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6(금)
 
  •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4번(Hungarian Dances WoO. 4 In F Minor)과 5번(Hungarian Dances WoO. 5 In F-Sharp Mi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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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뉴스=경기도]이성아 기자=유튜브 뉴스

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음악가는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 (7 May 1833 – 3 April 1897)입니다.

클래식 음악사 중 가장 위대한 독일 작곡가 세명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바흐(Bach)와 베토벤(Beethoven) 그리고 브람스(Brahms)를 꼽습니다, 이 세 사람을 일컬어 이른바 ‘독일의 3B’라고 칭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 사람의 이미지는 제각각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데요, 평생을 종교 음악에 헌신한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란 별명처럼 근엄하고, 악성 베토벤은 그의 교향곡처럼 초월적이고 직설적이며, 브람스의 이미지는 ‘고전적 낭만주의자’라는 수식어처럼 푸근하고 인간적입니다.

 

브람스는 다수의 협주곡과 교향곡, 피아노곡, 합창곡, 실내악 등 200여 곡이 넘는 가곡을 작곡했습니다. 그의 음악을 말할 때면 언제나 논하게 되는 양면성 즉, 명과 암, 희망과 절망, 엄격함과 온유함, 그러한 극단적인 두 개의 정서가 교차되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요하네스 브람스는 1833년 5월 7일 북부 독일의 항구도시인 함부르크에 위치한 아파트의 좁은 방에서 호른과 더블베이스 연주자인 요한 야코프 브람스(Johann Jakob Brahms, 1806–1872)와 요하나 헨리카 크리스티아네 브람스(Johanna Henrika Christiane Brahms, 1789–1865)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요한 야코프 브람스는 가업으로 이어오던 여관 경영을 이어받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고향인 하이데 라는 작은 도시를 뛰쳐나와 함부르크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음악가를 지망했던 요한 야코프 브람스는 항구 근처 술집에서 호른을 연주하며 활동하다가 바빌리온의 6중주 단원이 되어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명곡을 쉽게 편곡하여 연주하였다.

그러던 그는 같은 하숙집에 묵고 있는 요하나 헨리카 크리스티아네 니센(혼전성)과 친하게 되었고 일주일 만에 이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됩니다.

당시 신랑은 24세, 신부는 혼기를 놓쳐버린 17세 연상의 여인이었습니다. 1830년 당시로서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나이 차이였습니다.

 

브람스는 5살부터 그의 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과 첼로를 배웠고 7세 때 코셀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됩니다.

브람스의 부모는 어린 브람스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자 그를 미국으로 데리고 가 천재 신동 음악가로서 돈을 벌려 하였으나 코셀이 강하게 반대하여 미국행은 없었던 일이 되었습니다.

브람스는 10살 때 코셀의 스승이었던 에두아르트 마르크스젠에게 보내져 가르침을 받게 되었고 마르크스젠에게서 작곡법과 음악론을 배우면서 훌륭한 음악가가 되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시작하여 11살 때부터는 작곡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젊은 시절에 작곡된 브람스의 여러 곡들은 대부분 파기되거나 유실되었다고 합니다.

 

14세에서 16세 때에 브람스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생계를 위해 학교를 결국 중퇴하고 집안 살림을 돕고자 노버의 항만지역에 있는 허름한 여인숙 그리고 연회장과 술집, 식당 등을 전전하며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때로는 피아노 교습을 하는 동안에도 틈나는 대로 합창단을 지휘하고 합창 음악을 편곡하기도 하면서 틈틈이 작곡도 하고 독주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 훌륭한 합창 음악을 창작할 수 있게 된 배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1850년에 그는 유대계 헝가리의 바이올린 연주자인 에두아르트 레메니(Eduard Reményi, 1828–1898)를 만나 함께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그로 인해 브람스가 일생 동안 영향을 받았던 헝가리의 민족음악을 배우게 됩니다.

1853년 4월과 5월에 헝가리 레메니의 반주를 맡아 연주 여행을 함께 떠날 때까지 그의 작품은 그리 크게 대중의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여행 중 하노버에서 그는 헝가리 태생의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지휘자이며 작곡가인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 1831-1907)을 만남으로써 첫 번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바이마르 궁정에서 프란츠 리스트, 피터 코르넬리우스, 요아힘 라프를 만나게 됩니다. 브람스가 리스트와 만나게 되었을 때 리스트는 브람스의 스케르초 Op.4를 초견으로 연주하였다고 합니다.

몇몇 증언에 따르면, 브람스가 리스트의 소나타 B단조 작품을 그리 칭찬하지 않아 리스트의 기분이 상했었다고 전했는데 사람들은 아마도 브람스는 당시 여행에 지쳐있어 이 연주를 하고 있을 때 졸고 있었던 것 이 아니었나 추측하였고 브람스 또한 당시 여행으로 지쳐 어쩔 수 없었노라고 나중에 변명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브람스의 재능을 높이 산 요아힘은 로베르트 슈만에게 편지를 써서 브람스를 소개하였습니다. 라인란트의 연주 여행을 끝내고 브람스는 기차를 타고 뒤셀도르프로 가 슈만 부부에게 크게 환대를 받습니다.

로베르트 슈만은 젊은 브람스의 재능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이 젊은 음악가를 세상에 소개하고자 1853년 10월 28일 음악 신보, [Neue Zeitschrift für Musik]에서 평론 「새로운 길」이라는 기고문을 발표하여 브람스는 전 유럽에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로베르트 슈만은 이 평론에서 "이 시대의 이상적인 표현을 가져다줄 젊은이"로 브람스를 소개하여 관심을 일으켰지만 슈만의 지인 지인들에게 이러한 평론이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자신의 작품과 기술을 완벽하게 만들고 싶어 했던 브람스에게 자기비판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록 어려운 상황은 항상 있었지만 이때부터 브람스는 서서히 음악세계의 중심권에 있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브람스와 슈만 부부와의 인연과 브람스와 리스트로 대표되었던 신독일악파와 정통파로 대립했던 유럽 음악계의 이야기와 브람스의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 여섯 번째 소개해 드릴 곡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4번(Hungarian Dances WoO. 4 In F Minor)과 5번(Hungarian Dances WoO. 5 In F-Sharp Minor)입니다.

 

동유럽의 헝가리 집시들의 음악은 유랑 생활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으며 애수에 차있고 이국적인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한 가지의 스타일이라기보다는 그리스, 터키, 유대, 비잔틴, 슬라브, 아랍 등 여러 도시와 민족을 만나고 영향을 받은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된 음악 형태로 나타나며, 특히나 스페인으로 넘어가면서 플라멩고 음악의 탄생에 기원이 됐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이들의 음악은 15세기 헝가리 문헌에도 기록돼있을 정도이고 19세기 헝가리 음악사에도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 음악은 3부 형식의 테마를 무겁게 때론 가볍게, 애수 젖은 느린 서주로 시작해서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는 듯한 빠른 템포들로 마무리되는 차르다시 (Csárdás-헝가리에 많이 사는 집시들의 민속춤곡이다) 풍을 많이 따르고 있습니다.

무곡 4번 F단조는 조금 음을 길게 꿀어서 빠르고 생기 있게 연주하라는(포코 소스테누토-비바체 Poco sostenuto-Vivace) 템포 지시가 붙어있습니다. 특히 헝가리 무곡 5번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중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이기도 합니다.

채플린이 나치와 히틀러를 풍자한 영화 <위대한 독재자>에도 등장하는데, 1940년 제작 당시 많은 유태인들과 집시들이 나치에 의해 학살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유럽 각국에서는 고단한 유랑 생활을 하는 집시들에게 직업을 갖도록 하고 이들을 ‘찌고이너(Zigeunerweisen)’ 또는 신 헝가리인으로 불렀는데, 브람스가 곡 제목에 헝가리를 붙인 이유도 이런 소외된 자들을 위한 음악이란 뜻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브람스의 무곡은 4개의 작품집 속에 21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중 11번 14번 16번 곡만이 브람스의 창작 작품이고, 나머지는 헝가리 집시음악을 편곡한 작품들이라고 합니다. 브람스가 헝가리 음악에 큰 영향을 받았던 레메니와의 표절 분쟁이 있었고 그때 브람스는 작곡자가 아닌 편곡자로 출판되어 승소는 하게 되었지만 브람스의 무곡에는 음악가의 작품 번호를 뜻하는 op 대신 ‘작품 번호 없는’이란 뜻의 WoO(Werke ohne Opuszahl ("Works without opus number"))가 붙습니다.

보통 작품 번호는 사후 음악 역사가 나 후배 음악가들이 작품을 정리하며 부여하는데 정리하다 빠뜨렸거나 의도적으로 뺀 일부 작곡자 작품에는 WoO를 붙여 되살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WoO는 20세기 중반이 돼서야 등장했으며 브람스 무곡을 표절의 대상으로 편곡 작품이었던 헝가리무곡에 작품 번호를 붙이기가 쉽지 않아 WoO를 붙이게 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고전 형식에 신선한 예술미와 뛰어난 새로운 기교를 융합하여 절대음악에 정진한 작곡가였고 온후하고 독실한 인격을 지닌, 고전 낭만주의자로 불리웠던 요하네 브람스

 

그의 낭만적인 음악을 함께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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