색>, <천장지구>처럼 홍콩 영화 르네상스 시기의 색감과 빛을 구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왜 이 영화는 90년대 홍콩 영화의 색감과 미장센을 구현하고 싶었을까? 그것은 이 영화가 세기말적인 청춘의 방황과 갈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왕가위 감독으로 대변되는 90년대 홍콩영화를 들여다보면 번잡한 도시 속 청춘들의 방황, 화려한 네온사인 속에 청춘의 고독을 담아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군가의 마음(사랑)을 갈구했고,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을 먹으며 사라져가는 시간과 인간성을 붙잡으려 몸부림쳤다. 90년대엔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때문에 그들이 누리던 모든 것들이 사라질 거라는 세기말적 두려움과 불안감이 팽배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6년에 그 홍콩영화의 변주곡을 자처한 <프로젝트Y>에는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대신 유통기한 없는 금괴를 위해 자신의 삶을 팔아치운다. 여기에선 그 찬란한 슬픔도, 청춘의 무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황금의 욕망을 향한 맹목적인 질주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사진자료=프로젝트Y 스틸컷> 세기말적 미학의 오용 이 영화는 90년대 홍콩영화의 색감과 미장센을 복제하고자 하지만 그 색채 아래 담긴 것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파괴되어가는 인간성의 전시였다. 영화는 ‘우연히 알게 된 정보로 유흥가의 실세 토사장의 은닉자금을 훔치려던 미선과 도경이 돌이킬 수 없는 수렁을 향해 질주’하는 서사를 담고 있다. 문제는 이 ‘질주’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이다. 폭력과 피로 가득한 이 영화는 어떠한 것으로 승화되지 못한 채 관객은 그들의 폭력을 관조하며 소리와 촉각의 자극을 탐닉하게 만든다. 이는 ‘탐미주의’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미적 빈곤이자 스타일의 과잉이 낳은 불쾌한 결과물이다. 거세된 저항과 매몰된 연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2007년작 <데쓰 프루프(Death Proof)>는 여성들이 남성 살인마(가해자)를 응징하며 얻는 전복적인 쾌감을 주는 동시에 ‘복수’와 ‘해방’이라는 여성서사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프로젝트 Y>는 물질적 몰락에서 헤어 나오고자 인간성을 거세하는 퇴행을 보여준다. 낮에는 꽃집 주인으로, 밤에는 유흥가의 에이스로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미선과 도경은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는다. 그들이 저항해야 할 대상은 명확하다. 토사장으로 대변되는 자본권력과 그들을 착취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저항을 7억원의 현금보따리와 금괴상자의 탈취라는 또다른 범죄로만 치환한다. 저항의 대상은 명확하지 않다. 저항의 방식은 오직 폭력과 누가 물질을 가로챘것인가의 서사에서 관객이 느낄 수 있는 것은 허무뿐이다. 이렇듯 문학과 영화가 쌓아올린 ‘여성의 연대와 저항’마저 자본의 논리와 세기말적 무력감에 매몰되었다는 점이 안타깝다. “엄마가 죽었어. 엄마가 죽었다고!”라며 도경(전종서)에게 원망하듯 외치는 미선(한소희)에게 도경은 ‘너도 엄마가 죽기를 바랬잖아’라고 받아친다. 엄마(김신록) 역시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살아가지만 도경과 미선이 가져온 황금을 보고 기회를 다시 잡으려는 추한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비춰진다. Y세대인 도경에겐 '엄마의 시대'가 저무는 것을 슬퍼하고 동정하는 것은 잠시이고 당연한 폐기로 받아들인다. 과거(역사)에 대한 부채 의식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생존'이라는 본능만 남는다. 이들의 관계는 마치 영혼을 잃어버리고 본능적 욕망만이 존재하는 좀비 공동체에 불과했다. 자신을 구해준 엄마(김신록)은 도경에게 두 손으로 얼굴을 붙잡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 모든 것이 잘 설명된다. “물러 터졌어. 우리 도경이. 너 꼴리는 대로 살아. 너 꼴리는 대로 살라고!” 감독은 "차에 한 번 올라타면 끝까지 달려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 것처럼, 영화는 멈추지 않는 질주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질주의 끝에 무엇이 있는가? 미래와 희망이 거세된 채 금괴라는 물질적 가치를 쫓다 그 세계를 떠나버리는 결말은, 탈출이라기보다 열패감 끝에 시스템에 투항한 현실 순응자의 뒷모습처럼 보였다. <사진자료=프로젝트Y 스틸컷> 복제되지 못한 ‘인간의 무게’ '사람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고 하는 감독의 말과는 달리,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의 욕망을 위해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장치처럼 보인다. 미선과 도경의 선택은 예측 가능하고, 그들의 행동은 플롯을 진행시키기 위한 장치에 그친다. 평범한 일상을 꿈꾸던 그들이 범죄의 세계로 뛰어드는 과정에서 내적 갈등이나 도덕적 고뇌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90년대 홍콩 영화가 '파멸' 앞에서도 인연의 찰나와 고독의 무게를 긍정했다면, <프로젝트 Y>는 그 자리에 냉소와 생존 본능만을 채워 넣었다. 한소희와 전종서라는 아이코닉한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겪는 고통은 관객에게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비극의 전시'로 휘발된다. 90년대 홍콩 느와르의 스타일은 복제했을지언정, 그 스타일이 지탱해야 할 '인간에 대한 연민' 그 무게감까지는 담아내지 못한 셈이다.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디스토피아는 예술적 통찰이 아니라 냉소적 상업주의 산물로 전락하기 쉽다. 이 영화가 남긴 ‘불쾌한 허무’는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상업주의적 포장의 한계 이 영화는 제작 단계부터 최근 극장에서 보기 드문 여성 투톱영화로 화제를 모았다. 토론토국제영화제 특별 프레젠테이션 섹션초청, 이환감독의 전작 <박화영>이 영화제에서 쌓아올린 명성에 한소희 전종서라는 대중적 스타파워를 결합한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마케팅 전략이 오히려 작품의 본질을 가리거나 작품의 방향성마저 흐트러 놓은 것은 아닐까. 여성 주인공에 장르물을 붙이면 여성서사의 완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라도 하는 것일까. 여성 서사가 단순히 '여성이 주인공인 범죄물'을 넘어 시대의 울림이 되려면, 총구와 차가운 네온사인 너머에 있는 '억압된 인간, 차별받는 인간에 대한 무게'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독자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해졌다. 독자들은 이 영화를 '희망이 거세된 시대의 자화상'으로 읽을까? 이 영화가 주는 불쾌함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 존엄'의 가치를 환기할까? 제작진이 의도한 '좋은 배신감'이 과연 관객에게 긍정적인 카타르시스를 줄 것인지, 아니면 그저 공허한 냉소만을 남기는지는 관객 각자의 몫이 될 것이다. 냉소와 통찰은 한 끗 차이이다. 마치 윳놀이의 ‘도’와 ‘빽도’처럼 말이다. 단순히 세상은 망했고 희망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예술적 게으름에 가깝다. 이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왜, 여전히 인간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계속 살아내야 하는가’에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게 해야 한다. "미선과 도경은 세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정작 그들이 쏜 것은 자신들의 마지막 인간성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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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영화가 잃어버린 '인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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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이념이 타버린 터널 속, 인간은 여전히 유효한가.
- <사진자료=영화<터널>포스터> 이념이 타버린 터널 속, 인간은 여전히 유효한가. 베트남 전쟁을 다룬 수많은 영화는 대게 두 가지 시선 중 하나를 택해왔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비극적 충돌로 보거나, 혹은 화염방사기와 헬기 소리로 대변되는 압도적인 화력의 스펙터클과 영웅주의로 소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부이 탁 추옌(Bùi Thạc Chuyên) 감독의 영화 <터널>(Địa Đạo)은 이 모든 외피를 난폭하게 벗겨낸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꾸찌 터널은 베트남 전쟁 당시 게릴라군이 압도적인 화력을 가진 미군에 맞서 생존과 투쟁을 이어가기 위해 거미줄처럼 파내려 간 터널이다. 총 길이 약 250km에 달하는 거대한 요새였다. 이 영화 속에는 승리에 대한 결연함, 숭고한 희생 대신에 물속에서 대나무 빨대에 숨을 의지한 채 살아내야 하는 원초적인 공포와 지독한 생존 본능만을 응시한다. <사진자료=영화<터널>스틸컷> 영화 <터널>은 1967년 꾸찌터널에서 미군에 대항하던 스물한 명의 해방군의 전사를 따라간다. 이들은 실존 인물이 아닌 감독이 의도하는 영화적 픽션이다. 빛 한 점 없는 지하벙커 속에서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그곳에서 ‘인간’이라는 정의는 여전히 유효한가를 묻는다. 부이 탁 추엔감독은 꾸찌터널이 구축되어 있어있는 지하 3층의 입체적인 구조를 고증하여 세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수직으로 이동시키며 공간을 수직적으로 분할하였다. 이는 영화의 핵심 메타포를 구축하기 위함인데, 지상은 이념의 공간이다. 성조기가 펄럭이고, 화염방사 전차가 불을 뿜어대고 네이팜탄이 쉴세없이 떨어진다. 그야말로 문명이 설계한 지옥이다. 반면 지하는 생존의 공간이다. 어둡고 인물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채 그들의 거친 숨소리와 흙을 파는 손의 움직임만이 사운드를 채운다. 이곳에서 인물들은 이데올로기를 토론하지 않는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뭉쳐야 했으며, 인간이라는 종을 잇기 위해 섹스하며, 죽지않기위해 살상한다. 특히 터널 벙커 깊숙한 곳에 두 남녀가 격렬하게 뒤엉키는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논란의 여지를 만든다. 하지만 이 장면이 단순히 생물학적 욕구의 발산으로 보이지 않는다. 터널 위에서 떨어지는 포탄가운데서도, 죽음이 가득한 공간에서 생명을 잉태하려는 몸짓. 그것은 절망에 대한 원초적인 반역이며 미래를 향한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취하는 행동이 결국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물학적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을 적나라하게 말한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인간 존엄의 타락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베트남의 원동력을 발견한다. 명분은 사라지고 본능만 남은 상태에서 투쟁은 오히려 그 무엇보다 강력했다. 이념을 위해 죽는 사람은 흔치 않지만, 살고자 하는 생명체의 의지는 결코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터널 속의 삶은 비참하지만 그 비참함이야말로 침략자가 결코 정복할 수 없었던 ‘뿌리’였다. 그것이 저항이었고, 베트남의 정신을 그 속에서 찾아야 볼 수 있다. <사진자료=영화<터널>스틸컷> 베트남 통일 50주년을 맞아 자국 관객에게 주는 메시지는 “우리는 이렇게 비참하게, 그러나 지독하게 살아남아 오늘을 만들었다”일 것이다. 마치 선전영화로 보일법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감독이 묘하게 배치한 밑바닥의 저변에 깔린 메시지를 읽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승리에 대한 자취(自取)가 아니라 생존에 대한 경외다. 이상하게 기억에 오래 남는 장면이 있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군이 원시적인 죽창에 찔려 죽어가는 장면이다. 20세기의 기술을 상징하는 미군이 이 원시적인 도구에 찔리는 순간 전쟁은 문명과 문명과의 전쟁이 아니라 육체와 육체의 충돌로 격하된다. 죽어가던 미군이 마지막을 내뱉은 말을 ‘물을 달라’라는 외침이었다. 그가 마지막에 갈구한 것은 승리도, 성조기도, 민주주의 수호도 아니었다. 단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 원소였다. 이 순간 흙탕물을 마시던 베트남 게릴라와 미국 군인은 갈증을 느끼지는 생명체로서 평등해진다. 인간이 겹겹이 쌓아올린 기술, 이념, 힘은 갈증 앞에서 무력해질 뿐이다. 이쯤 되면 영화는 프로파간다(선전영화)를 넘어 실존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참호 속에서, 가자기구의 무너진 건물 아래서 인간은 여전히 ‘물을 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터널>은 이념의 이름으로 타인의 육체를 파괴하는 행위가 얼마나 원시적이고 헛된 것인지를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인 반전(反戰) 메시지를 완성한다. <사진자료=영화<터널>스틸컷> 극장 문을 나서면서도 그 압도적인 공포의 잔상이 꺼지지 않았다. 화염방사 전차가 숲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드는 거대한 불길이 눈에 새겨졌다. 고막을 찢는 듯한 네이팜탄의 폭음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예고 없이 번쩍이며 끊임없이 쏟아지는 총알의 빛과 날카로운 소음. 이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하나, 땅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마치 기독교인들이 로마황제의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카타콤’을 연상시킨다.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지하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렸다면, 베트남인에게 꾸찌터널은 생존이라는 신을 모시는 성전이 되었다. 영화 <터널>이 보여주는 지독한 생존의 풍경은 우리에게 낯선 타국의 역사가 아니다. 한국의 근현대 역시 거대한 화염이 지상을 휩쓸고 간 터널의 시간이었다. 식민지의 어둠을 견뎌낸 정신적 카타콤부터,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방공호로, 숲으로 기어들었던 우리의 어머니들까지. 우리 역시 ‘물을 달라’라는 비명이 가득한 지옥 속에서 오늘을 일궈냈다. 이 영화<터널>은 마치 우리에게 질문하고 건네고 있다고 느꼈다. 베트남의 꾸찌터널이 지금의 베트남을 있게 한 원동력이듯, 한국을 지탱해온 그 질긴 생존의 에너지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혹시 그것은 경쟁과 성장이라는 또 다른 전쟁터로 변질되지는 않았는가. 터널 속에서 배운 생명에 대한 경외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개인주의와 혐오 속에서도 여전히 마르지 않는 마중물처럼 흐르고 있는가,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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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이념이 타버린 터널 속, 인간은 여전히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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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마을교육공동체, 추억 담은 찻집 수익금으로 따뜻한 나눔 실천
- [GN NEWS=가평군]기문정 기자=가평마을교육공동체가 올 한 해 동안 지역과 함께 펼쳐온 활동의 결실을 따뜻한 나눔으로 이어갔다. 지난 12월 19일 진행된 ‘추억의 일일찻집’ 행사 수익금 100만 원을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지정기탁금으로 가평군청 행복돌봄과 아동복지팀에 전달하며 지역사회 돌봄 실천의 모범을 보였다. 이번 일일찻집 행사는 옛 추억을 되살리는 레트로 감성과 주민 참여형 나눔 문화를 결합해 지역 주민의 큰 호응을 얻었으며, 음식과 음악, 깜짝 이벤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아라비안나이트7080(구 유튜브)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2014년 설립된 가평마을교육공동체는 지난 10여 년간 팜파티, 꿈의학교, 마을밥상, 영화 만들기 등 다양한 교육·문화활동을 통해 마을과 학교, 그리고 주민이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 모델을 구축해 왔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마을 영화 만들기’, ‘가마공 벼룩시장’ 등 주민이 주체가 되어 기획하고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공동체 역량과 나눔의 가치를 확산해 왔다. 가평마을교육공동체 관계자는 “이번 나눔이 단발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연대하고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 문화로 확장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세대와 이웃을 잇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해 더 많은 주민이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평군 관계자는 “지역 공동체의 자발적인 참여로 마련된 이번 기탁은 보호종료아동들에게 실질적인 응원과 힘이 될 것”이라며 “전달된 후원금은 자립을 준비하는 보호종료아동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정성으로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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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마을교육공동체, 추억 담은 찻집 수익금으로 따뜻한 나눔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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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마을교육공동체, 함께해서 더 따뜻했던 ‘가마공 벼룩시장’ 성황리 마무리
- [GN NEWS=가평군]기문정 기자=가평마을교육공동체(가마공)가 주관한 ‘가마공 벼룩시장’이 지난 11월 2일 가평 철길공원에서 개최되어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민들과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따뜻한 참여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약 20여 팀의 셀러가 함께한 이번 행사는 아이들이 팀을 이루어 직접 물건을 준비하고 판매에 참여하면서 단순한 거래를 넘어 배움과 책임, 자립심을 길러주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고, 구석구석 다양한 물건과 손수 만든 수공예품, 먹거리들이 가득해 보는 즐거움도 더해졌다. 행사장 곳곳에는 ‘두부 저염 쌈장 만들기’, ‘요거트 컵과일 만들기’, ‘커피화분’, ‘립밤·비누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게 마련되어 어린이와 가족 모두가 즐기며 직접 만들고 체험하는 교육적 시간이 함께했고, 고사리손으로 판매 부스를 운영하며 설명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방문객들의 발길을 오래도록 머물게 했다. 행사 중 펼쳐진 버스킹 공연은 영화음악, 대중가요, 연주곡이 어우러진 감성 가득한 무대로 구성되었고, 현장 관객의 즉석 신청곡 연주와 아이들의 참여 무대까지 더해져 마치 마을 축제 같은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올해 진행된 ‘우리마을 영화 만들기’ 프로젝트는 마을과 공동체가 함께 참여해 가평의 일상과 이야기를 영화로 기록하며, 마을의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작업으로 평가받았으며, 주민들 사이에서는 내년에도 꼭 이어가길 바란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평마을교육공동체는 지난 10여 년간 팜파티 축제, 꿈의학교, 마을밥상, 직업체험, 영화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마을과 학교, 아이와 어른이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꾸준히 실천해왔고, 이번 벼룩시장을 통해 다시 한 번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 깨닫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전했다. 이성아 가마공 회장은 “앞으로도 가마공은 주민과 가족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마을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며, 언제든 이 여정에 함께할 가족들을 기다린다”며 공동체와 교육이 함께하는 마을 문화를 확산해나갈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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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를 통해 본 경계와 배제의 정치
-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통해 본 경계와 배제의 정치 1. 국경은 누구를 막는가. 국가는 경계를 통해 자신을 정의한다. 그 경계는 지리적일 수도 있고, 법적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문화적·이념적 기준에 따라 설정된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tfer Another)는 이러한 경계의 정치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이민자와 난민을 둘러싼 국가의 태도는 ‘누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권력과 인간성의 본질을 묻는다. 영화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에 있는 이민자 구금시설을 급습하는 ‘프렌치75’의 액션으로 시작한다. 이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핵심 주제를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국경은 단순히 두 나라를 나누는 지리적 선이 아님을 보여준다. 구금된 이민자들은 이미 미국 영토 안에 있지만, 여전히 ‘밖의 존재’로 취급된다. 이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말한 ‘예외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법의 테두리안에 있지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존재들. 그들은 국경을 넘었지만 여전히 경계 바깥에 머문다. 이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 국가는 무제한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구금된 이민자들이 처한 예외상태는 트럼프 행정부가 벌인 이민정책의 폭력성, 타국에 대한 폭력적 권력행사를 떠올리게 한다. 국가 권력이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특정 집단을 비인간적인 존재로 낙인찍어 배제하는 폭력적인 정치의 장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록조 대령(숀펜 분)으로 대표되는 국가 시스템은 이 경계선을 통해 ‘안보’라는 명분 아래 이민자들을 통제하고 억압한다. 영화 속 ‘프렌치75’의 혁명은 이 배제의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었지만, 그 방식 역시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점에서 경계가 만들어낸 갈등의 악순환을 표현했다. 2.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존재, 퍼피디아의 저항 주인공 퍼피디아는 프렌치75라는 급진적인 단체의 핵심 인물로, 체제에 대한 저항을 상징한다. 그녀는 미국 시민이지만, 자유라는 기치를 들고 국가의 이념과 충돌하는 순간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녀의 행동은 범죄로 규정되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경계가 국적이나 출생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념적 경계를 넘는 순간 시민조차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퍼피디아는 국가가 받아들이지 않는 자의 상징이다. 3. 록조 대령과 제도적 경계 록조 대령은 퍼피디아를 과거에 ‘가르쳤다’라고 말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복잡한 개인사가 있다. 록조는 퍼피디아에게 집착적 감정을 품었다. 그녀에게 남자친구(밥 퍼거슨역,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있었음에도, 록조는 그녀와 관계를 맺었고 자식까지 낳았다. 하지만 그는 국가 권력의 대리자로서 그녀를 탄압하는 역할을 수행 한다. 결국 그녀를 체포하고, 과거를 지우기 위해 그 자식마저 죽이려 한다. 이 설정이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여기에는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있다. 국가권력은 ‘개인의 이념이나 윤리보다 제도적 질서를 우선시 한다’는 것이다. 록조 대령에게 퍼피디아는 한때 사랑했을지 모르는 개인이 아니라, 체제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그가 자신의 과거를 지우려는 행위는 국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은폐했던 역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4.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 이념.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중심 갈등은 극좌 혁명조직 ‘프렌치75’와 록조 대령의 극우 세력이라는 양극단의 이념적 대립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각자의 신념이라는 견고한 경계선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상대를 절멸시켜야 할 ‘적’으로 규정한다. 이들에게 대화나 타협의 여지는 없다. 오직 ‘하나의 전투가 끝난 뒤 또 다른 전투’(One Battle after another)가 있을 뿐이다. 영화는 이처럼 타협 없는 이념의 경계가 얼마나 허망한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혁명을 부르짖던 ‘프렌치75’는 내부의 배신과 외부의 탄압으로 와해되고, 조직원들은 역사의 패배자로 남아 무력감에 시달린다.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밥 퍼거슨이 그렇다. 반면, 체제수호의 신념을 가졌던 록조 대령은 권력욕과 편집증에 사로잡혀 자신의 핏줄마저 위협하는 괴물이 된다. 극단적인 이념은 결국 외부의 적이 아닌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감옥이었던 것이다. 5. 부모 세대가 그어놓은 경계선, 비극으로 맞이하는 다음 세대 퍼피디아의 딸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는 이 모든 비극의 결과물이다. 부모 세대가 그어놓은 경계선이 만들어낸 비극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다음 세대를 상징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과잉보호와 편집증 속에서 성장했고, 만나본 적 없는 엄마의 과격한 이상과 아버지 세대의 실패를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윌라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부모세대가 가졌던 거창하고도 잘못된 신념들이 다음 세대의 삶을 어떻게 옥죄고 파괴하는 지를 처절하게 보게 된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는 경계가 단지 지리적 선이 아니라, 인간을 분류하고 배제하는 권력의 매커니즘임을 보여준다. 국경은 이민자를 막고, 이념은 시민을 배제하고 나누며, 세대 간 경계는 미래를 위협한다. 영화의 엔딩장면은 이렇다. 다음세대의 상징인 윌라가 다시 혁명전투에 불려나가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가 제기하는 질문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유효하다. 국가는 어떤 인간을 받아들이는가?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타인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준은 과연 정당한가? 이념적 양극단이 모두 실패하는 모습은 경계 자체를 재사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렇지 않으면 ‘끝없는 전투’의 수렁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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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를 통해 본 경계와 배제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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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암 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 성료… 글과 그림으로 나눈 마음의 풍경
- [GN NEWS=가평군]기문정 시민기자=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가 깊어가는 가을, 가평 청평암 대웅전에서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가을비가 조용히 내리는 가운데에도 많은 이들이 우산을 들고 행사장을 찾아 자리를 지켰고, 그 정성 어린 발걸음이 축제의 의미를 한층 더 깊게 했다. 올해로 일곱 번째를 맞은 이 축제는 전국 단위의 글짓기·그리기 공모전과 함께, 참가자와 관람객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마련된 체험 부스와 먹거리 부스, 그리고 수상자들이 참여한 ‘끼자랑’ 무대가 더해져 따뜻하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이번 축제에는 전국 각지에서 창의적이고 진정성 있는 작품들이 다수 출품되었고, 글짓기 부문 74명, 그리기 부문 243명 등 총 317명의 입상자가 선정되었으며, 글짓기에서는 3명, 그리기에서는 8명이 공동 대상을 수상해 해마다 높아지는 참여도와 수준을 다시금 확인케 했다. 청평암 조실 명요 구암 스님은 개회사에서 “예술은 자비의 표현이며, 진심을 담은 글과 그림은 세상을 맑히는 수행의 한 길”이라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이야말로 가장 깊은 치유의 언어”라고 강조했다. 서태원 가평군수는 “이번 공모전의 주제처럼 ‘사찰, 나눔, 칭찬, 사랑, 어리석음, 자유’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부처님의 말씀이라 생각하며, 6회째를 거치면서 매년 훌륭한 작품들이 탄생가게 된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며, " '꽃나무 울타리 세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경치가 좋은 사찰, 청평암에서 뛰어난 수준의 문화축제가 해마다 열리게 되어 가평군의 또 하나의 문화자산으로 이 대회가 오래도록 함께 가기를 염원한다"고 축하 메세지를 전했다. 김용태 국회의원(가평·포천)은 “대회에 참가하여 영예로운 상을 받은 수상자 여러분께 진심 어린 축하 를 전하며, 이 뜻깊은 행사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써주신 구암 조실 스님과 청평암 관계자께도 깊은 감사의 마을을 드린다”며, "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재능을 발휘하고 꿈을 펼치는 축제의 장일뿐 아니라 불교문화예술을 이어가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격려를 보냈다. 특히 올해는 가평 지역 출신 수상자 두 명이 공동대상에 오르며 지역사회에 큰 자긍심을 안겼다. 일반부 대상 수상자인 이경민 씨는 ‘산이 주는 자유’라는 수필을 통해 도심의 숨 가쁜 일상에서 벗어나 계절의 리듬과 산의 품 안에서 자유를 느끼는 정서적 해방감을 섬세한 언어로 표현해냈고, 심사위원단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사색적으로 풀어낸 문장이 깊고 따뜻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단연 이번 축제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 수상자는 청평고등학교 2학년 이소윤 학생이었다. 고등부 대상작인 ‘하루 일찍’은 자폐장애를 가진 동생을 둔 누나로서 가족의 현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창작소설로, 격정 없이 절제된 문체 안에 담긴 가족의 인내와 연민, 그 속에서도 지켜지는 사랑과 희망의 정서가 조용하지만 묵직한 감동을 자아냈다. ‘하루 일찍’이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 메시지였다. 자폐를 가진 아이를 둔 어머니가 왜 아이보다 하루 더 살아야 하는지, 또 하루 먼저 보내야만 하는지에 대한 절절한 고백이 담겨 있다. 세상보다 하루 앞서 깨어야 하는 어머니의 삶, 눈치보다 한 발 먼저 움직여야 하는 가족의 리듬을 상징하며, 이소윤 학생은 그 복잡한 감정과 삶의 모순을 감정에 기대지 않고 깊은 이해와 애정의 언어로 담담히 풀어냈다. 이소윤 학생은 수상 후 인터뷰에서 “제 동생은 말은 없지만 제게 많은 말을 하게 만든 존재예요. 글을 쓸 수 있게 해줘서 고맙고, 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실제 자폐를 가진 동생을 둔 누나로서, 가족 안에서 느껴온 복합적인 감정과 삶의 단면들이 작품 「하루 일찍」의 모티브가 되었다. <사진자료=청평암 공식카페> 글짓기 심사평에서는 다음과 같은 평가가 전해졌다. “올해에도 여전히 뜨거운 기온에 장마와 가뭄과 열대야 속에서 한 계절이 가고 있다. 점점 우리의 대지도 공해에 몸살을 하는지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였다. 하늘의 상황도 이곳처럼 그리 만만치 않아서일까 싶다. 그래도 많은 작품들이 출품되어 마음은 풍요로웠다. 문학적 기량이 돋보이는 작품들도 보이고, 작은 손으로 조곤조곤 말하는 예쁜 글들도 보였다. 심사하면서 잘 쓰인 문장의 기교보다는 글쓴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했고, 공감이 가는 글에 애정을 담았다. 채혜원의 ‘<빗을 잃어버린 인어>를 읽고’라는 책 속 소년과 소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고 간결하다. 그 여린 심성을 잘 유지하여 좋은 시를 쓰길 바란다. 장서진의 ‘자유는 날개’라는 자연스럽게 잘 쓰인 시다. 누구든 함께 그 길을 따라 즐기며 같은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한 번쯤은 해 본 경험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된다. 고등부의 이소윤의 ‘하루 일찍’은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을 담담한 어투로 차분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자폐아를 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절절한지, 얼마나 애쓰고 아픈지를 담백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루 일찍’ 이라는 제목부터 마음을 흔들고 아프게 했다. 과하지 않게 절제하며 써 내려가는 문장이 더욱더 문제의 앞으로 다가가게 만든다. 조금만 더 다듬어지면 더욱 좋은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정진하길 바란다. 일반부 이경민의 ‘산이 주는 자유’는 도시인의 숨 가쁜 삶 속에서 우연히 산행하며 자유를 느끼는 일을 계절별로 쓴 글이다. 막힘없이 매끄러운 글이다. 계절마다 다른 느낌의 자유를 잘 묘사하여 함께 기분 좋게 산행을 한 느낌이다. 자연과 더불어 삶의 시선을 맑게 하는 일의 중요성도 보여 준 작품이었다.”고 평하며, 이번 공모전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진심 어린 시도와 가능성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번 축제는 단순한 문예대회나 경연을 넘어, 서로 다른 세대와 지역, 시선을 하나로 모으는 문화적 공감의 장이었다. 유치부부터 일반부에 이르기까지 본선 진출작들은 청평암 대웅전 마루에 전시되어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전했고, 어린이의 해맑음부터 성인의 성찰까지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며 큰 울림을 남겼다. 심만기 심사위원(BS㈜ 밝은생각 대표이사)은 “예술은 결과보다 과정에서의 진심이 중요하다. 특히 올해는 유아·청소년 부문의 작품 수준이 높아 구성력과 감정표현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행사 주최 측은 “참가자 한 명 한 명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모든 출품작은 예술로서의 가치가 충분했다”며 “앞으로도 아라한 문화축제가 단지 수상 중심이 아닌 성장과 나눔의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는 자연 속 사찰이라는 공간에서 예술을 통한 치유와 공감, 연대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 뜻깊은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행사 말미에는 청평암에서 참석자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마련한 따뜻한 공양이 제공되었으며, 빗속에서도 축제의 자리를 지켜낸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이자 깊은 나눔의 실천이 되었다. 단순한 식사가 아닌, 마음을 담은 대접이었던 그 공양은 서로의 마음을 잇는 또 하나의 예술로 기억되었다. <사진자료=청평암 공식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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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암 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 성료… 글과 그림으로 나눈 마음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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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군 설악면, 미원천 정화 및 꽃밭 가꾸기 봉사로 마을 환경 개선 나서
- [GN NEWS=가평군]김경태 시민기자=가평군 설악면은 9월 2일 오전 9시부터 미원성당 앞 미원천 일대에서 하천 정화 및 꽃밭 가꾸기 봉사활동을 실시하며 쾌적하고 아름다운 마을 환경 조성에 나섰다. 이번 활동은 설악마을공동체와 설악면 행복마을관리소가 공동 주관하고, 한국수력원자력(주) 청평수력발전소의 후원으로 진행되었다. 참여자들은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하천 주변에 무단 투기된 쓰레기를 수거하고, 꽃밭을 정리‧가꾸며 구슬땀을 흘렸다. 특히 봉사자들은 활동을 통해 하천 주변이 점차 깨끗해지고 꽃밭이 아름답게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며 큰 보람을 느꼈다. 한 주민은 “깨끗해진 하천을 보니 힘든 줄도 모르고 즐겁게 봉사에 임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마을 환경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설악마을공동체 관계자는 “주민이 직접 나서는 작은 실천이 모여 마을의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며 “지속적인 환경 정화와 꽃밭 가꾸기를 통해 살기 좋은 설악면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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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군 설악면, 미원천 정화 및 꽃밭 가꾸기 봉사로 마을 환경 개선 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