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N뉴스=경기도]청연=기고문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특성이 자신의 눈에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신과 맞지 않거나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물론 틀린 것도 있을 수 있지만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맹목적으로 무시하거나 비난하지는 말아야 한다.
지하철에서 어떤 남자가 아이 둘을 데리고 탔다.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 소란스럽게 장난을 치기에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그 중에 지긋하게 나이 드신 분이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버지를 꾸짖는 것이다.
아이들 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것과 그런 아이들을 가만히 방치하는
아이들의 아버지를 나무랬다. 그러자 슬픈 표정을 짓고 있던 애들 아버지는
“죄송합니다. 애들 엄마를 화장하고 집에 가는 길이라 경황이 없어 그랬습니다.”라 했을 때 일순 전철 안은 숙연해졌다.
사람들의 삶은 각자의 상황과 개성으로 살아간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상황을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기에,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도 다시 한 번 관찰해 보는 것이 삶을 잘 사는 지혜다.
생각나는 대로 모두 대응할 필요가 없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관찰하다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면 거부감을 표시하면서 불편한 감정을 표출한다.
더 나아가서 자신의 생각과 성향이 맞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과 뜻을 같이 하지 않으면 적이 되어버리는 극단적인 사고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동지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흑백논리를 펼치며 편을 가른다.
더구나 자신의 생각이나 추종하는 세력이 옳다 여기면,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같이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편이라는 이유로 감싸거나 묵인하는 것은
잘못되었거나 비겁한 것이다.
또한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바꿔보려 노력하는 경우가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부부관계다.
서로 다른 세상에 살다가 부부의 연을 맺고 같이 살아가면서 닮아간다. 하지만 환경이 다른 곳에서 살아왔기에
처음에는 맞지 않은 것을 사랑으로 감싸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편한 감정들이 쌓이게 된다.
그로인해 싸움도 하게 되고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나쁜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사람은 노력에 의해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천성이라 해서 타고 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친한 친구가 부인과 함께 나를 찾아 왔을 때 일이다. 친구의 성품이 착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한다. 부인도 처음에는 그런 친구의 친절함이 좋았는데, 결혼하고 같이 살다 보니 불편한 것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바꿔 보려 노력했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친절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 날도 길가에 펑크가 나서 고장 난 차를 보고 도와주러 달려가는 친구를 와이프가 말렸다.
그리고 때리기까지 했다.
친구 부인의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내가 보고 있는데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들어내는 것은
결코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결혼하기 전부터 알고 있던 친구의 모습은 나에게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었는데
결혼 후 친구는 자신의 본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친구의 행동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은 있지만 비난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자신의 본성을 잃어가야 했다.
그것이 정말 잘 사는 것일까?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것일 수도 있고, 가치관이나 생활 습관의 차이
또는 환경에 의해 낯설거나 불편하게 느껴 질 수 있다. 남이라면 그냥 무시하거나 피하면 되지만
가족이거나 친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설득을 해서 변화를 주려 노력도 해보지만 오랜 세월 당연하게 해왔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외면하거나 비난할 이유가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된다. 사람의 개성이 다양한 것을 인정하고, 편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면
싫은 사람이나 미운 사람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불편한 상황을 만드는 사람에게 말을 하기 전에 관찰하고,
말을 할 것인가 아닌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면 대부분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존재도 인정해 주는 것이
삶을 사는데 마찰 없이 살아가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귀로 들은 나쁜 말은 그냥 흘려버리고 눈으로 직접 봤더라도 말을 할 것인가를 잠깐 고민한다면
사람간의 불화를 줄일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을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은 너와 나 그리고 우리를 위한
큰 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