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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영화가 잃어버린 '인간의 무게’
<사진자료=프로젝트Y 포스터> 영화<프로젝트 Y>가 잃어버린 '인간의 무게’ 영화 <프로젝트 Y>의 오프닝과 엔딩씬은 지하보도에서 걷는 미선(한소희)과 도경(전종서)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영화전체의 톤이 무엇인지, 지향하는 스타일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90년대 홍콩영화의 그것이었다. 서울의 밤 지하보도의 인공광과 레드, 블랙의 강렬한 대비를 시킨 이 장면을 가장 힘주어 찍은 이환 감독은 <영웅본색>, <천장지구>처럼 홍콩 영화 르네상스 시기의 색감과 빛을 구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왜 이 영화는 90년대 홍콩 영화의 색감과 미장센을 구현하고 싶었을까? 그것은 이 영화가 세기말적인 청춘의 방황과 갈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왕가위 감독으로 대변되는 90년대 홍콩영화를 들여다보면 번잡한 도시 속 청춘들의 방황, 화려한 네온사인 속에 청춘의 고독을 담아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군가의 마음(사랑)을 갈구했고,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을 먹으며 사라져가는 시간과 인간성을 붙잡으려 몸부림쳤다. 90년대엔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때문에 그들이 누리던 모든 것들이 사라질 거라는 세기말적 두려움과 불안감이 팽배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6년에 그 홍콩영화의 변주곡을 자처한 <프로젝트Y>에는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대신 유통기한 없는 금괴를 위해 자신의 삶을 팔아치운다. 여기에선 그 찬란한 슬픔도, 청춘의 무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황금의 욕망을 향한 맹목적인 질주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사진자료=프로젝트Y 스틸컷> 세기말적 미학의 오용 이 영화는 90년대 홍콩영화의 색감과 미장센을 복제하고자 하지만 그 색채 아래 담긴 것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파괴되어가는 인간성의 전시였다. 영화는 ‘우연히 알게 된 정보로 유흥가의 실세 토사장의 은닉자금을 훔치려던 미선과 도경이 돌이킬 수 없는 수렁을 향해 질주’하는 서사를 담고 있다. 문제는 이 ‘질주’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이다. 폭력과 피로 가득한 이 영화는 어떠한 것으로 승화되지 못한 채 관객은 그들의 폭력을 관조하며 소리와 촉각의 자극을 탐닉하게 만든다. 이는 ‘탐미주의’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미적 빈곤이자 스타일의 과잉이 낳은 불쾌한 결과물이다. 거세된 저항과 매몰된 연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2007년작 <데쓰 프루프(Death Proof)>는 여성들이 남성 살인마(가해자)를 응징하며 얻는 전복적인 쾌감을 주는 동시에 ‘복수’와 ‘해방’이라는 여성서사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프로젝트 Y>는 물질적 몰락에서 헤어 나오고자 인간성을 거세하는 퇴행을 보여준다. 낮에는 꽃집 주인으로, 밤에는 유흥가의 에이스로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미선과 도경은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는다. 그들이 저항해야 할 대상은 명확하다. 토사장으로 대변되는 자본권력과 그들을 착취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저항을 7억원의 현금보따리와 금괴상자의 탈취라는 또다른 범죄로만 치환한다. 저항의 대상은 명확하지 않다. 저항의 방식은 오직 폭력과 누가 물질을 가로챘것인가의 서사에서 관객이 느낄 수 있는 것은 허무뿐이다. 이렇듯 문학과 영화가 쌓아올린 ‘여성의 연대와 저항’마저 자본의 논리와 세기말적 무력감에 매몰되었다는 점이 안타깝다. “엄마가 죽었어. 엄마가 죽었다고!”라며 도경(전종서)에게 원망하듯 외치는 미선(한소희)에게 도경은 ‘너도 엄마가 죽기를 바랬잖아’라고 받아친다. 엄마(김신록) 역시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살아가지만 도경과 미선이 가져온 황금을 보고 기회를 다시 잡으려는 추한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비춰진다. Y세대인 도경에겐 '엄마의 시대'가 저무는 것을 슬퍼하고 동정하는 것은 잠시이고 당연한 폐기로 받아들인다. 과거(역사)에 대한 부채 의식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생존'이라는 본능만 남는다. 이들의 관계는 마치 영혼을 잃어버리고 본능적 욕망만이 존재하는 좀비 공동체에 불과했다. 자신을 구해준 엄마(김신록)은 도경에게 두 손으로 얼굴을 붙잡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 모든 것이 잘 설명된다. “물러 터졌어. 우리 도경이. 너 꼴리는 대로 살아. 너 꼴리는 대로 살라고!” 감독은 "차에 한 번 올라타면 끝까지 달려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 것처럼, 영화는 멈추지 않는 질주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질주의 끝에 무엇이 있는가? 미래와 희망이 거세된 채 금괴라는 물질적 가치를 쫓다 그 세계를 떠나버리는 결말은, 탈출이라기보다 열패감 끝에 시스템에 투항한 현실 순응자의 뒷모습처럼 보였다. <사진자료=프로젝트Y 스틸컷> 복제되지 못한 ‘인간의 무게’ '사람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고 하는 감독의 말과는 달리,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의 욕망을 위해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장치처럼 보인다. 미선과 도경의 선택은 예측 가능하고, 그들의 행동은 플롯을 진행시키기 위한 장치에 그친다. 평범한 일상을 꿈꾸던 그들이 범죄의 세계로 뛰어드는 과정에서 내적 갈등이나 도덕적 고뇌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90년대 홍콩 영화가 '파멸' 앞에서도 인연의 찰나와 고독의 무게를 긍정했다면, <프로젝트 Y>는 그 자리에 냉소와 생존 본능만을 채워 넣었다. 한소희와 전종서라는 아이코닉한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겪는 고통은 관객에게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비극의 전시'로 휘발된다. 90년대 홍콩 느와르의 스타일은 복제했을지언정, 그 스타일이 지탱해야 할 '인간에 대한 연민' 그 무게감까지는 담아내지 못한 셈이다.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디스토피아는 예술적 통찰이 아니라 냉소적 상업주의 산물로 전락하기 쉽다. 이 영화가 남긴 ‘불쾌한 허무’는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상업주의적 포장의 한계 이 영화는 제작 단계부터 최근 극장에서 보기 드문 여성 투톱영화로 화제를 모았다. 토론토국제영화제 특별 프레젠테이션 섹션초청, 이환감독의 전작 <박화영>이 영화제에서 쌓아올린 명성에 한소희 전종서라는 대중적 스타파워를 결합한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마케팅 전략이 오히려 작품의 본질을 가리거나 작품의 방향성마저 흐트러 놓은 것은 아닐까. 여성 주인공에 장르물을 붙이면 여성서사의 완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라도 하는 것일까. 여성 서사가 단순히 '여성이 주인공인 범죄물'을 넘어 시대의 울림이 되려면, 총구와 차가운 네온사인 너머에 있는 '억압된 인간, 차별받는 인간에 대한 무게'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독자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해졌다. 독자들은 이 영화를 '희망이 거세된 시대의 자화상'으로 읽을까? 이 영화가 주는 불쾌함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 존엄'의 가치를 환기할까? 제작진이 의도한 '좋은 배신감'이 과연 관객에게 긍정적인 카타르시스를 줄 것인지, 아니면 그저 공허한 냉소만을 남기는지는 관객 각자의 몫이 될 것이다. 냉소와 통찰은 한 끗 차이이다. 마치 윳놀이의 ‘도’와 ‘빽도’처럼 말이다. 단순히 세상은 망했고 희망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예술적 게으름에 가깝다. 이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왜, 여전히 인간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계속 살아내야 하는가’에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게 해야 한다. "미선과 도경은 세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정작 그들이 쏜 것은 자신들의 마지막 인간성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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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이념이 타버린 터널 속, 인간은 여전히 유효한가.
<사진자료=영화<터널>포스터> 이념이 타버린 터널 속, 인간은 여전히 유효한가. 베트남 전쟁을 다룬 수많은 영화는 대게 두 가지 시선 중 하나를 택해왔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비극적 충돌로 보거나, 혹은 화염방사기와 헬기 소리로 대변되는 압도적인 화력의 스펙터클과 영웅주의로 소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부이 탁 추옌(Bùi Thạc Chuyên) 감독의 영화 <터널>(Địa Đạo)은 이 모든 외피를 난폭하게 벗겨낸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꾸찌 터널은 베트남 전쟁 당시 게릴라군이 압도적인 화력을 가진 미군에 맞서 생존과 투쟁을 이어가기 위해 거미줄처럼 파내려 간 터널이다. 총 길이 약 250km에 달하는 거대한 요새였다. 이 영화 속에는 승리에 대한 결연함, 숭고한 희생 대신에 물속에서 대나무 빨대에 숨을 의지한 채 살아내야 하는 원초적인 공포와 지독한 생존 본능만을 응시한다. <사진자료=영화<터널>스틸컷> 영화 <터널>은 1967년 꾸찌터널에서 미군에 대항하던 스물한 명의 해방군의 전사를 따라간다. 이들은 실존 인물이 아닌 감독이 의도하는 영화적 픽션이다. 빛 한 점 없는 지하벙커 속에서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그곳에서 ‘인간’이라는 정의는 여전히 유효한가를 묻는다. 부이 탁 추엔감독은 꾸찌터널이 구축되어 있어있는 지하 3층의 입체적인 구조를 고증하여 세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수직으로 이동시키며 공간을 수직적으로 분할하였다. 이는 영화의 핵심 메타포를 구축하기 위함인데, 지상은 이념의 공간이다. 성조기가 펄럭이고, 화염방사 전차가 불을 뿜어대고 네이팜탄이 쉴세없이 떨어진다. 그야말로 문명이 설계한 지옥이다. 반면 지하는 생존의 공간이다. 어둡고 인물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채 그들의 거친 숨소리와 흙을 파는 손의 움직임만이 사운드를 채운다. 이곳에서 인물들은 이데올로기를 토론하지 않는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뭉쳐야 했으며, 인간이라는 종을 잇기 위해 섹스하며, 죽지않기위해 살상한다. 특히 터널 벙커 깊숙한 곳에 두 남녀가 격렬하게 뒤엉키는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논란의 여지를 만든다. 하지만 이 장면이 단순히 생물학적 욕구의 발산으로 보이지 않는다. 터널 위에서 떨어지는 포탄가운데서도, 죽음이 가득한 공간에서 생명을 잉태하려는 몸짓. 그것은 절망에 대한 원초적인 반역이며 미래를 향한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취하는 행동이 결국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물학적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을 적나라하게 말한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인간 존엄의 타락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베트남의 원동력을 발견한다. 명분은 사라지고 본능만 남은 상태에서 투쟁은 오히려 그 무엇보다 강력했다. 이념을 위해 죽는 사람은 흔치 않지만, 살고자 하는 생명체의 의지는 결코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터널 속의 삶은 비참하지만 그 비참함이야말로 침략자가 결코 정복할 수 없었던 ‘뿌리’였다. 그것이 저항이었고, 베트남의 정신을 그 속에서 찾아야 볼 수 있다. <사진자료=영화<터널>스틸컷> 베트남 통일 50주년을 맞아 자국 관객에게 주는 메시지는 “우리는 이렇게 비참하게, 그러나 지독하게 살아남아 오늘을 만들었다”일 것이다. 마치 선전영화로 보일법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감독이 묘하게 배치한 밑바닥의 저변에 깔린 메시지를 읽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승리에 대한 자취(自取)가 아니라 생존에 대한 경외다. 이상하게 기억에 오래 남는 장면이 있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군이 원시적인 죽창에 찔려 죽어가는 장면이다. 20세기의 기술을 상징하는 미군이 이 원시적인 도구에 찔리는 순간 전쟁은 문명과 문명과의 전쟁이 아니라 육체와 육체의 충돌로 격하된다. 죽어가던 미군이 마지막을 내뱉은 말을 ‘물을 달라’라는 외침이었다. 그가 마지막에 갈구한 것은 승리도, 성조기도, 민주주의 수호도 아니었다. 단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 원소였다. 이 순간 흙탕물을 마시던 베트남 게릴라와 미국 군인은 갈증을 느끼지는 생명체로서 평등해진다. 인간이 겹겹이 쌓아올린 기술, 이념, 힘은 갈증 앞에서 무력해질 뿐이다. 이쯤 되면 영화는 프로파간다(선전영화)를 넘어 실존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참호 속에서, 가자기구의 무너진 건물 아래서 인간은 여전히 ‘물을 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터널>은 이념의 이름으로 타인의 육체를 파괴하는 행위가 얼마나 원시적이고 헛된 것인지를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인 반전(反戰) 메시지를 완성한다. <사진자료=영화<터널>스틸컷> 극장 문을 나서면서도 그 압도적인 공포의 잔상이 꺼지지 않았다. 화염방사 전차가 숲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드는 거대한 불길이 눈에 새겨졌다. 고막을 찢는 듯한 네이팜탄의 폭음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예고 없이 번쩍이며 끊임없이 쏟아지는 총알의 빛과 날카로운 소음. 이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하나, 땅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마치 기독교인들이 로마황제의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카타콤’을 연상시킨다.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지하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렸다면, 베트남인에게 꾸찌터널은 생존이라는 신을 모시는 성전이 되었다. 영화 <터널>이 보여주는 지독한 생존의 풍경은 우리에게 낯선 타국의 역사가 아니다. 한국의 근현대 역시 거대한 화염이 지상을 휩쓸고 간 터널의 시간이었다. 식민지의 어둠을 견뎌낸 정신적 카타콤부터,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방공호로, 숲으로 기어들었던 우리의 어머니들까지. 우리 역시 ‘물을 달라’라는 비명이 가득한 지옥 속에서 오늘을 일궈냈다. 이 영화<터널>은 마치 우리에게 질문하고 건네고 있다고 느꼈다. 베트남의 꾸찌터널이 지금의 베트남을 있게 한 원동력이듯, 한국을 지탱해온 그 질긴 생존의 에너지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혹시 그것은 경쟁과 성장이라는 또 다른 전쟁터로 변질되지는 않았는가. 터널 속에서 배운 생명에 대한 경외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개인주의와 혐오 속에서도 여전히 마르지 않는 마중물처럼 흐르고 있는가,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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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마을교육공동체, 추억 담은 찻집 수익금으로 따뜻한 나눔 실천
[GN NEWS=가평군]기문정 기자=가평마을교육공동체가 올 한 해 동안 지역과 함께 펼쳐온 활동의 결실을 따뜻한 나눔으로 이어갔다. 지난 12월 19일 진행된 ‘추억의 일일찻집’ 행사 수익금 100만 원을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지정기탁금으로 가평군청 행복돌봄과 아동복지팀에 전달하며 지역사회 돌봄 실천의 모범을 보였다. 이번 일일찻집 행사는 옛 추억을 되살리는 레트로 감성과 주민 참여형 나눔 문화를 결합해 지역 주민의 큰 호응을 얻었으며, 음식과 음악, 깜짝 이벤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아라비안나이트7080(구 유튜브)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2014년 설립된 가평마을교육공동체는 지난 10여 년간 팜파티, 꿈의학교, 마을밥상, 영화 만들기 등 다양한 교육·문화활동을 통해 마을과 학교, 그리고 주민이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 모델을 구축해 왔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마을 영화 만들기’, ‘가마공 벼룩시장’ 등 주민이 주체가 되어 기획하고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공동체 역량과 나눔의 가치를 확산해 왔다. 가평마을교육공동체 관계자는 “이번 나눔이 단발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연대하고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 문화로 확장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세대와 이웃을 잇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해 더 많은 주민이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평군 관계자는 “지역 공동체의 자발적인 참여로 마련된 이번 기탁은 보호종료아동들에게 실질적인 응원과 힘이 될 것”이라며 “전달된 후원금은 자립을 준비하는 보호종료아동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정성으로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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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마을교육공동체, 함께해서 더 따뜻했던 ‘가마공 벼룩시장’ 성황리 마무리
[GN NEWS=가평군]기문정 기자=가평마을교육공동체(가마공)가 주관한 ‘가마공 벼룩시장’이 지난 11월 2일 가평 철길공원에서 개최되어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민들과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따뜻한 참여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약 20여 팀의 셀러가 함께한 이번 행사는 아이들이 팀을 이루어 직접 물건을 준비하고 판매에 참여하면서 단순한 거래를 넘어 배움과 책임, 자립심을 길러주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고, 구석구석 다양한 물건과 손수 만든 수공예품, 먹거리들이 가득해 보는 즐거움도 더해졌다. 행사장 곳곳에는 ‘두부 저염 쌈장 만들기’, ‘요거트 컵과일 만들기’, ‘커피화분’, ‘립밤·비누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게 마련되어 어린이와 가족 모두가 즐기며 직접 만들고 체험하는 교육적 시간이 함께했고, 고사리손으로 판매 부스를 운영하며 설명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방문객들의 발길을 오래도록 머물게 했다. 행사 중 펼쳐진 버스킹 공연은 영화음악, 대중가요, 연주곡이 어우러진 감성 가득한 무대로 구성되었고, 현장 관객의 즉석 신청곡 연주와 아이들의 참여 무대까지 더해져 마치 마을 축제 같은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올해 진행된 ‘우리마을 영화 만들기’ 프로젝트는 마을과 공동체가 함께 참여해 가평의 일상과 이야기를 영화로 기록하며, 마을의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작업으로 평가받았으며, 주민들 사이에서는 내년에도 꼭 이어가길 바란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평마을교육공동체는 지난 10여 년간 팜파티 축제, 꿈의학교, 마을밥상, 직업체험, 영화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마을과 학교, 아이와 어른이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꾸준히 실천해왔고, 이번 벼룩시장을 통해 다시 한 번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 깨닫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전했다. 이성아 가마공 회장은 “앞으로도 가마공은 주민과 가족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마을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며, 언제든 이 여정에 함께할 가족들을 기다린다”며 공동체와 교육이 함께하는 마을 문화를 확산해나갈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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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를 통해 본 경계와 배제의 정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통해 본 경계와 배제의 정치 1. 국경은 누구를 막는가. 국가는 경계를 통해 자신을 정의한다. 그 경계는 지리적일 수도 있고, 법적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문화적·이념적 기준에 따라 설정된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tfer Another)는 이러한 경계의 정치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이민자와 난민을 둘러싼 국가의 태도는 ‘누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권력과 인간성의 본질을 묻는다. 영화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에 있는 이민자 구금시설을 급습하는 ‘프렌치75’의 액션으로 시작한다. 이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핵심 주제를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국경은 단순히 두 나라를 나누는 지리적 선이 아님을 보여준다. 구금된 이민자들은 이미 미국 영토 안에 있지만, 여전히 ‘밖의 존재’로 취급된다. 이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말한 ‘예외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법의 테두리안에 있지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존재들. 그들은 국경을 넘었지만 여전히 경계 바깥에 머문다. 이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 국가는 무제한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구금된 이민자들이 처한 예외상태는 트럼프 행정부가 벌인 이민정책의 폭력성, 타국에 대한 폭력적 권력행사를 떠올리게 한다. 국가 권력이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특정 집단을 비인간적인 존재로 낙인찍어 배제하는 폭력적인 정치의 장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록조 대령(숀펜 분)으로 대표되는 국가 시스템은 이 경계선을 통해 ‘안보’라는 명분 아래 이민자들을 통제하고 억압한다. 영화 속 ‘프렌치75’의 혁명은 이 배제의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었지만, 그 방식 역시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점에서 경계가 만들어낸 갈등의 악순환을 표현했다. 2.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존재, 퍼피디아의 저항 주인공 퍼피디아는 프렌치75라는 급진적인 단체의 핵심 인물로, 체제에 대한 저항을 상징한다. 그녀는 미국 시민이지만, 자유라는 기치를 들고 국가의 이념과 충돌하는 순간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녀의 행동은 범죄로 규정되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경계가 국적이나 출생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념적 경계를 넘는 순간 시민조차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퍼피디아는 국가가 받아들이지 않는 자의 상징이다. 3. 록조 대령과 제도적 경계 록조 대령은 퍼피디아를 과거에 ‘가르쳤다’라고 말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복잡한 개인사가 있다. 록조는 퍼피디아에게 집착적 감정을 품었다. 그녀에게 남자친구(밥 퍼거슨역,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있었음에도, 록조는 그녀와 관계를 맺었고 자식까지 낳았다. 하지만 그는 국가 권력의 대리자로서 그녀를 탄압하는 역할을 수행 한다. 결국 그녀를 체포하고, 과거를 지우기 위해 그 자식마저 죽이려 한다. 이 설정이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여기에는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있다. 국가권력은 ‘개인의 이념이나 윤리보다 제도적 질서를 우선시 한다’는 것이다. 록조 대령에게 퍼피디아는 한때 사랑했을지 모르는 개인이 아니라, 체제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그가 자신의 과거를 지우려는 행위는 국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은폐했던 역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4.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 이념.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중심 갈등은 극좌 혁명조직 ‘프렌치75’와 록조 대령의 극우 세력이라는 양극단의 이념적 대립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각자의 신념이라는 견고한 경계선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상대를 절멸시켜야 할 ‘적’으로 규정한다. 이들에게 대화나 타협의 여지는 없다. 오직 ‘하나의 전투가 끝난 뒤 또 다른 전투’(One Battle after another)가 있을 뿐이다. 영화는 이처럼 타협 없는 이념의 경계가 얼마나 허망한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혁명을 부르짖던 ‘프렌치75’는 내부의 배신과 외부의 탄압으로 와해되고, 조직원들은 역사의 패배자로 남아 무력감에 시달린다.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밥 퍼거슨이 그렇다. 반면, 체제수호의 신념을 가졌던 록조 대령은 권력욕과 편집증에 사로잡혀 자신의 핏줄마저 위협하는 괴물이 된다. 극단적인 이념은 결국 외부의 적이 아닌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감옥이었던 것이다. 5. 부모 세대가 그어놓은 경계선, 비극으로 맞이하는 다음 세대 퍼피디아의 딸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는 이 모든 비극의 결과물이다. 부모 세대가 그어놓은 경계선이 만들어낸 비극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다음 세대를 상징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과잉보호와 편집증 속에서 성장했고, 만나본 적 없는 엄마의 과격한 이상과 아버지 세대의 실패를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윌라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부모세대가 가졌던 거창하고도 잘못된 신념들이 다음 세대의 삶을 어떻게 옥죄고 파괴하는 지를 처절하게 보게 된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는 경계가 단지 지리적 선이 아니라, 인간을 분류하고 배제하는 권력의 매커니즘임을 보여준다. 국경은 이민자를 막고, 이념은 시민을 배제하고 나누며, 세대 간 경계는 미래를 위협한다. 영화의 엔딩장면은 이렇다. 다음세대의 상징인 윌라가 다시 혁명전투에 불려나가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가 제기하는 질문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유효하다. 국가는 어떤 인간을 받아들이는가?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타인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준은 과연 정당한가? 이념적 양극단이 모두 실패하는 모습은 경계 자체를 재사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렇지 않으면 ‘끝없는 전투’의 수렁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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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암 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 성료… 글과 그림으로 나눈 마음의 풍경
[GN NEWS=가평군]기문정 시민기자=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가 깊어가는 가을, 가평 청평암 대웅전에서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가을비가 조용히 내리는 가운데에도 많은 이들이 우산을 들고 행사장을 찾아 자리를 지켰고, 그 정성 어린 발걸음이 축제의 의미를 한층 더 깊게 했다. 올해로 일곱 번째를 맞은 이 축제는 전국 단위의 글짓기·그리기 공모전과 함께, 참가자와 관람객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마련된 체험 부스와 먹거리 부스, 그리고 수상자들이 참여한 ‘끼자랑’ 무대가 더해져 따뜻하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이번 축제에는 전국 각지에서 창의적이고 진정성 있는 작품들이 다수 출품되었고, 글짓기 부문 74명, 그리기 부문 243명 등 총 317명의 입상자가 선정되었으며, 글짓기에서는 3명, 그리기에서는 8명이 공동 대상을 수상해 해마다 높아지는 참여도와 수준을 다시금 확인케 했다. 청평암 조실 명요 구암 스님은 개회사에서 “예술은 자비의 표현이며, 진심을 담은 글과 그림은 세상을 맑히는 수행의 한 길”이라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이야말로 가장 깊은 치유의 언어”라고 강조했다. 서태원 가평군수는 “이번 공모전의 주제처럼 ‘사찰, 나눔, 칭찬, 사랑, 어리석음, 자유’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부처님의 말씀이라 생각하며, 6회째를 거치면서 매년 훌륭한 작품들이 탄생가게 된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며, " '꽃나무 울타리 세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경치가 좋은 사찰, 청평암에서 뛰어난 수준의 문화축제가 해마다 열리게 되어 가평군의 또 하나의 문화자산으로 이 대회가 오래도록 함께 가기를 염원한다"고 축하 메세지를 전했다. 김용태 국회의원(가평·포천)은 “대회에 참가하여 영예로운 상을 받은 수상자 여러분께 진심 어린 축하 를 전하며, 이 뜻깊은 행사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써주신 구암 조실 스님과 청평암 관계자께도 깊은 감사의 마을을 드린다”며, "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재능을 발휘하고 꿈을 펼치는 축제의 장일뿐 아니라 불교문화예술을 이어가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격려를 보냈다. 특히 올해는 가평 지역 출신 수상자 두 명이 공동대상에 오르며 지역사회에 큰 자긍심을 안겼다. 일반부 대상 수상자인 이경민 씨는 ‘산이 주는 자유’라는 수필을 통해 도심의 숨 가쁜 일상에서 벗어나 계절의 리듬과 산의 품 안에서 자유를 느끼는 정서적 해방감을 섬세한 언어로 표현해냈고, 심사위원단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사색적으로 풀어낸 문장이 깊고 따뜻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단연 이번 축제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 수상자는 청평고등학교 2학년 이소윤 학생이었다. 고등부 대상작인 ‘하루 일찍’은 자폐장애를 가진 동생을 둔 누나로서 가족의 현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창작소설로, 격정 없이 절제된 문체 안에 담긴 가족의 인내와 연민, 그 속에서도 지켜지는 사랑과 희망의 정서가 조용하지만 묵직한 감동을 자아냈다. ‘하루 일찍’이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 메시지였다. 자폐를 가진 아이를 둔 어머니가 왜 아이보다 하루 더 살아야 하는지, 또 하루 먼저 보내야만 하는지에 대한 절절한 고백이 담겨 있다. 세상보다 하루 앞서 깨어야 하는 어머니의 삶, 눈치보다 한 발 먼저 움직여야 하는 가족의 리듬을 상징하며, 이소윤 학생은 그 복잡한 감정과 삶의 모순을 감정에 기대지 않고 깊은 이해와 애정의 언어로 담담히 풀어냈다. 이소윤 학생은 수상 후 인터뷰에서 “제 동생은 말은 없지만 제게 많은 말을 하게 만든 존재예요. 글을 쓸 수 있게 해줘서 고맙고, 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실제 자폐를 가진 동생을 둔 누나로서, 가족 안에서 느껴온 복합적인 감정과 삶의 단면들이 작품 「하루 일찍」의 모티브가 되었다. <사진자료=청평암 공식카페> 글짓기 심사평에서는 다음과 같은 평가가 전해졌다. “올해에도 여전히 뜨거운 기온에 장마와 가뭄과 열대야 속에서 한 계절이 가고 있다. 점점 우리의 대지도 공해에 몸살을 하는지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였다. 하늘의 상황도 이곳처럼 그리 만만치 않아서일까 싶다. 그래도 많은 작품들이 출품되어 마음은 풍요로웠다. 문학적 기량이 돋보이는 작품들도 보이고, 작은 손으로 조곤조곤 말하는 예쁜 글들도 보였다. 심사하면서 잘 쓰인 문장의 기교보다는 글쓴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했고, 공감이 가는 글에 애정을 담았다. 채혜원의 ‘<빗을 잃어버린 인어>를 읽고’라는 책 속 소년과 소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고 간결하다. 그 여린 심성을 잘 유지하여 좋은 시를 쓰길 바란다. 장서진의 ‘자유는 날개’라는 자연스럽게 잘 쓰인 시다. 누구든 함께 그 길을 따라 즐기며 같은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한 번쯤은 해 본 경험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된다. 고등부의 이소윤의 ‘하루 일찍’은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을 담담한 어투로 차분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자폐아를 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절절한지, 얼마나 애쓰고 아픈지를 담백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루 일찍’ 이라는 제목부터 마음을 흔들고 아프게 했다. 과하지 않게 절제하며 써 내려가는 문장이 더욱더 문제의 앞으로 다가가게 만든다. 조금만 더 다듬어지면 더욱 좋은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정진하길 바란다. 일반부 이경민의 ‘산이 주는 자유’는 도시인의 숨 가쁜 삶 속에서 우연히 산행하며 자유를 느끼는 일을 계절별로 쓴 글이다. 막힘없이 매끄러운 글이다. 계절마다 다른 느낌의 자유를 잘 묘사하여 함께 기분 좋게 산행을 한 느낌이다. 자연과 더불어 삶의 시선을 맑게 하는 일의 중요성도 보여 준 작품이었다.”고 평하며, 이번 공모전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진심 어린 시도와 가능성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번 축제는 단순한 문예대회나 경연을 넘어, 서로 다른 세대와 지역, 시선을 하나로 모으는 문화적 공감의 장이었다. 유치부부터 일반부에 이르기까지 본선 진출작들은 청평암 대웅전 마루에 전시되어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전했고, 어린이의 해맑음부터 성인의 성찰까지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며 큰 울림을 남겼다. 심만기 심사위원(BS㈜ 밝은생각 대표이사)은 “예술은 결과보다 과정에서의 진심이 중요하다. 특히 올해는 유아·청소년 부문의 작품 수준이 높아 구성력과 감정표현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행사 주최 측은 “참가자 한 명 한 명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모든 출품작은 예술로서의 가치가 충분했다”며 “앞으로도 아라한 문화축제가 단지 수상 중심이 아닌 성장과 나눔의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는 자연 속 사찰이라는 공간에서 예술을 통한 치유와 공감, 연대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 뜻깊은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행사 말미에는 청평암에서 참석자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마련한 따뜻한 공양이 제공되었으며, 빗속에서도 축제의 자리를 지켜낸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이자 깊은 나눔의 실천이 되었다. 단순한 식사가 아닌, 마음을 담은 대접이었던 그 공양은 서로의 마음을 잇는 또 하나의 예술로 기억되었다. <사진자료=청평암 공식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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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군 설악면, 미원천 정화 및 꽃밭 가꾸기 봉사로 마을 환경 개선 나서
[GN NEWS=가평군]김경태 시민기자=가평군 설악면은 9월 2일 오전 9시부터 미원성당 앞 미원천 일대에서 하천 정화 및 꽃밭 가꾸기 봉사활동을 실시하며 쾌적하고 아름다운 마을 환경 조성에 나섰다. 이번 활동은 설악마을공동체와 설악면 행복마을관리소가 공동 주관하고, 한국수력원자력(주) 청평수력발전소의 후원으로 진행되었다. 참여자들은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하천 주변에 무단 투기된 쓰레기를 수거하고, 꽃밭을 정리‧가꾸며 구슬땀을 흘렸다. 특히 봉사자들은 활동을 통해 하천 주변이 점차 깨끗해지고 꽃밭이 아름답게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며 큰 보람을 느꼈다. 한 주민은 “깨끗해진 하천을 보니 힘든 줄도 모르고 즐겁게 봉사에 임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마을 환경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설악마을공동체 관계자는 “주민이 직접 나서는 작은 실천이 모여 마을의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며 “지속적인 환경 정화와 꽃밭 가꾸기를 통해 살기 좋은 설악면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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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의 연대가 어떻게 국가의 역사가 되는지를 보여준 영화.
월터 살레스 감독의 <아임 스틸 히어>(원제:Ainda Estou Aqui)는 단순한 전기 영화를 넘어, 한 가족의 개인적 비극을 통해 국가적 폭력과 기억의 상실에 맞서는 거대한 투쟁을 펼치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개인의 기억이 어떻게 국가의 역사로 승화 되는지를 깨닫게 한다. 월터 살레스, <아임 스틸 히어>가 건네는 숙제 영화는 1970년 브라질 군사 독재 정권에 의해 희생된 루벤스 파이바 의원를 다루고 있다. 이 사건은 브라질 군사정권이 반정부 인사들을 대상으로 자행했던 정치적 숙청, 불법연행, 고문, 실종, 그리고 죽음의 아픈 역사였다. 영화는 시대적 폭력 속에서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이 절망에 빠지지 않고 진실을 찾기 위해 투쟁하며, 잃어버린 가족을 기억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남편을 잃은 아내나 아버지를 잃은 가족의 고통을 과장하거나 신파적으로 그리지 않고, 자녀들 앞에서 묵묵히 버텨내는 어머니 유니스의 강인함을 통해 '기억'이라는 행위 자체가 곧 '저항'이었음을 보여준다. 아임 스틸 히어. ‘나는 아직 여기 있다’는 원제는 사라진 아버지의 외침이다. 나는 아직 가족 속에 있고, 역사 속에 있다. 그리고 가족의 기억 속에 있고, 역사의 기억 속에 있다는 외침이다. 역사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다짐이 된다. 이 영화는 잊혀지는 것을 거부하고, 기억의 증인이 되어달라고 호소한다. 슈퍼 8미리 필름으로 구현하는 기억의 질감 월터 살레스 감독은 1970년대의 기억을 시각화 하는 방법으로 슈퍼 8미리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다. 실제 영화 속에서도 8미리 카메라로 촬영하는 장면이 등장하곤 하는데, 이를 통해 과거의 한 순간이지만 행복했던 가족을 따스한 빛과 색감으로 그려냈다. 또한 이 거친 입자와 불안정한 화면으로 오래된 가족 앨범이나 빛바랜 기억 속 한 장면을 생생하게 관객과 공유한다. 이는 영화가 단순한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기억의 복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상실을 뒤섞으며, 기억이 단단한 실체가 아니라 언제든 부서지고 변형될 수 있는 연약한 것임을,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불안정한 화면을 통해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또 하나의 미학적 선택은 감정의 절제였다. 감독은 노년에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 유니스(페르난다 토레스)의 고통스러운 순간이나, 아버지의 실종 소식을 접하는 가족들의 눈물 어린 장면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그녀가 묵묵히 길을 걷거나, 서류를 정리하고, 아버지가 없는 식탁에 앉아있는 뒷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절제된 연출은 신파극의 감정적 과잉을 피하고, 관객들이 인물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침묵의 슬픔과 강인함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인물에게서 오히려 더 큰 슬픔을 느끼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서 강한 저항의 의지를 읽어낸다. 이는 '한(恨)'이라는 정서를 통해 비극을 다루는 한국적 정서와도 깊게 맞닿아 있어, 우리에게 공감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의 기억들, 그리고 한국영화의 부재 <아임 스틸 히어>를 보고 있으면, 한국의 과거사가 자연스럽게 겹쳐서 떠오른다. 우리 역사에도 군부독재 시대가 있었으며, 과오를 은닉하고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 가슴 깊이 각인된 아픔들이 있었다. 세월호가 그랬고, 이태원 참사가 그랬고, 최근엔 무안 국제공항 사고가 있었다. 브라질의 과거와 너무도 흡사한 동백림 사건도 있었고, 광주 민주화 운동과 4.3사건까지. 이름조차 기억되지 못하고 유린된 희생과 사건들은 우리 가슴 한편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그런데 정작 이런 기억들을 월터 살레스만큼 섬세하고 깊이 있게 다루는 한국영화는 어디에 있을까? 천만관객 동원이라는 숫자에 매몰되거나, 화려한 액션과 스펙터클에만 골몰하고 K컬쳐라는 한류에 취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달려온 지금의 한국영화는 성공보다는 망해가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한국영화가 사회적 주제를 아예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자극적 소재로 소비되거나, 단순한 선악구조로 치환되는 경우가 많다. 정작 깊이 있는 성찰과 창작의 작품은 사라지고 있다. 자본의 논리라며 심도있는 창작과 다양성 영화에는 투자되지 않고 제작이 사라지니 창작은 말라가고 있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러한 류의 영화는 한국 영화에서 소멸되고 있다. 반면에 <아임 스틸 히어>는 전세계적 극장에서 한화로 500억 이상 매출이 나오고 있다. 곧 한국에서도 개봉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상업적 성공은 쉽지 않을 것이다. 많은 극장은 상업적이지 않다는 이상한 이유로 외면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영화를 살려야 한다며 할인권을 극장에 힘을 실어주는 저급한 정책에 정작 지원 받아야할 영화인들은 울고 있고, 영화 창작자들은 외면 받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영화의 권력이 극장에 있으니 말이다. <아임 스틸 히어>가 보여준 것 같은 깊이 있는 성찰,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따뜻하면서도 냉정한 관찰과 역사의 기억을 통한 영화적 기록이 필요한데 말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하는 가. 이 영화는 브라질의 특수한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그 핵심에는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 아버지는 육체적으로 사라졌지만, 가족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며 그들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어머니는 기억을 잃어가지만,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진실을 향한 투쟁의 의지만큼은 사라지지 않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영화는 결국, 존재의 증명이 물리적인 것이 아닌, 기억과 사랑에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는 한, 그 사람은 영원히 '여기'에 존재한다는 메시지다. <아임 스틸 히어>를 보는 것은 단순히 영화 한 편을 관람하는 행위를 넘어, 역사의 증인이 되어 '기억의 연대'에 동참하는 중요한 경험이다. 이 영화가 슬픔을 직시하고 기억을 되살리는 용기가 어떻게 희망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술적 증언이다. 한국영화가 이런 숙제에 응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도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아직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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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마을공동체·가평효정봉사단, 하천 보호 위한 환경캠페인 펼쳐
[GN NEWS=가평군]김초희 시민기자=설악마을공동체와 가평효정봉사단이 공동으로 주최한 환경보호 캠페인이 8월 1일(금)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설악면 시내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캠페인에는 약 80명이 참여해 하천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는 피켓 시위 환경캠페인을 전개했다. 이번 캠페인은 한국수력원자력㈜ 청평수력발전소의 후원으로 추진되었으며, 참가 단체들은 우리 지역의 하천과 환경을 동시에 지키는 실질적인 행동을 촉구하였다. 참가자들은 "우리의 물, 우리의 미래! 하천 보호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 하천을 깨끗하게 보호하자!", "하천이 살아 숨 쉬는 환경! 우리의 맑은 미래입니다!" 등 다양한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으며 생활 속 실천 가능한 환경보호 활동을 함께 독려하였다. 설악마을공동체 참가자는 “'하천 보호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라는 문구가 제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려면 우리 세대가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늘의 캠페인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가평효정봉사단 관계자는 “생명을 품은 하천, 생명을 살리는 일에 모두가 동참해 주시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정기적인 환경 캠페인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무더위 속에서도 청년들의 힘찬 움직임과 외침을 통해 지역 사회의 환경 보호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진행되었으며, 참가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따뜻한 연대를 통해 의미 있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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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영화가 잃어버린 '인간의 무게’
- <사진자료=프로젝트Y 포스터> 영화<프로젝트 Y>가 잃어버린 '인간의 무게’ 영화 <프로젝트 Y>의 오프닝과 엔딩씬은 지하보도에서 걷는 미선(한소희)과 도경(전종서)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영화전체의 톤이 무엇인지, 지향하는 스타일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90년대 홍콩영화의 그것이었다. 서울의 밤 지하보도의 인공광과 레드, 블랙의 강렬한 대비를 시킨 이 장면을 가장 힘주어 찍은 이환 감독은 <영웅본색>, <천장지구>처럼 홍콩 영화 르네상스 시기의 색감과 빛을 구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왜 이 영화는 90년대 홍콩 영화의 색감과 미장센을 구현하고 싶었을까? 그것은 이 영화가 세기말적인 청춘의 방황과 갈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왕가위 감독으로 대변되는 90년대 홍콩영화를 들여다보면 번잡한 도시 속 청춘들의 방황, 화려한 네온사인 속에 청춘의 고독을 담아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군가의 마음(사랑)을 갈구했고,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을 먹으며 사라져가는 시간과 인간성을 붙잡으려 몸부림쳤다. 90년대엔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때문에 그들이 누리던 모든 것들이 사라질 거라는 세기말적 두려움과 불안감이 팽배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6년에 그 홍콩영화의 변주곡을 자처한 <프로젝트Y>에는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대신 유통기한 없는 금괴를 위해 자신의 삶을 팔아치운다. 여기에선 그 찬란한 슬픔도, 청춘의 무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황금의 욕망을 향한 맹목적인 질주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사진자료=프로젝트Y 스틸컷> 세기말적 미학의 오용 이 영화는 90년대 홍콩영화의 색감과 미장센을 복제하고자 하지만 그 색채 아래 담긴 것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파괴되어가는 인간성의 전시였다. 영화는 ‘우연히 알게 된 정보로 유흥가의 실세 토사장의 은닉자금을 훔치려던 미선과 도경이 돌이킬 수 없는 수렁을 향해 질주’하는 서사를 담고 있다. 문제는 이 ‘질주’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이다. 폭력과 피로 가득한 이 영화는 어떠한 것으로 승화되지 못한 채 관객은 그들의 폭력을 관조하며 소리와 촉각의 자극을 탐닉하게 만든다. 이는 ‘탐미주의’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미적 빈곤이자 스타일의 과잉이 낳은 불쾌한 결과물이다. 거세된 저항과 매몰된 연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2007년작 <데쓰 프루프(Death Proof)>는 여성들이 남성 살인마(가해자)를 응징하며 얻는 전복적인 쾌감을 주는 동시에 ‘복수’와 ‘해방’이라는 여성서사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프로젝트 Y>는 물질적 몰락에서 헤어 나오고자 인간성을 거세하는 퇴행을 보여준다. 낮에는 꽃집 주인으로, 밤에는 유흥가의 에이스로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미선과 도경은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는다. 그들이 저항해야 할 대상은 명확하다. 토사장으로 대변되는 자본권력과 그들을 착취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저항을 7억원의 현금보따리와 금괴상자의 탈취라는 또다른 범죄로만 치환한다. 저항의 대상은 명확하지 않다. 저항의 방식은 오직 폭력과 누가 물질을 가로챘것인가의 서사에서 관객이 느낄 수 있는 것은 허무뿐이다. 이렇듯 문학과 영화가 쌓아올린 ‘여성의 연대와 저항’마저 자본의 논리와 세기말적 무력감에 매몰되었다는 점이 안타깝다. “엄마가 죽었어. 엄마가 죽었다고!”라며 도경(전종서)에게 원망하듯 외치는 미선(한소희)에게 도경은 ‘너도 엄마가 죽기를 바랬잖아’라고 받아친다. 엄마(김신록) 역시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살아가지만 도경과 미선이 가져온 황금을 보고 기회를 다시 잡으려는 추한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비춰진다. Y세대인 도경에겐 '엄마의 시대'가 저무는 것을 슬퍼하고 동정하는 것은 잠시이고 당연한 폐기로 받아들인다. 과거(역사)에 대한 부채 의식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생존'이라는 본능만 남는다. 이들의 관계는 마치 영혼을 잃어버리고 본능적 욕망만이 존재하는 좀비 공동체에 불과했다. 자신을 구해준 엄마(김신록)은 도경에게 두 손으로 얼굴을 붙잡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 모든 것이 잘 설명된다. “물러 터졌어. 우리 도경이. 너 꼴리는 대로 살아. 너 꼴리는 대로 살라고!” 감독은 "차에 한 번 올라타면 끝까지 달려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 것처럼, 영화는 멈추지 않는 질주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질주의 끝에 무엇이 있는가? 미래와 희망이 거세된 채 금괴라는 물질적 가치를 쫓다 그 세계를 떠나버리는 결말은, 탈출이라기보다 열패감 끝에 시스템에 투항한 현실 순응자의 뒷모습처럼 보였다. <사진자료=프로젝트Y 스틸컷> 복제되지 못한 ‘인간의 무게’ '사람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고 하는 감독의 말과는 달리,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의 욕망을 위해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장치처럼 보인다. 미선과 도경의 선택은 예측 가능하고, 그들의 행동은 플롯을 진행시키기 위한 장치에 그친다. 평범한 일상을 꿈꾸던 그들이 범죄의 세계로 뛰어드는 과정에서 내적 갈등이나 도덕적 고뇌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90년대 홍콩 영화가 '파멸' 앞에서도 인연의 찰나와 고독의 무게를 긍정했다면, <프로젝트 Y>는 그 자리에 냉소와 생존 본능만을 채워 넣었다. 한소희와 전종서라는 아이코닉한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겪는 고통은 관객에게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비극의 전시'로 휘발된다. 90년대 홍콩 느와르의 스타일은 복제했을지언정, 그 스타일이 지탱해야 할 '인간에 대한 연민' 그 무게감까지는 담아내지 못한 셈이다.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디스토피아는 예술적 통찰이 아니라 냉소적 상업주의 산물로 전락하기 쉽다. 이 영화가 남긴 ‘불쾌한 허무’는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상업주의적 포장의 한계 이 영화는 제작 단계부터 최근 극장에서 보기 드문 여성 투톱영화로 화제를 모았다. 토론토국제영화제 특별 프레젠테이션 섹션초청, 이환감독의 전작 <박화영>이 영화제에서 쌓아올린 명성에 한소희 전종서라는 대중적 스타파워를 결합한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마케팅 전략이 오히려 작품의 본질을 가리거나 작품의 방향성마저 흐트러 놓은 것은 아닐까. 여성 주인공에 장르물을 붙이면 여성서사의 완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라도 하는 것일까. 여성 서사가 단순히 '여성이 주인공인 범죄물'을 넘어 시대의 울림이 되려면, 총구와 차가운 네온사인 너머에 있는 '억압된 인간, 차별받는 인간에 대한 무게'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독자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해졌다. 독자들은 이 영화를 '희망이 거세된 시대의 자화상'으로 읽을까? 이 영화가 주는 불쾌함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 존엄'의 가치를 환기할까? 제작진이 의도한 '좋은 배신감'이 과연 관객에게 긍정적인 카타르시스를 줄 것인지, 아니면 그저 공허한 냉소만을 남기는지는 관객 각자의 몫이 될 것이다. 냉소와 통찰은 한 끗 차이이다. 마치 윳놀이의 ‘도’와 ‘빽도’처럼 말이다. 단순히 세상은 망했고 희망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예술적 게으름에 가깝다. 이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왜, 여전히 인간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계속 살아내야 하는가’에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게 해야 한다. "미선과 도경은 세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정작 그들이 쏜 것은 자신들의 마지막 인간성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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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영화가 잃어버린 '인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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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이념이 타버린 터널 속, 인간은 여전히 유효한가.
- <사진자료=영화<터널>포스터> 이념이 타버린 터널 속, 인간은 여전히 유효한가. 베트남 전쟁을 다룬 수많은 영화는 대게 두 가지 시선 중 하나를 택해왔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비극적 충돌로 보거나, 혹은 화염방사기와 헬기 소리로 대변되는 압도적인 화력의 스펙터클과 영웅주의로 소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부이 탁 추옌(Bùi Thạc Chuyên) 감독의 영화 <터널>(Địa Đạo)은 이 모든 외피를 난폭하게 벗겨낸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꾸찌 터널은 베트남 전쟁 당시 게릴라군이 압도적인 화력을 가진 미군에 맞서 생존과 투쟁을 이어가기 위해 거미줄처럼 파내려 간 터널이다. 총 길이 약 250km에 달하는 거대한 요새였다. 이 영화 속에는 승리에 대한 결연함, 숭고한 희생 대신에 물속에서 대나무 빨대에 숨을 의지한 채 살아내야 하는 원초적인 공포와 지독한 생존 본능만을 응시한다. <사진자료=영화<터널>스틸컷> 영화 <터널>은 1967년 꾸찌터널에서 미군에 대항하던 스물한 명의 해방군의 전사를 따라간다. 이들은 실존 인물이 아닌 감독이 의도하는 영화적 픽션이다. 빛 한 점 없는 지하벙커 속에서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그곳에서 ‘인간’이라는 정의는 여전히 유효한가를 묻는다. 부이 탁 추엔감독은 꾸찌터널이 구축되어 있어있는 지하 3층의 입체적인 구조를 고증하여 세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수직으로 이동시키며 공간을 수직적으로 분할하였다. 이는 영화의 핵심 메타포를 구축하기 위함인데, 지상은 이념의 공간이다. 성조기가 펄럭이고, 화염방사 전차가 불을 뿜어대고 네이팜탄이 쉴세없이 떨어진다. 그야말로 문명이 설계한 지옥이다. 반면 지하는 생존의 공간이다. 어둡고 인물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채 그들의 거친 숨소리와 흙을 파는 손의 움직임만이 사운드를 채운다. 이곳에서 인물들은 이데올로기를 토론하지 않는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뭉쳐야 했으며, 인간이라는 종을 잇기 위해 섹스하며, 죽지않기위해 살상한다. 특히 터널 벙커 깊숙한 곳에 두 남녀가 격렬하게 뒤엉키는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논란의 여지를 만든다. 하지만 이 장면이 단순히 생물학적 욕구의 발산으로 보이지 않는다. 터널 위에서 떨어지는 포탄가운데서도, 죽음이 가득한 공간에서 생명을 잉태하려는 몸짓. 그것은 절망에 대한 원초적인 반역이며 미래를 향한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취하는 행동이 결국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물학적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을 적나라하게 말한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인간 존엄의 타락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베트남의 원동력을 발견한다. 명분은 사라지고 본능만 남은 상태에서 투쟁은 오히려 그 무엇보다 강력했다. 이념을 위해 죽는 사람은 흔치 않지만, 살고자 하는 생명체의 의지는 결코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터널 속의 삶은 비참하지만 그 비참함이야말로 침략자가 결코 정복할 수 없었던 ‘뿌리’였다. 그것이 저항이었고, 베트남의 정신을 그 속에서 찾아야 볼 수 있다. <사진자료=영화<터널>스틸컷> 베트남 통일 50주년을 맞아 자국 관객에게 주는 메시지는 “우리는 이렇게 비참하게, 그러나 지독하게 살아남아 오늘을 만들었다”일 것이다. 마치 선전영화로 보일법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감독이 묘하게 배치한 밑바닥의 저변에 깔린 메시지를 읽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승리에 대한 자취(自取)가 아니라 생존에 대한 경외다. 이상하게 기억에 오래 남는 장면이 있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군이 원시적인 죽창에 찔려 죽어가는 장면이다. 20세기의 기술을 상징하는 미군이 이 원시적인 도구에 찔리는 순간 전쟁은 문명과 문명과의 전쟁이 아니라 육체와 육체의 충돌로 격하된다. 죽어가던 미군이 마지막을 내뱉은 말을 ‘물을 달라’라는 외침이었다. 그가 마지막에 갈구한 것은 승리도, 성조기도, 민주주의 수호도 아니었다. 단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 원소였다. 이 순간 흙탕물을 마시던 베트남 게릴라와 미국 군인은 갈증을 느끼지는 생명체로서 평등해진다. 인간이 겹겹이 쌓아올린 기술, 이념, 힘은 갈증 앞에서 무력해질 뿐이다. 이쯤 되면 영화는 프로파간다(선전영화)를 넘어 실존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참호 속에서, 가자기구의 무너진 건물 아래서 인간은 여전히 ‘물을 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터널>은 이념의 이름으로 타인의 육체를 파괴하는 행위가 얼마나 원시적이고 헛된 것인지를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인 반전(反戰) 메시지를 완성한다. <사진자료=영화<터널>스틸컷> 극장 문을 나서면서도 그 압도적인 공포의 잔상이 꺼지지 않았다. 화염방사 전차가 숲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드는 거대한 불길이 눈에 새겨졌다. 고막을 찢는 듯한 네이팜탄의 폭음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예고 없이 번쩍이며 끊임없이 쏟아지는 총알의 빛과 날카로운 소음. 이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하나, 땅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마치 기독교인들이 로마황제의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카타콤’을 연상시킨다.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지하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렸다면, 베트남인에게 꾸찌터널은 생존이라는 신을 모시는 성전이 되었다. 영화 <터널>이 보여주는 지독한 생존의 풍경은 우리에게 낯선 타국의 역사가 아니다. 한국의 근현대 역시 거대한 화염이 지상을 휩쓸고 간 터널의 시간이었다. 식민지의 어둠을 견뎌낸 정신적 카타콤부터,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방공호로, 숲으로 기어들었던 우리의 어머니들까지. 우리 역시 ‘물을 달라’라는 비명이 가득한 지옥 속에서 오늘을 일궈냈다. 이 영화<터널>은 마치 우리에게 질문하고 건네고 있다고 느꼈다. 베트남의 꾸찌터널이 지금의 베트남을 있게 한 원동력이듯, 한국을 지탱해온 그 질긴 생존의 에너지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혹시 그것은 경쟁과 성장이라는 또 다른 전쟁터로 변질되지는 않았는가. 터널 속에서 배운 생명에 대한 경외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개인주의와 혐오 속에서도 여전히 마르지 않는 마중물처럼 흐르고 있는가,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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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이념이 타버린 터널 속, 인간은 여전히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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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마을교육공동체, 추억 담은 찻집 수익금으로 따뜻한 나눔 실천
- [GN NEWS=가평군]기문정 기자=가평마을교육공동체가 올 한 해 동안 지역과 함께 펼쳐온 활동의 결실을 따뜻한 나눔으로 이어갔다. 지난 12월 19일 진행된 ‘추억의 일일찻집’ 행사 수익금 100만 원을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지정기탁금으로 가평군청 행복돌봄과 아동복지팀에 전달하며 지역사회 돌봄 실천의 모범을 보였다. 이번 일일찻집 행사는 옛 추억을 되살리는 레트로 감성과 주민 참여형 나눔 문화를 결합해 지역 주민의 큰 호응을 얻었으며, 음식과 음악, 깜짝 이벤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아라비안나이트7080(구 유튜브)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2014년 설립된 가평마을교육공동체는 지난 10여 년간 팜파티, 꿈의학교, 마을밥상, 영화 만들기 등 다양한 교육·문화활동을 통해 마을과 학교, 그리고 주민이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 모델을 구축해 왔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마을 영화 만들기’, ‘가마공 벼룩시장’ 등 주민이 주체가 되어 기획하고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공동체 역량과 나눔의 가치를 확산해 왔다. 가평마을교육공동체 관계자는 “이번 나눔이 단발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연대하고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 문화로 확장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세대와 이웃을 잇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해 더 많은 주민이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평군 관계자는 “지역 공동체의 자발적인 참여로 마련된 이번 기탁은 보호종료아동들에게 실질적인 응원과 힘이 될 것”이라며 “전달된 후원금은 자립을 준비하는 보호종료아동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정성으로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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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마을교육공동체, 추억 담은 찻집 수익금으로 따뜻한 나눔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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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마을교육공동체, 함께해서 더 따뜻했던 ‘가마공 벼룩시장’ 성황리 마무리
- [GN NEWS=가평군]기문정 기자=가평마을교육공동체(가마공)가 주관한 ‘가마공 벼룩시장’이 지난 11월 2일 가평 철길공원에서 개최되어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민들과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따뜻한 참여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약 20여 팀의 셀러가 함께한 이번 행사는 아이들이 팀을 이루어 직접 물건을 준비하고 판매에 참여하면서 단순한 거래를 넘어 배움과 책임, 자립심을 길러주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고, 구석구석 다양한 물건과 손수 만든 수공예품, 먹거리들이 가득해 보는 즐거움도 더해졌다. 행사장 곳곳에는 ‘두부 저염 쌈장 만들기’, ‘요거트 컵과일 만들기’, ‘커피화분’, ‘립밤·비누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게 마련되어 어린이와 가족 모두가 즐기며 직접 만들고 체험하는 교육적 시간이 함께했고, 고사리손으로 판매 부스를 운영하며 설명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방문객들의 발길을 오래도록 머물게 했다. 행사 중 펼쳐진 버스킹 공연은 영화음악, 대중가요, 연주곡이 어우러진 감성 가득한 무대로 구성되었고, 현장 관객의 즉석 신청곡 연주와 아이들의 참여 무대까지 더해져 마치 마을 축제 같은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올해 진행된 ‘우리마을 영화 만들기’ 프로젝트는 마을과 공동체가 함께 참여해 가평의 일상과 이야기를 영화로 기록하며, 마을의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작업으로 평가받았으며, 주민들 사이에서는 내년에도 꼭 이어가길 바란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평마을교육공동체는 지난 10여 년간 팜파티 축제, 꿈의학교, 마을밥상, 직업체험, 영화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마을과 학교, 아이와 어른이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꾸준히 실천해왔고, 이번 벼룩시장을 통해 다시 한 번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 깨닫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전했다. 이성아 가마공 회장은 “앞으로도 가마공은 주민과 가족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마을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며, 언제든 이 여정에 함께할 가족들을 기다린다”며 공동체와 교육이 함께하는 마을 문화를 확산해나갈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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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를 통해 본 경계와 배제의 정치
-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통해 본 경계와 배제의 정치 1. 국경은 누구를 막는가. 국가는 경계를 통해 자신을 정의한다. 그 경계는 지리적일 수도 있고, 법적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문화적·이념적 기준에 따라 설정된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tfer Another)는 이러한 경계의 정치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이민자와 난민을 둘러싼 국가의 태도는 ‘누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권력과 인간성의 본질을 묻는다. 영화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에 있는 이민자 구금시설을 급습하는 ‘프렌치75’의 액션으로 시작한다. 이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핵심 주제를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국경은 단순히 두 나라를 나누는 지리적 선이 아님을 보여준다. 구금된 이민자들은 이미 미국 영토 안에 있지만, 여전히 ‘밖의 존재’로 취급된다. 이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말한 ‘예외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법의 테두리안에 있지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존재들. 그들은 국경을 넘었지만 여전히 경계 바깥에 머문다. 이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 국가는 무제한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구금된 이민자들이 처한 예외상태는 트럼프 행정부가 벌인 이민정책의 폭력성, 타국에 대한 폭력적 권력행사를 떠올리게 한다. 국가 권력이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특정 집단을 비인간적인 존재로 낙인찍어 배제하는 폭력적인 정치의 장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록조 대령(숀펜 분)으로 대표되는 국가 시스템은 이 경계선을 통해 ‘안보’라는 명분 아래 이민자들을 통제하고 억압한다. 영화 속 ‘프렌치75’의 혁명은 이 배제의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었지만, 그 방식 역시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점에서 경계가 만들어낸 갈등의 악순환을 표현했다. 2.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존재, 퍼피디아의 저항 주인공 퍼피디아는 프렌치75라는 급진적인 단체의 핵심 인물로, 체제에 대한 저항을 상징한다. 그녀는 미국 시민이지만, 자유라는 기치를 들고 국가의 이념과 충돌하는 순간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녀의 행동은 범죄로 규정되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경계가 국적이나 출생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념적 경계를 넘는 순간 시민조차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퍼피디아는 국가가 받아들이지 않는 자의 상징이다. 3. 록조 대령과 제도적 경계 록조 대령은 퍼피디아를 과거에 ‘가르쳤다’라고 말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복잡한 개인사가 있다. 록조는 퍼피디아에게 집착적 감정을 품었다. 그녀에게 남자친구(밥 퍼거슨역,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있었음에도, 록조는 그녀와 관계를 맺었고 자식까지 낳았다. 하지만 그는 국가 권력의 대리자로서 그녀를 탄압하는 역할을 수행 한다. 결국 그녀를 체포하고, 과거를 지우기 위해 그 자식마저 죽이려 한다. 이 설정이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여기에는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있다. 국가권력은 ‘개인의 이념이나 윤리보다 제도적 질서를 우선시 한다’는 것이다. 록조 대령에게 퍼피디아는 한때 사랑했을지 모르는 개인이 아니라, 체제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그가 자신의 과거를 지우려는 행위는 국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은폐했던 역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4.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 이념.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중심 갈등은 극좌 혁명조직 ‘프렌치75’와 록조 대령의 극우 세력이라는 양극단의 이념적 대립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각자의 신념이라는 견고한 경계선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상대를 절멸시켜야 할 ‘적’으로 규정한다. 이들에게 대화나 타협의 여지는 없다. 오직 ‘하나의 전투가 끝난 뒤 또 다른 전투’(One Battle after another)가 있을 뿐이다. 영화는 이처럼 타협 없는 이념의 경계가 얼마나 허망한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혁명을 부르짖던 ‘프렌치75’는 내부의 배신과 외부의 탄압으로 와해되고, 조직원들은 역사의 패배자로 남아 무력감에 시달린다.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밥 퍼거슨이 그렇다. 반면, 체제수호의 신념을 가졌던 록조 대령은 권력욕과 편집증에 사로잡혀 자신의 핏줄마저 위협하는 괴물이 된다. 극단적인 이념은 결국 외부의 적이 아닌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감옥이었던 것이다. 5. 부모 세대가 그어놓은 경계선, 비극으로 맞이하는 다음 세대 퍼피디아의 딸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는 이 모든 비극의 결과물이다. 부모 세대가 그어놓은 경계선이 만들어낸 비극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다음 세대를 상징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과잉보호와 편집증 속에서 성장했고, 만나본 적 없는 엄마의 과격한 이상과 아버지 세대의 실패를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윌라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부모세대가 가졌던 거창하고도 잘못된 신념들이 다음 세대의 삶을 어떻게 옥죄고 파괴하는 지를 처절하게 보게 된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는 경계가 단지 지리적 선이 아니라, 인간을 분류하고 배제하는 권력의 매커니즘임을 보여준다. 국경은 이민자를 막고, 이념은 시민을 배제하고 나누며, 세대 간 경계는 미래를 위협한다. 영화의 엔딩장면은 이렇다. 다음세대의 상징인 윌라가 다시 혁명전투에 불려나가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가 제기하는 질문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유효하다. 국가는 어떤 인간을 받아들이는가?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타인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준은 과연 정당한가? 이념적 양극단이 모두 실패하는 모습은 경계 자체를 재사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렇지 않으면 ‘끝없는 전투’의 수렁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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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를 통해 본 경계와 배제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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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암 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 성료… 글과 그림으로 나눈 마음의 풍경
- [GN NEWS=가평군]기문정 시민기자=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가 깊어가는 가을, 가평 청평암 대웅전에서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가을비가 조용히 내리는 가운데에도 많은 이들이 우산을 들고 행사장을 찾아 자리를 지켰고, 그 정성 어린 발걸음이 축제의 의미를 한층 더 깊게 했다. 올해로 일곱 번째를 맞은 이 축제는 전국 단위의 글짓기·그리기 공모전과 함께, 참가자와 관람객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마련된 체험 부스와 먹거리 부스, 그리고 수상자들이 참여한 ‘끼자랑’ 무대가 더해져 따뜻하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이번 축제에는 전국 각지에서 창의적이고 진정성 있는 작품들이 다수 출품되었고, 글짓기 부문 74명, 그리기 부문 243명 등 총 317명의 입상자가 선정되었으며, 글짓기에서는 3명, 그리기에서는 8명이 공동 대상을 수상해 해마다 높아지는 참여도와 수준을 다시금 확인케 했다. 청평암 조실 명요 구암 스님은 개회사에서 “예술은 자비의 표현이며, 진심을 담은 글과 그림은 세상을 맑히는 수행의 한 길”이라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이야말로 가장 깊은 치유의 언어”라고 강조했다. 서태원 가평군수는 “이번 공모전의 주제처럼 ‘사찰, 나눔, 칭찬, 사랑, 어리석음, 자유’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부처님의 말씀이라 생각하며, 6회째를 거치면서 매년 훌륭한 작품들이 탄생가게 된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며, " '꽃나무 울타리 세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경치가 좋은 사찰, 청평암에서 뛰어난 수준의 문화축제가 해마다 열리게 되어 가평군의 또 하나의 문화자산으로 이 대회가 오래도록 함께 가기를 염원한다"고 축하 메세지를 전했다. 김용태 국회의원(가평·포천)은 “대회에 참가하여 영예로운 상을 받은 수상자 여러분께 진심 어린 축하 를 전하며, 이 뜻깊은 행사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써주신 구암 조실 스님과 청평암 관계자께도 깊은 감사의 마을을 드린다”며, "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재능을 발휘하고 꿈을 펼치는 축제의 장일뿐 아니라 불교문화예술을 이어가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격려를 보냈다. 특히 올해는 가평 지역 출신 수상자 두 명이 공동대상에 오르며 지역사회에 큰 자긍심을 안겼다. 일반부 대상 수상자인 이경민 씨는 ‘산이 주는 자유’라는 수필을 통해 도심의 숨 가쁜 일상에서 벗어나 계절의 리듬과 산의 품 안에서 자유를 느끼는 정서적 해방감을 섬세한 언어로 표현해냈고, 심사위원단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사색적으로 풀어낸 문장이 깊고 따뜻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단연 이번 축제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 수상자는 청평고등학교 2학년 이소윤 학생이었다. 고등부 대상작인 ‘하루 일찍’은 자폐장애를 가진 동생을 둔 누나로서 가족의 현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창작소설로, 격정 없이 절제된 문체 안에 담긴 가족의 인내와 연민, 그 속에서도 지켜지는 사랑과 희망의 정서가 조용하지만 묵직한 감동을 자아냈다. ‘하루 일찍’이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 메시지였다. 자폐를 가진 아이를 둔 어머니가 왜 아이보다 하루 더 살아야 하는지, 또 하루 먼저 보내야만 하는지에 대한 절절한 고백이 담겨 있다. 세상보다 하루 앞서 깨어야 하는 어머니의 삶, 눈치보다 한 발 먼저 움직여야 하는 가족의 리듬을 상징하며, 이소윤 학생은 그 복잡한 감정과 삶의 모순을 감정에 기대지 않고 깊은 이해와 애정의 언어로 담담히 풀어냈다. 이소윤 학생은 수상 후 인터뷰에서 “제 동생은 말은 없지만 제게 많은 말을 하게 만든 존재예요. 글을 쓸 수 있게 해줘서 고맙고, 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실제 자폐를 가진 동생을 둔 누나로서, 가족 안에서 느껴온 복합적인 감정과 삶의 단면들이 작품 「하루 일찍」의 모티브가 되었다. <사진자료=청평암 공식카페> 글짓기 심사평에서는 다음과 같은 평가가 전해졌다. “올해에도 여전히 뜨거운 기온에 장마와 가뭄과 열대야 속에서 한 계절이 가고 있다. 점점 우리의 대지도 공해에 몸살을 하는지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였다. 하늘의 상황도 이곳처럼 그리 만만치 않아서일까 싶다. 그래도 많은 작품들이 출품되어 마음은 풍요로웠다. 문학적 기량이 돋보이는 작품들도 보이고, 작은 손으로 조곤조곤 말하는 예쁜 글들도 보였다. 심사하면서 잘 쓰인 문장의 기교보다는 글쓴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했고, 공감이 가는 글에 애정을 담았다. 채혜원의 ‘<빗을 잃어버린 인어>를 읽고’라는 책 속 소년과 소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고 간결하다. 그 여린 심성을 잘 유지하여 좋은 시를 쓰길 바란다. 장서진의 ‘자유는 날개’라는 자연스럽게 잘 쓰인 시다. 누구든 함께 그 길을 따라 즐기며 같은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한 번쯤은 해 본 경험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된다. 고등부의 이소윤의 ‘하루 일찍’은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을 담담한 어투로 차분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자폐아를 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절절한지, 얼마나 애쓰고 아픈지를 담백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루 일찍’ 이라는 제목부터 마음을 흔들고 아프게 했다. 과하지 않게 절제하며 써 내려가는 문장이 더욱더 문제의 앞으로 다가가게 만든다. 조금만 더 다듬어지면 더욱 좋은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정진하길 바란다. 일반부 이경민의 ‘산이 주는 자유’는 도시인의 숨 가쁜 삶 속에서 우연히 산행하며 자유를 느끼는 일을 계절별로 쓴 글이다. 막힘없이 매끄러운 글이다. 계절마다 다른 느낌의 자유를 잘 묘사하여 함께 기분 좋게 산행을 한 느낌이다. 자연과 더불어 삶의 시선을 맑게 하는 일의 중요성도 보여 준 작품이었다.”고 평하며, 이번 공모전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진심 어린 시도와 가능성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번 축제는 단순한 문예대회나 경연을 넘어, 서로 다른 세대와 지역, 시선을 하나로 모으는 문화적 공감의 장이었다. 유치부부터 일반부에 이르기까지 본선 진출작들은 청평암 대웅전 마루에 전시되어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전했고, 어린이의 해맑음부터 성인의 성찰까지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며 큰 울림을 남겼다. 심만기 심사위원(BS㈜ 밝은생각 대표이사)은 “예술은 결과보다 과정에서의 진심이 중요하다. 특히 올해는 유아·청소년 부문의 작품 수준이 높아 구성력과 감정표현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행사 주최 측은 “참가자 한 명 한 명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모든 출품작은 예술로서의 가치가 충분했다”며 “앞으로도 아라한 문화축제가 단지 수상 중심이 아닌 성장과 나눔의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는 자연 속 사찰이라는 공간에서 예술을 통한 치유와 공감, 연대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 뜻깊은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행사 말미에는 청평암에서 참석자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마련한 따뜻한 공양이 제공되었으며, 빗속에서도 축제의 자리를 지켜낸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이자 깊은 나눔의 실천이 되었다. 단순한 식사가 아닌, 마음을 담은 대접이었던 그 공양은 서로의 마음을 잇는 또 하나의 예술로 기억되었다. <사진자료=청평암 공식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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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암 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 성료… 글과 그림으로 나눈 마음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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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군 설악면, 미원천 정화 및 꽃밭 가꾸기 봉사로 마을 환경 개선 나서
- [GN NEWS=가평군]김경태 시민기자=가평군 설악면은 9월 2일 오전 9시부터 미원성당 앞 미원천 일대에서 하천 정화 및 꽃밭 가꾸기 봉사활동을 실시하며 쾌적하고 아름다운 마을 환경 조성에 나섰다. 이번 활동은 설악마을공동체와 설악면 행복마을관리소가 공동 주관하고, 한국수력원자력(주) 청평수력발전소의 후원으로 진행되었다. 참여자들은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하천 주변에 무단 투기된 쓰레기를 수거하고, 꽃밭을 정리‧가꾸며 구슬땀을 흘렸다. 특히 봉사자들은 활동을 통해 하천 주변이 점차 깨끗해지고 꽃밭이 아름답게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며 큰 보람을 느꼈다. 한 주민은 “깨끗해진 하천을 보니 힘든 줄도 모르고 즐겁게 봉사에 임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마을 환경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설악마을공동체 관계자는 “주민이 직접 나서는 작은 실천이 모여 마을의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며 “지속적인 환경 정화와 꽃밭 가꾸기를 통해 살기 좋은 설악면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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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군 설악면, 미원천 정화 및 꽃밭 가꾸기 봉사로 마을 환경 개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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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의 연대가 어떻게 국가의 역사가 되는지를 보여준 영화.
- 월터 살레스 감독의 <아임 스틸 히어>(원제:Ainda Estou Aqui)는 단순한 전기 영화를 넘어, 한 가족의 개인적 비극을 통해 국가적 폭력과 기억의 상실에 맞서는 거대한 투쟁을 펼치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개인의 기억이 어떻게 국가의 역사로 승화 되는지를 깨닫게 한다. 월터 살레스, <아임 스틸 히어>가 건네는 숙제 영화는 1970년 브라질 군사 독재 정권에 의해 희생된 루벤스 파이바 의원를 다루고 있다. 이 사건은 브라질 군사정권이 반정부 인사들을 대상으로 자행했던 정치적 숙청, 불법연행, 고문, 실종, 그리고 죽음의 아픈 역사였다. 영화는 시대적 폭력 속에서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이 절망에 빠지지 않고 진실을 찾기 위해 투쟁하며, 잃어버린 가족을 기억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남편을 잃은 아내나 아버지를 잃은 가족의 고통을 과장하거나 신파적으로 그리지 않고, 자녀들 앞에서 묵묵히 버텨내는 어머니 유니스의 강인함을 통해 '기억'이라는 행위 자체가 곧 '저항'이었음을 보여준다. 아임 스틸 히어. ‘나는 아직 여기 있다’는 원제는 사라진 아버지의 외침이다. 나는 아직 가족 속에 있고, 역사 속에 있다. 그리고 가족의 기억 속에 있고, 역사의 기억 속에 있다는 외침이다. 역사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다짐이 된다. 이 영화는 잊혀지는 것을 거부하고, 기억의 증인이 되어달라고 호소한다. 슈퍼 8미리 필름으로 구현하는 기억의 질감 월터 살레스 감독은 1970년대의 기억을 시각화 하는 방법으로 슈퍼 8미리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다. 실제 영화 속에서도 8미리 카메라로 촬영하는 장면이 등장하곤 하는데, 이를 통해 과거의 한 순간이지만 행복했던 가족을 따스한 빛과 색감으로 그려냈다. 또한 이 거친 입자와 불안정한 화면으로 오래된 가족 앨범이나 빛바랜 기억 속 한 장면을 생생하게 관객과 공유한다. 이는 영화가 단순한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기억의 복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상실을 뒤섞으며, 기억이 단단한 실체가 아니라 언제든 부서지고 변형될 수 있는 연약한 것임을,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불안정한 화면을 통해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또 하나의 미학적 선택은 감정의 절제였다. 감독은 노년에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 유니스(페르난다 토레스)의 고통스러운 순간이나, 아버지의 실종 소식을 접하는 가족들의 눈물 어린 장면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그녀가 묵묵히 길을 걷거나, 서류를 정리하고, 아버지가 없는 식탁에 앉아있는 뒷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절제된 연출은 신파극의 감정적 과잉을 피하고, 관객들이 인물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침묵의 슬픔과 강인함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인물에게서 오히려 더 큰 슬픔을 느끼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서 강한 저항의 의지를 읽어낸다. 이는 '한(恨)'이라는 정서를 통해 비극을 다루는 한국적 정서와도 깊게 맞닿아 있어, 우리에게 공감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의 기억들, 그리고 한국영화의 부재 <아임 스틸 히어>를 보고 있으면, 한국의 과거사가 자연스럽게 겹쳐서 떠오른다. 우리 역사에도 군부독재 시대가 있었으며, 과오를 은닉하고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 가슴 깊이 각인된 아픔들이 있었다. 세월호가 그랬고, 이태원 참사가 그랬고, 최근엔 무안 국제공항 사고가 있었다. 브라질의 과거와 너무도 흡사한 동백림 사건도 있었고, 광주 민주화 운동과 4.3사건까지. 이름조차 기억되지 못하고 유린된 희생과 사건들은 우리 가슴 한편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그런데 정작 이런 기억들을 월터 살레스만큼 섬세하고 깊이 있게 다루는 한국영화는 어디에 있을까? 천만관객 동원이라는 숫자에 매몰되거나, 화려한 액션과 스펙터클에만 골몰하고 K컬쳐라는 한류에 취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달려온 지금의 한국영화는 성공보다는 망해가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한국영화가 사회적 주제를 아예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자극적 소재로 소비되거나, 단순한 선악구조로 치환되는 경우가 많다. 정작 깊이 있는 성찰과 창작의 작품은 사라지고 있다. 자본의 논리라며 심도있는 창작과 다양성 영화에는 투자되지 않고 제작이 사라지니 창작은 말라가고 있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러한 류의 영화는 한국 영화에서 소멸되고 있다. 반면에 <아임 스틸 히어>는 전세계적 극장에서 한화로 500억 이상 매출이 나오고 있다. 곧 한국에서도 개봉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상업적 성공은 쉽지 않을 것이다. 많은 극장은 상업적이지 않다는 이상한 이유로 외면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영화를 살려야 한다며 할인권을 극장에 힘을 실어주는 저급한 정책에 정작 지원 받아야할 영화인들은 울고 있고, 영화 창작자들은 외면 받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영화의 권력이 극장에 있으니 말이다. <아임 스틸 히어>가 보여준 것 같은 깊이 있는 성찰,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따뜻하면서도 냉정한 관찰과 역사의 기억을 통한 영화적 기록이 필요한데 말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하는 가. 이 영화는 브라질의 특수한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그 핵심에는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 아버지는 육체적으로 사라졌지만, 가족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며 그들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어머니는 기억을 잃어가지만,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진실을 향한 투쟁의 의지만큼은 사라지지 않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영화는 결국, 존재의 증명이 물리적인 것이 아닌, 기억과 사랑에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는 한, 그 사람은 영원히 '여기'에 존재한다는 메시지다. <아임 스틸 히어>를 보는 것은 단순히 영화 한 편을 관람하는 행위를 넘어, 역사의 증인이 되어 '기억의 연대'에 동참하는 중요한 경험이다. 이 영화가 슬픔을 직시하고 기억을 되살리는 용기가 어떻게 희망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술적 증언이다. 한국영화가 이런 숙제에 응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도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아직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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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의 연대가 어떻게 국가의 역사가 되는지를 보여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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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마을공동체·가평효정봉사단, 하천 보호 위한 환경캠페인 펼쳐
- [GN NEWS=가평군]김초희 시민기자=설악마을공동체와 가평효정봉사단이 공동으로 주최한 환경보호 캠페인이 8월 1일(금)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설악면 시내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캠페인에는 약 80명이 참여해 하천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는 피켓 시위 환경캠페인을 전개했다. 이번 캠페인은 한국수력원자력㈜ 청평수력발전소의 후원으로 추진되었으며, 참가 단체들은 우리 지역의 하천과 환경을 동시에 지키는 실질적인 행동을 촉구하였다. 참가자들은 "우리의 물, 우리의 미래! 하천 보호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 하천을 깨끗하게 보호하자!", "하천이 살아 숨 쉬는 환경! 우리의 맑은 미래입니다!" 등 다양한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으며 생활 속 실천 가능한 환경보호 활동을 함께 독려하였다. 설악마을공동체 참가자는 “'하천 보호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라는 문구가 제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려면 우리 세대가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늘의 캠페인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가평효정봉사단 관계자는 “생명을 품은 하천, 생명을 살리는 일에 모두가 동참해 주시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정기적인 환경 캠페인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무더위 속에서도 청년들의 힘찬 움직임과 외침을 통해 지역 사회의 환경 보호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진행되었으며, 참가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따뜻한 연대를 통해 의미 있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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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마을공동체·가평효정봉사단, 하천 보호 위한 환경캠페인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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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기념, 최고봉 성악가들 한자리에
- [GN NEWS=가평군]이성아 기자=국내외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표적인 성악가로 구성된 '더 멘즈 콰이어'(The Men's Choir)가 는 오는 8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제17회 정기연주회를 갖는다. 더 멘즈 콰이어는 전문적인 연주와 학술 연구를 통해 한국 성악 문화의 위상을 높이고자 2008년 3월 창단되어 다양한 기획 공연과 찾아가는 음악회 등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남성합창단이다. 이번 공연에서 더 멘즈 콰이어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며 오페라, 한국 가곡, 가요 등을 편곡한 다양한 합창곡들과 시니어 모델의 런웨이와 앙상블이 함께 한다. 프로그램으로는 우정의 노래,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등 오페라 아리아와 합창인들에게 사랑받는 주옥같은 합창곡들이 다수 연주된다. 상임 지휘자 정형국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와, 피아니스트 강은경·김유경·이인숙·서민기가 반주로 함께하며, 영화배우 서민기의 사회와 스페셜 게스트 소프라노 변경순, 하보나, 남가람합창단(지휘 정준영, 반주 이경미)이 함께 한다. 또한 이번 공연에서는 인천문화예술협회(ICAA) 시니어 모델 라인(회장 박수이)의 런웨이가 함께하는 공연으로, 소프라노 이지현, 재즈 피아노 홍영은, 바이올린 한예진, 오보에 한효승, 카혼 장복민이 연주하는 명곡들이 배경 음악으로, 시니어 모델의 워킹과 남성합창의 다이나믹한 하모니에 퍼포먼스가 함께 하는 풍성하고 특별한 무대를 선사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공연은 훈 엔터테인먼트 주관으로 The Men’s Choir가 주최하며, 재단법인 씨젠의료재단, CTS기독교TV, 세계 한인재단, 한양대학교 총 동문회 등이 후원하며 롯데콘서트홀이나, NOL 티켓을 통해 예매가 가능하며, 자세한 공연문의는 훈 엔터테인먼트 02-332-5545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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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기념, 최고봉 성악가들 한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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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영화가 잃어버린 '인간의 무게’
- <사진자료=프로젝트Y 포스터> 영화<프로젝트 Y>가 잃어버린 '인간의 무게’ 영화 <프로젝트 Y>의 오프닝과 엔딩씬은 지하보도에서 걷는 미선(한소희)과 도경(전종서)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영화전체의 톤이 무엇인지, 지향하는 스타일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90년대 홍콩영화의 그것이었다. 서울의 밤 지하보도의 인공광과 레드, 블랙의 강렬한 대비를 시킨 이 장면을 가장 힘주어 찍은 이환 감독은 <영웅본색>, <천장지구>처럼 홍콩 영화 르네상스 시기의 색감과 빛을 구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왜 이 영화는 90년대 홍콩 영화의 색감과 미장센을 구현하고 싶었을까? 그것은 이 영화가 세기말적인 청춘의 방황과 갈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왕가위 감독으로 대변되는 90년대 홍콩영화를 들여다보면 번잡한 도시 속 청춘들의 방황, 화려한 네온사인 속에 청춘의 고독을 담아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군가의 마음(사랑)을 갈구했고,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을 먹으며 사라져가는 시간과 인간성을 붙잡으려 몸부림쳤다. 90년대엔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때문에 그들이 누리던 모든 것들이 사라질 거라는 세기말적 두려움과 불안감이 팽배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6년에 그 홍콩영화의 변주곡을 자처한 <프로젝트Y>에는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대신 유통기한 없는 금괴를 위해 자신의 삶을 팔아치운다. 여기에선 그 찬란한 슬픔도, 청춘의 무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황금의 욕망을 향한 맹목적인 질주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사진자료=프로젝트Y 스틸컷> 세기말적 미학의 오용 이 영화는 90년대 홍콩영화의 색감과 미장센을 복제하고자 하지만 그 색채 아래 담긴 것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파괴되어가는 인간성의 전시였다. 영화는 ‘우연히 알게 된 정보로 유흥가의 실세 토사장의 은닉자금을 훔치려던 미선과 도경이 돌이킬 수 없는 수렁을 향해 질주’하는 서사를 담고 있다. 문제는 이 ‘질주’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이다. 폭력과 피로 가득한 이 영화는 어떠한 것으로 승화되지 못한 채 관객은 그들의 폭력을 관조하며 소리와 촉각의 자극을 탐닉하게 만든다. 이는 ‘탐미주의’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미적 빈곤이자 스타일의 과잉이 낳은 불쾌한 결과물이다. 거세된 저항과 매몰된 연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2007년작 <데쓰 프루프(Death Proof)>는 여성들이 남성 살인마(가해자)를 응징하며 얻는 전복적인 쾌감을 주는 동시에 ‘복수’와 ‘해방’이라는 여성서사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프로젝트 Y>는 물질적 몰락에서 헤어 나오고자 인간성을 거세하는 퇴행을 보여준다. 낮에는 꽃집 주인으로, 밤에는 유흥가의 에이스로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미선과 도경은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는다. 그들이 저항해야 할 대상은 명확하다. 토사장으로 대변되는 자본권력과 그들을 착취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저항을 7억원의 현금보따리와 금괴상자의 탈취라는 또다른 범죄로만 치환한다. 저항의 대상은 명확하지 않다. 저항의 방식은 오직 폭력과 누가 물질을 가로챘것인가의 서사에서 관객이 느낄 수 있는 것은 허무뿐이다. 이렇듯 문학과 영화가 쌓아올린 ‘여성의 연대와 저항’마저 자본의 논리와 세기말적 무력감에 매몰되었다는 점이 안타깝다. “엄마가 죽었어. 엄마가 죽었다고!”라며 도경(전종서)에게 원망하듯 외치는 미선(한소희)에게 도경은 ‘너도 엄마가 죽기를 바랬잖아’라고 받아친다. 엄마(김신록) 역시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살아가지만 도경과 미선이 가져온 황금을 보고 기회를 다시 잡으려는 추한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비춰진다. Y세대인 도경에겐 '엄마의 시대'가 저무는 것을 슬퍼하고 동정하는 것은 잠시이고 당연한 폐기로 받아들인다. 과거(역사)에 대한 부채 의식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생존'이라는 본능만 남는다. 이들의 관계는 마치 영혼을 잃어버리고 본능적 욕망만이 존재하는 좀비 공동체에 불과했다. 자신을 구해준 엄마(김신록)은 도경에게 두 손으로 얼굴을 붙잡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 모든 것이 잘 설명된다. “물러 터졌어. 우리 도경이. 너 꼴리는 대로 살아. 너 꼴리는 대로 살라고!” 감독은 "차에 한 번 올라타면 끝까지 달려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 것처럼, 영화는 멈추지 않는 질주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질주의 끝에 무엇이 있는가? 미래와 희망이 거세된 채 금괴라는 물질적 가치를 쫓다 그 세계를 떠나버리는 결말은, 탈출이라기보다 열패감 끝에 시스템에 투항한 현실 순응자의 뒷모습처럼 보였다. <사진자료=프로젝트Y 스틸컷> 복제되지 못한 ‘인간의 무게’ '사람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고 하는 감독의 말과는 달리,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의 욕망을 위해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장치처럼 보인다. 미선과 도경의 선택은 예측 가능하고, 그들의 행동은 플롯을 진행시키기 위한 장치에 그친다. 평범한 일상을 꿈꾸던 그들이 범죄의 세계로 뛰어드는 과정에서 내적 갈등이나 도덕적 고뇌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90년대 홍콩 영화가 '파멸' 앞에서도 인연의 찰나와 고독의 무게를 긍정했다면, <프로젝트 Y>는 그 자리에 냉소와 생존 본능만을 채워 넣었다. 한소희와 전종서라는 아이코닉한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겪는 고통은 관객에게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비극의 전시'로 휘발된다. 90년대 홍콩 느와르의 스타일은 복제했을지언정, 그 스타일이 지탱해야 할 '인간에 대한 연민' 그 무게감까지는 담아내지 못한 셈이다.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디스토피아는 예술적 통찰이 아니라 냉소적 상업주의 산물로 전락하기 쉽다. 이 영화가 남긴 ‘불쾌한 허무’는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상업주의적 포장의 한계 이 영화는 제작 단계부터 최근 극장에서 보기 드문 여성 투톱영화로 화제를 모았다. 토론토국제영화제 특별 프레젠테이션 섹션초청, 이환감독의 전작 <박화영>이 영화제에서 쌓아올린 명성에 한소희 전종서라는 대중적 스타파워를 결합한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마케팅 전략이 오히려 작품의 본질을 가리거나 작품의 방향성마저 흐트러 놓은 것은 아닐까. 여성 주인공에 장르물을 붙이면 여성서사의 완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라도 하는 것일까. 여성 서사가 단순히 '여성이 주인공인 범죄물'을 넘어 시대의 울림이 되려면, 총구와 차가운 네온사인 너머에 있는 '억압된 인간, 차별받는 인간에 대한 무게'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독자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해졌다. 독자들은 이 영화를 '희망이 거세된 시대의 자화상'으로 읽을까? 이 영화가 주는 불쾌함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 존엄'의 가치를 환기할까? 제작진이 의도한 '좋은 배신감'이 과연 관객에게 긍정적인 카타르시스를 줄 것인지, 아니면 그저 공허한 냉소만을 남기는지는 관객 각자의 몫이 될 것이다. 냉소와 통찰은 한 끗 차이이다. 마치 윳놀이의 ‘도’와 ‘빽도’처럼 말이다. 단순히 세상은 망했고 희망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예술적 게으름에 가깝다. 이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왜, 여전히 인간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계속 살아내야 하는가’에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게 해야 한다. "미선과 도경은 세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정작 그들이 쏜 것은 자신들의 마지막 인간성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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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영화가 잃어버린 '인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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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이념이 타버린 터널 속, 인간은 여전히 유효한가.
- <사진자료=영화<터널>포스터> 이념이 타버린 터널 속, 인간은 여전히 유효한가. 베트남 전쟁을 다룬 수많은 영화는 대게 두 가지 시선 중 하나를 택해왔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비극적 충돌로 보거나, 혹은 화염방사기와 헬기 소리로 대변되는 압도적인 화력의 스펙터클과 영웅주의로 소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부이 탁 추옌(Bùi Thạc Chuyên) 감독의 영화 <터널>(Địa Đạo)은 이 모든 외피를 난폭하게 벗겨낸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꾸찌 터널은 베트남 전쟁 당시 게릴라군이 압도적인 화력을 가진 미군에 맞서 생존과 투쟁을 이어가기 위해 거미줄처럼 파내려 간 터널이다. 총 길이 약 250km에 달하는 거대한 요새였다. 이 영화 속에는 승리에 대한 결연함, 숭고한 희생 대신에 물속에서 대나무 빨대에 숨을 의지한 채 살아내야 하는 원초적인 공포와 지독한 생존 본능만을 응시한다. <사진자료=영화<터널>스틸컷> 영화 <터널>은 1967년 꾸찌터널에서 미군에 대항하던 스물한 명의 해방군의 전사를 따라간다. 이들은 실존 인물이 아닌 감독이 의도하는 영화적 픽션이다. 빛 한 점 없는 지하벙커 속에서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그곳에서 ‘인간’이라는 정의는 여전히 유효한가를 묻는다. 부이 탁 추엔감독은 꾸찌터널이 구축되어 있어있는 지하 3층의 입체적인 구조를 고증하여 세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수직으로 이동시키며 공간을 수직적으로 분할하였다. 이는 영화의 핵심 메타포를 구축하기 위함인데, 지상은 이념의 공간이다. 성조기가 펄럭이고, 화염방사 전차가 불을 뿜어대고 네이팜탄이 쉴세없이 떨어진다. 그야말로 문명이 설계한 지옥이다. 반면 지하는 생존의 공간이다. 어둡고 인물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채 그들의 거친 숨소리와 흙을 파는 손의 움직임만이 사운드를 채운다. 이곳에서 인물들은 이데올로기를 토론하지 않는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뭉쳐야 했으며, 인간이라는 종을 잇기 위해 섹스하며, 죽지않기위해 살상한다. 특히 터널 벙커 깊숙한 곳에 두 남녀가 격렬하게 뒤엉키는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논란의 여지를 만든다. 하지만 이 장면이 단순히 생물학적 욕구의 발산으로 보이지 않는다. 터널 위에서 떨어지는 포탄가운데서도, 죽음이 가득한 공간에서 생명을 잉태하려는 몸짓. 그것은 절망에 대한 원초적인 반역이며 미래를 향한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취하는 행동이 결국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물학적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을 적나라하게 말한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인간 존엄의 타락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베트남의 원동력을 발견한다. 명분은 사라지고 본능만 남은 상태에서 투쟁은 오히려 그 무엇보다 강력했다. 이념을 위해 죽는 사람은 흔치 않지만, 살고자 하는 생명체의 의지는 결코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터널 속의 삶은 비참하지만 그 비참함이야말로 침략자가 결코 정복할 수 없었던 ‘뿌리’였다. 그것이 저항이었고, 베트남의 정신을 그 속에서 찾아야 볼 수 있다. <사진자료=영화<터널>스틸컷> 베트남 통일 50주년을 맞아 자국 관객에게 주는 메시지는 “우리는 이렇게 비참하게, 그러나 지독하게 살아남아 오늘을 만들었다”일 것이다. 마치 선전영화로 보일법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감독이 묘하게 배치한 밑바닥의 저변에 깔린 메시지를 읽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승리에 대한 자취(自取)가 아니라 생존에 대한 경외다. 이상하게 기억에 오래 남는 장면이 있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군이 원시적인 죽창에 찔려 죽어가는 장면이다. 20세기의 기술을 상징하는 미군이 이 원시적인 도구에 찔리는 순간 전쟁은 문명과 문명과의 전쟁이 아니라 육체와 육체의 충돌로 격하된다. 죽어가던 미군이 마지막을 내뱉은 말을 ‘물을 달라’라는 외침이었다. 그가 마지막에 갈구한 것은 승리도, 성조기도, 민주주의 수호도 아니었다. 단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 원소였다. 이 순간 흙탕물을 마시던 베트남 게릴라와 미국 군인은 갈증을 느끼지는 생명체로서 평등해진다. 인간이 겹겹이 쌓아올린 기술, 이념, 힘은 갈증 앞에서 무력해질 뿐이다. 이쯤 되면 영화는 프로파간다(선전영화)를 넘어 실존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참호 속에서, 가자기구의 무너진 건물 아래서 인간은 여전히 ‘물을 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터널>은 이념의 이름으로 타인의 육체를 파괴하는 행위가 얼마나 원시적이고 헛된 것인지를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인 반전(反戰) 메시지를 완성한다. <사진자료=영화<터널>스틸컷> 극장 문을 나서면서도 그 압도적인 공포의 잔상이 꺼지지 않았다. 화염방사 전차가 숲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드는 거대한 불길이 눈에 새겨졌다. 고막을 찢는 듯한 네이팜탄의 폭음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예고 없이 번쩍이며 끊임없이 쏟아지는 총알의 빛과 날카로운 소음. 이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하나, 땅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마치 기독교인들이 로마황제의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카타콤’을 연상시킨다.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지하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렸다면, 베트남인에게 꾸찌터널은 생존이라는 신을 모시는 성전이 되었다. 영화 <터널>이 보여주는 지독한 생존의 풍경은 우리에게 낯선 타국의 역사가 아니다. 한국의 근현대 역시 거대한 화염이 지상을 휩쓸고 간 터널의 시간이었다. 식민지의 어둠을 견뎌낸 정신적 카타콤부터,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방공호로, 숲으로 기어들었던 우리의 어머니들까지. 우리 역시 ‘물을 달라’라는 비명이 가득한 지옥 속에서 오늘을 일궈냈다. 이 영화<터널>은 마치 우리에게 질문하고 건네고 있다고 느꼈다. 베트남의 꾸찌터널이 지금의 베트남을 있게 한 원동력이듯, 한국을 지탱해온 그 질긴 생존의 에너지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혹시 그것은 경쟁과 성장이라는 또 다른 전쟁터로 변질되지는 않았는가. 터널 속에서 배운 생명에 대한 경외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개인주의와 혐오 속에서도 여전히 마르지 않는 마중물처럼 흐르고 있는가,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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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이념이 타버린 터널 속, 인간은 여전히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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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마을교육공동체, 추억 담은 찻집 수익금으로 따뜻한 나눔 실천
- [GN NEWS=가평군]기문정 기자=가평마을교육공동체가 올 한 해 동안 지역과 함께 펼쳐온 활동의 결실을 따뜻한 나눔으로 이어갔다. 지난 12월 19일 진행된 ‘추억의 일일찻집’ 행사 수익금 100만 원을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지정기탁금으로 가평군청 행복돌봄과 아동복지팀에 전달하며 지역사회 돌봄 실천의 모범을 보였다. 이번 일일찻집 행사는 옛 추억을 되살리는 레트로 감성과 주민 참여형 나눔 문화를 결합해 지역 주민의 큰 호응을 얻었으며, 음식과 음악, 깜짝 이벤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아라비안나이트7080(구 유튜브)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2014년 설립된 가평마을교육공동체는 지난 10여 년간 팜파티, 꿈의학교, 마을밥상, 영화 만들기 등 다양한 교육·문화활동을 통해 마을과 학교, 그리고 주민이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 모델을 구축해 왔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마을 영화 만들기’, ‘가마공 벼룩시장’ 등 주민이 주체가 되어 기획하고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공동체 역량과 나눔의 가치를 확산해 왔다. 가평마을교육공동체 관계자는 “이번 나눔이 단발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연대하고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 문화로 확장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세대와 이웃을 잇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해 더 많은 주민이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평군 관계자는 “지역 공동체의 자발적인 참여로 마련된 이번 기탁은 보호종료아동들에게 실질적인 응원과 힘이 될 것”이라며 “전달된 후원금은 자립을 준비하는 보호종료아동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정성으로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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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마을교육공동체, 추억 담은 찻집 수익금으로 따뜻한 나눔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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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마을교육공동체, 함께해서 더 따뜻했던 ‘가마공 벼룩시장’ 성황리 마무리
- [GN NEWS=가평군]기문정 기자=가평마을교육공동체(가마공)가 주관한 ‘가마공 벼룩시장’이 지난 11월 2일 가평 철길공원에서 개최되어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민들과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따뜻한 참여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약 20여 팀의 셀러가 함께한 이번 행사는 아이들이 팀을 이루어 직접 물건을 준비하고 판매에 참여하면서 단순한 거래를 넘어 배움과 책임, 자립심을 길러주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고, 구석구석 다양한 물건과 손수 만든 수공예품, 먹거리들이 가득해 보는 즐거움도 더해졌다. 행사장 곳곳에는 ‘두부 저염 쌈장 만들기’, ‘요거트 컵과일 만들기’, ‘커피화분’, ‘립밤·비누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게 마련되어 어린이와 가족 모두가 즐기며 직접 만들고 체험하는 교육적 시간이 함께했고, 고사리손으로 판매 부스를 운영하며 설명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방문객들의 발길을 오래도록 머물게 했다. 행사 중 펼쳐진 버스킹 공연은 영화음악, 대중가요, 연주곡이 어우러진 감성 가득한 무대로 구성되었고, 현장 관객의 즉석 신청곡 연주와 아이들의 참여 무대까지 더해져 마치 마을 축제 같은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올해 진행된 ‘우리마을 영화 만들기’ 프로젝트는 마을과 공동체가 함께 참여해 가평의 일상과 이야기를 영화로 기록하며, 마을의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작업으로 평가받았으며, 주민들 사이에서는 내년에도 꼭 이어가길 바란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평마을교육공동체는 지난 10여 년간 팜파티 축제, 꿈의학교, 마을밥상, 직업체험, 영화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마을과 학교, 아이와 어른이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꾸준히 실천해왔고, 이번 벼룩시장을 통해 다시 한 번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 깨닫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전했다. 이성아 가마공 회장은 “앞으로도 가마공은 주민과 가족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마을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며, 언제든 이 여정에 함께할 가족들을 기다린다”며 공동체와 교육이 함께하는 마을 문화를 확산해나갈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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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를 통해 본 경계와 배제의 정치
-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통해 본 경계와 배제의 정치 1. 국경은 누구를 막는가. 국가는 경계를 통해 자신을 정의한다. 그 경계는 지리적일 수도 있고, 법적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문화적·이념적 기준에 따라 설정된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tfer Another)는 이러한 경계의 정치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이민자와 난민을 둘러싼 국가의 태도는 ‘누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권력과 인간성의 본질을 묻는다. 영화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에 있는 이민자 구금시설을 급습하는 ‘프렌치75’의 액션으로 시작한다. 이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핵심 주제를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국경은 단순히 두 나라를 나누는 지리적 선이 아님을 보여준다. 구금된 이민자들은 이미 미국 영토 안에 있지만, 여전히 ‘밖의 존재’로 취급된다. 이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말한 ‘예외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법의 테두리안에 있지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존재들. 그들은 국경을 넘었지만 여전히 경계 바깥에 머문다. 이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 국가는 무제한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구금된 이민자들이 처한 예외상태는 트럼프 행정부가 벌인 이민정책의 폭력성, 타국에 대한 폭력적 권력행사를 떠올리게 한다. 국가 권력이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특정 집단을 비인간적인 존재로 낙인찍어 배제하는 폭력적인 정치의 장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록조 대령(숀펜 분)으로 대표되는 국가 시스템은 이 경계선을 통해 ‘안보’라는 명분 아래 이민자들을 통제하고 억압한다. 영화 속 ‘프렌치75’의 혁명은 이 배제의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었지만, 그 방식 역시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점에서 경계가 만들어낸 갈등의 악순환을 표현했다. 2.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존재, 퍼피디아의 저항 주인공 퍼피디아는 프렌치75라는 급진적인 단체의 핵심 인물로, 체제에 대한 저항을 상징한다. 그녀는 미국 시민이지만, 자유라는 기치를 들고 국가의 이념과 충돌하는 순간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녀의 행동은 범죄로 규정되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경계가 국적이나 출생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념적 경계를 넘는 순간 시민조차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퍼피디아는 국가가 받아들이지 않는 자의 상징이다. 3. 록조 대령과 제도적 경계 록조 대령은 퍼피디아를 과거에 ‘가르쳤다’라고 말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복잡한 개인사가 있다. 록조는 퍼피디아에게 집착적 감정을 품었다. 그녀에게 남자친구(밥 퍼거슨역,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있었음에도, 록조는 그녀와 관계를 맺었고 자식까지 낳았다. 하지만 그는 국가 권력의 대리자로서 그녀를 탄압하는 역할을 수행 한다. 결국 그녀를 체포하고, 과거를 지우기 위해 그 자식마저 죽이려 한다. 이 설정이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여기에는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있다. 국가권력은 ‘개인의 이념이나 윤리보다 제도적 질서를 우선시 한다’는 것이다. 록조 대령에게 퍼피디아는 한때 사랑했을지 모르는 개인이 아니라, 체제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그가 자신의 과거를 지우려는 행위는 국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은폐했던 역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4.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 이념.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중심 갈등은 극좌 혁명조직 ‘프렌치75’와 록조 대령의 극우 세력이라는 양극단의 이념적 대립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각자의 신념이라는 견고한 경계선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상대를 절멸시켜야 할 ‘적’으로 규정한다. 이들에게 대화나 타협의 여지는 없다. 오직 ‘하나의 전투가 끝난 뒤 또 다른 전투’(One Battle after another)가 있을 뿐이다. 영화는 이처럼 타협 없는 이념의 경계가 얼마나 허망한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혁명을 부르짖던 ‘프렌치75’는 내부의 배신과 외부의 탄압으로 와해되고, 조직원들은 역사의 패배자로 남아 무력감에 시달린다.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밥 퍼거슨이 그렇다. 반면, 체제수호의 신념을 가졌던 록조 대령은 권력욕과 편집증에 사로잡혀 자신의 핏줄마저 위협하는 괴물이 된다. 극단적인 이념은 결국 외부의 적이 아닌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감옥이었던 것이다. 5. 부모 세대가 그어놓은 경계선, 비극으로 맞이하는 다음 세대 퍼피디아의 딸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는 이 모든 비극의 결과물이다. 부모 세대가 그어놓은 경계선이 만들어낸 비극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다음 세대를 상징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과잉보호와 편집증 속에서 성장했고, 만나본 적 없는 엄마의 과격한 이상과 아버지 세대의 실패를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윌라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부모세대가 가졌던 거창하고도 잘못된 신념들이 다음 세대의 삶을 어떻게 옥죄고 파괴하는 지를 처절하게 보게 된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는 경계가 단지 지리적 선이 아니라, 인간을 분류하고 배제하는 권력의 매커니즘임을 보여준다. 국경은 이민자를 막고, 이념은 시민을 배제하고 나누며, 세대 간 경계는 미래를 위협한다. 영화의 엔딩장면은 이렇다. 다음세대의 상징인 윌라가 다시 혁명전투에 불려나가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가 제기하는 질문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유효하다. 국가는 어떤 인간을 받아들이는가?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타인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준은 과연 정당한가? 이념적 양극단이 모두 실패하는 모습은 경계 자체를 재사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렇지 않으면 ‘끝없는 전투’의 수렁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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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를 통해 본 경계와 배제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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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암 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 성료… 글과 그림으로 나눈 마음의 풍경
- [GN NEWS=가평군]기문정 시민기자=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가 깊어가는 가을, 가평 청평암 대웅전에서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가을비가 조용히 내리는 가운데에도 많은 이들이 우산을 들고 행사장을 찾아 자리를 지켰고, 그 정성 어린 발걸음이 축제의 의미를 한층 더 깊게 했다. 올해로 일곱 번째를 맞은 이 축제는 전국 단위의 글짓기·그리기 공모전과 함께, 참가자와 관람객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마련된 체험 부스와 먹거리 부스, 그리고 수상자들이 참여한 ‘끼자랑’ 무대가 더해져 따뜻하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이번 축제에는 전국 각지에서 창의적이고 진정성 있는 작품들이 다수 출품되었고, 글짓기 부문 74명, 그리기 부문 243명 등 총 317명의 입상자가 선정되었으며, 글짓기에서는 3명, 그리기에서는 8명이 공동 대상을 수상해 해마다 높아지는 참여도와 수준을 다시금 확인케 했다. 청평암 조실 명요 구암 스님은 개회사에서 “예술은 자비의 표현이며, 진심을 담은 글과 그림은 세상을 맑히는 수행의 한 길”이라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이야말로 가장 깊은 치유의 언어”라고 강조했다. 서태원 가평군수는 “이번 공모전의 주제처럼 ‘사찰, 나눔, 칭찬, 사랑, 어리석음, 자유’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부처님의 말씀이라 생각하며, 6회째를 거치면서 매년 훌륭한 작품들이 탄생가게 된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며, " '꽃나무 울타리 세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경치가 좋은 사찰, 청평암에서 뛰어난 수준의 문화축제가 해마다 열리게 되어 가평군의 또 하나의 문화자산으로 이 대회가 오래도록 함께 가기를 염원한다"고 축하 메세지를 전했다. 김용태 국회의원(가평·포천)은 “대회에 참가하여 영예로운 상을 받은 수상자 여러분께 진심 어린 축하 를 전하며, 이 뜻깊은 행사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써주신 구암 조실 스님과 청평암 관계자께도 깊은 감사의 마을을 드린다”며, "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재능을 발휘하고 꿈을 펼치는 축제의 장일뿐 아니라 불교문화예술을 이어가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격려를 보냈다. 특히 올해는 가평 지역 출신 수상자 두 명이 공동대상에 오르며 지역사회에 큰 자긍심을 안겼다. 일반부 대상 수상자인 이경민 씨는 ‘산이 주는 자유’라는 수필을 통해 도심의 숨 가쁜 일상에서 벗어나 계절의 리듬과 산의 품 안에서 자유를 느끼는 정서적 해방감을 섬세한 언어로 표현해냈고, 심사위원단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사색적으로 풀어낸 문장이 깊고 따뜻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단연 이번 축제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 수상자는 청평고등학교 2학년 이소윤 학생이었다. 고등부 대상작인 ‘하루 일찍’은 자폐장애를 가진 동생을 둔 누나로서 가족의 현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창작소설로, 격정 없이 절제된 문체 안에 담긴 가족의 인내와 연민, 그 속에서도 지켜지는 사랑과 희망의 정서가 조용하지만 묵직한 감동을 자아냈다. ‘하루 일찍’이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 메시지였다. 자폐를 가진 아이를 둔 어머니가 왜 아이보다 하루 더 살아야 하는지, 또 하루 먼저 보내야만 하는지에 대한 절절한 고백이 담겨 있다. 세상보다 하루 앞서 깨어야 하는 어머니의 삶, 눈치보다 한 발 먼저 움직여야 하는 가족의 리듬을 상징하며, 이소윤 학생은 그 복잡한 감정과 삶의 모순을 감정에 기대지 않고 깊은 이해와 애정의 언어로 담담히 풀어냈다. 이소윤 학생은 수상 후 인터뷰에서 “제 동생은 말은 없지만 제게 많은 말을 하게 만든 존재예요. 글을 쓸 수 있게 해줘서 고맙고, 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실제 자폐를 가진 동생을 둔 누나로서, 가족 안에서 느껴온 복합적인 감정과 삶의 단면들이 작품 「하루 일찍」의 모티브가 되었다. <사진자료=청평암 공식카페> 글짓기 심사평에서는 다음과 같은 평가가 전해졌다. “올해에도 여전히 뜨거운 기온에 장마와 가뭄과 열대야 속에서 한 계절이 가고 있다. 점점 우리의 대지도 공해에 몸살을 하는지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였다. 하늘의 상황도 이곳처럼 그리 만만치 않아서일까 싶다. 그래도 많은 작품들이 출품되어 마음은 풍요로웠다. 문학적 기량이 돋보이는 작품들도 보이고, 작은 손으로 조곤조곤 말하는 예쁜 글들도 보였다. 심사하면서 잘 쓰인 문장의 기교보다는 글쓴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했고, 공감이 가는 글에 애정을 담았다. 채혜원의 ‘<빗을 잃어버린 인어>를 읽고’라는 책 속 소년과 소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고 간결하다. 그 여린 심성을 잘 유지하여 좋은 시를 쓰길 바란다. 장서진의 ‘자유는 날개’라는 자연스럽게 잘 쓰인 시다. 누구든 함께 그 길을 따라 즐기며 같은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한 번쯤은 해 본 경험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된다. 고등부의 이소윤의 ‘하루 일찍’은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을 담담한 어투로 차분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자폐아를 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절절한지, 얼마나 애쓰고 아픈지를 담백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루 일찍’ 이라는 제목부터 마음을 흔들고 아프게 했다. 과하지 않게 절제하며 써 내려가는 문장이 더욱더 문제의 앞으로 다가가게 만든다. 조금만 더 다듬어지면 더욱 좋은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정진하길 바란다. 일반부 이경민의 ‘산이 주는 자유’는 도시인의 숨 가쁜 삶 속에서 우연히 산행하며 자유를 느끼는 일을 계절별로 쓴 글이다. 막힘없이 매끄러운 글이다. 계절마다 다른 느낌의 자유를 잘 묘사하여 함께 기분 좋게 산행을 한 느낌이다. 자연과 더불어 삶의 시선을 맑게 하는 일의 중요성도 보여 준 작품이었다.”고 평하며, 이번 공모전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진심 어린 시도와 가능성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번 축제는 단순한 문예대회나 경연을 넘어, 서로 다른 세대와 지역, 시선을 하나로 모으는 문화적 공감의 장이었다. 유치부부터 일반부에 이르기까지 본선 진출작들은 청평암 대웅전 마루에 전시되어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전했고, 어린이의 해맑음부터 성인의 성찰까지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며 큰 울림을 남겼다. 심만기 심사위원(BS㈜ 밝은생각 대표이사)은 “예술은 결과보다 과정에서의 진심이 중요하다. 특히 올해는 유아·청소년 부문의 작품 수준이 높아 구성력과 감정표현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행사 주최 측은 “참가자 한 명 한 명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모든 출품작은 예술로서의 가치가 충분했다”며 “앞으로도 아라한 문화축제가 단지 수상 중심이 아닌 성장과 나눔의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는 자연 속 사찰이라는 공간에서 예술을 통한 치유와 공감, 연대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 뜻깊은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행사 말미에는 청평암에서 참석자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마련한 따뜻한 공양이 제공되었으며, 빗속에서도 축제의 자리를 지켜낸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이자 깊은 나눔의 실천이 되었다. 단순한 식사가 아닌, 마음을 담은 대접이었던 그 공양은 서로의 마음을 잇는 또 하나의 예술로 기억되었다. <사진자료=청평암 공식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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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암 제7회 아라한 문화축제 성료… 글과 그림으로 나눈 마음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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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군 설악면, 미원천 정화 및 꽃밭 가꾸기 봉사로 마을 환경 개선 나서
- [GN NEWS=가평군]김경태 시민기자=가평군 설악면은 9월 2일 오전 9시부터 미원성당 앞 미원천 일대에서 하천 정화 및 꽃밭 가꾸기 봉사활동을 실시하며 쾌적하고 아름다운 마을 환경 조성에 나섰다. 이번 활동은 설악마을공동체와 설악면 행복마을관리소가 공동 주관하고, 한국수력원자력(주) 청평수력발전소의 후원으로 진행되었다. 참여자들은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하천 주변에 무단 투기된 쓰레기를 수거하고, 꽃밭을 정리‧가꾸며 구슬땀을 흘렸다. 특히 봉사자들은 활동을 통해 하천 주변이 점차 깨끗해지고 꽃밭이 아름답게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며 큰 보람을 느꼈다. 한 주민은 “깨끗해진 하천을 보니 힘든 줄도 모르고 즐겁게 봉사에 임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마을 환경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설악마을공동체 관계자는 “주민이 직접 나서는 작은 실천이 모여 마을의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며 “지속적인 환경 정화와 꽃밭 가꾸기를 통해 살기 좋은 설악면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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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군 설악면, 미원천 정화 및 꽃밭 가꾸기 봉사로 마을 환경 개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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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의 연대가 어떻게 국가의 역사가 되는지를 보여준 영화.
- 월터 살레스 감독의 <아임 스틸 히어>(원제:Ainda Estou Aqui)는 단순한 전기 영화를 넘어, 한 가족의 개인적 비극을 통해 국가적 폭력과 기억의 상실에 맞서는 거대한 투쟁을 펼치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개인의 기억이 어떻게 국가의 역사로 승화 되는지를 깨닫게 한다. 월터 살레스, <아임 스틸 히어>가 건네는 숙제 영화는 1970년 브라질 군사 독재 정권에 의해 희생된 루벤스 파이바 의원를 다루고 있다. 이 사건은 브라질 군사정권이 반정부 인사들을 대상으로 자행했던 정치적 숙청, 불법연행, 고문, 실종, 그리고 죽음의 아픈 역사였다. 영화는 시대적 폭력 속에서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이 절망에 빠지지 않고 진실을 찾기 위해 투쟁하며, 잃어버린 가족을 기억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남편을 잃은 아내나 아버지를 잃은 가족의 고통을 과장하거나 신파적으로 그리지 않고, 자녀들 앞에서 묵묵히 버텨내는 어머니 유니스의 강인함을 통해 '기억'이라는 행위 자체가 곧 '저항'이었음을 보여준다. 아임 스틸 히어. ‘나는 아직 여기 있다’는 원제는 사라진 아버지의 외침이다. 나는 아직 가족 속에 있고, 역사 속에 있다. 그리고 가족의 기억 속에 있고, 역사의 기억 속에 있다는 외침이다. 역사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다짐이 된다. 이 영화는 잊혀지는 것을 거부하고, 기억의 증인이 되어달라고 호소한다. 슈퍼 8미리 필름으로 구현하는 기억의 질감 월터 살레스 감독은 1970년대의 기억을 시각화 하는 방법으로 슈퍼 8미리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다. 실제 영화 속에서도 8미리 카메라로 촬영하는 장면이 등장하곤 하는데, 이를 통해 과거의 한 순간이지만 행복했던 가족을 따스한 빛과 색감으로 그려냈다. 또한 이 거친 입자와 불안정한 화면으로 오래된 가족 앨범이나 빛바랜 기억 속 한 장면을 생생하게 관객과 공유한다. 이는 영화가 단순한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기억의 복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상실을 뒤섞으며, 기억이 단단한 실체가 아니라 언제든 부서지고 변형될 수 있는 연약한 것임을,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불안정한 화면을 통해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또 하나의 미학적 선택은 감정의 절제였다. 감독은 노년에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 유니스(페르난다 토레스)의 고통스러운 순간이나, 아버지의 실종 소식을 접하는 가족들의 눈물 어린 장면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그녀가 묵묵히 길을 걷거나, 서류를 정리하고, 아버지가 없는 식탁에 앉아있는 뒷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절제된 연출은 신파극의 감정적 과잉을 피하고, 관객들이 인물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침묵의 슬픔과 강인함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인물에게서 오히려 더 큰 슬픔을 느끼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서 강한 저항의 의지를 읽어낸다. 이는 '한(恨)'이라는 정서를 통해 비극을 다루는 한국적 정서와도 깊게 맞닿아 있어, 우리에게 공감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의 기억들, 그리고 한국영화의 부재 <아임 스틸 히어>를 보고 있으면, 한국의 과거사가 자연스럽게 겹쳐서 떠오른다. 우리 역사에도 군부독재 시대가 있었으며, 과오를 은닉하고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 가슴 깊이 각인된 아픔들이 있었다. 세월호가 그랬고, 이태원 참사가 그랬고, 최근엔 무안 국제공항 사고가 있었다. 브라질의 과거와 너무도 흡사한 동백림 사건도 있었고, 광주 민주화 운동과 4.3사건까지. 이름조차 기억되지 못하고 유린된 희생과 사건들은 우리 가슴 한편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그런데 정작 이런 기억들을 월터 살레스만큼 섬세하고 깊이 있게 다루는 한국영화는 어디에 있을까? 천만관객 동원이라는 숫자에 매몰되거나, 화려한 액션과 스펙터클에만 골몰하고 K컬쳐라는 한류에 취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달려온 지금의 한국영화는 성공보다는 망해가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한국영화가 사회적 주제를 아예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자극적 소재로 소비되거나, 단순한 선악구조로 치환되는 경우가 많다. 정작 깊이 있는 성찰과 창작의 작품은 사라지고 있다. 자본의 논리라며 심도있는 창작과 다양성 영화에는 투자되지 않고 제작이 사라지니 창작은 말라가고 있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러한 류의 영화는 한국 영화에서 소멸되고 있다. 반면에 <아임 스틸 히어>는 전세계적 극장에서 한화로 500억 이상 매출이 나오고 있다. 곧 한국에서도 개봉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상업적 성공은 쉽지 않을 것이다. 많은 극장은 상업적이지 않다는 이상한 이유로 외면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영화를 살려야 한다며 할인권을 극장에 힘을 실어주는 저급한 정책에 정작 지원 받아야할 영화인들은 울고 있고, 영화 창작자들은 외면 받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영화의 권력이 극장에 있으니 말이다. <아임 스틸 히어>가 보여준 것 같은 깊이 있는 성찰,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따뜻하면서도 냉정한 관찰과 역사의 기억을 통한 영화적 기록이 필요한데 말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하는 가. 이 영화는 브라질의 특수한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그 핵심에는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 아버지는 육체적으로 사라졌지만, 가족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며 그들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어머니는 기억을 잃어가지만,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진실을 향한 투쟁의 의지만큼은 사라지지 않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영화는 결국, 존재의 증명이 물리적인 것이 아닌, 기억과 사랑에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는 한, 그 사람은 영원히 '여기'에 존재한다는 메시지다. <아임 스틸 히어>를 보는 것은 단순히 영화 한 편을 관람하는 행위를 넘어, 역사의 증인이 되어 '기억의 연대'에 동참하는 중요한 경험이다. 이 영화가 슬픔을 직시하고 기억을 되살리는 용기가 어떻게 희망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술적 증언이다. 한국영화가 이런 숙제에 응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도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아직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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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의 연대가 어떻게 국가의 역사가 되는지를 보여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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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마을공동체·가평효정봉사단, 하천 보호 위한 환경캠페인 펼쳐
- [GN NEWS=가평군]김초희 시민기자=설악마을공동체와 가평효정봉사단이 공동으로 주최한 환경보호 캠페인이 8월 1일(금)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설악면 시내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캠페인에는 약 80명이 참여해 하천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는 피켓 시위 환경캠페인을 전개했다. 이번 캠페인은 한국수력원자력㈜ 청평수력발전소의 후원으로 추진되었으며, 참가 단체들은 우리 지역의 하천과 환경을 동시에 지키는 실질적인 행동을 촉구하였다. 참가자들은 "우리의 물, 우리의 미래! 하천 보호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 하천을 깨끗하게 보호하자!", "하천이 살아 숨 쉬는 환경! 우리의 맑은 미래입니다!" 등 다양한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으며 생활 속 실천 가능한 환경보호 활동을 함께 독려하였다. 설악마을공동체 참가자는 “'하천 보호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라는 문구가 제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려면 우리 세대가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늘의 캠페인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가평효정봉사단 관계자는 “생명을 품은 하천, 생명을 살리는 일에 모두가 동참해 주시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정기적인 환경 캠페인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무더위 속에서도 청년들의 힘찬 움직임과 외침을 통해 지역 사회의 환경 보호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진행되었으며, 참가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따뜻한 연대를 통해 의미 있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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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마을공동체·가평효정봉사단, 하천 보호 위한 환경캠페인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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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기념, 최고봉 성악가들 한자리에
- [GN NEWS=가평군]이성아 기자=국내외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표적인 성악가로 구성된 '더 멘즈 콰이어'(The Men's Choir)가 는 오는 8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제17회 정기연주회를 갖는다. 더 멘즈 콰이어는 전문적인 연주와 학술 연구를 통해 한국 성악 문화의 위상을 높이고자 2008년 3월 창단되어 다양한 기획 공연과 찾아가는 음악회 등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남성합창단이다. 이번 공연에서 더 멘즈 콰이어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며 오페라, 한국 가곡, 가요 등을 편곡한 다양한 합창곡들과 시니어 모델의 런웨이와 앙상블이 함께 한다. 프로그램으로는 우정의 노래,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등 오페라 아리아와 합창인들에게 사랑받는 주옥같은 합창곡들이 다수 연주된다. 상임 지휘자 정형국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와, 피아니스트 강은경·김유경·이인숙·서민기가 반주로 함께하며, 영화배우 서민기의 사회와 스페셜 게스트 소프라노 변경순, 하보나, 남가람합창단(지휘 정준영, 반주 이경미)이 함께 한다. 또한 이번 공연에서는 인천문화예술협회(ICAA) 시니어 모델 라인(회장 박수이)의 런웨이가 함께하는 공연으로, 소프라노 이지현, 재즈 피아노 홍영은, 바이올린 한예진, 오보에 한효승, 카혼 장복민이 연주하는 명곡들이 배경 음악으로, 시니어 모델의 워킹과 남성합창의 다이나믹한 하모니에 퍼포먼스가 함께 하는 풍성하고 특별한 무대를 선사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공연은 훈 엔터테인먼트 주관으로 The Men’s Choir가 주최하며, 재단법인 씨젠의료재단, CTS기독교TV, 세계 한인재단, 한양대학교 총 동문회 등이 후원하며 롯데콘서트홀이나, NOL 티켓을 통해 예매가 가능하며, 자세한 공연문의는 훈 엔터테인먼트 02-332-5545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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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기념, 최고봉 성악가들 한자리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