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미집>의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초 유신시대이다. 반공이념으로 인하여 언론도, 예술도 심의 검열을 받아야만 했던 시대가 배경이다.
<거미집>이라는, 검열에 걸릴 게 뻔한 걸작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한 감독의 영화제작 소동극이다.
김열 감독(송강호 분)의 걸작을 향한 열망에 반하여 예술에 대한 의식이 따라오지 못하는 시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를테면, 걸작을 위해 재촬영을 하겠다는 김 감독과, 검열에 걸리는 영화는 찍을 수 없다는 제작자(장영남 분)의 충돌, 내용을 숨기고 재촬영하려는 영화제작팀과 검열하려는 문공부 최 국장(장광 분)의 충돌, 걸작을 위해서는 재촬영도 불사하려는 김 감독과 재촬영이 불만인 배우 간의 충돌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영화이다.
영화 <거미집>은 극 중에서 김 감독이 만드는 작품명으로, 영화 속에 또 하나의 영화를 담고 있는 액자구조다.
미술로 비유하자면 스페인의 위대한 화가였던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 <시녀들>과 비슷한 구조다.
<시녀들>이 왕과 왕비를 그리고 있는 화가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왕녀와 시녀들뿐만 아니라 화가의 초상화 속 왕과 왕비를 한 폭에 모두 담아놓았던 거처럼, 영화 <거미집>은 거미집을 만드는 이들의 모습과 이들이 만든 영화 <거미집>을 실제로 흑백영화로 볼 수 있다.
영화를 연출한 김지운 감독은 인터뷰에서 한 장의 영화 티켓으로 영화 2편을 볼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진짜 영화 2편을 보는 셈이 된다.
새로운 영화를 제시한 것처럼 들리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1970년대 영화인에 대한 존경과 영화사를 담아 헌정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에 우린 데미언 셔젤 감독의 <바빌론>이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파벨만스>를 먼저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970년대 대한민국에서 영화가 어떻게 사회적 통념을 깨고 지금의 세계적인 영화로 발전했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 같지만, 아니다.
물론, 선배 영화인에게 헌정하듯 김기영 감독, 이만희 감독, 신상옥 감독, 이용민 감독을 소환하고 있지만, 영화는 외부환경에 대항하는 감독 내면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영화를 제작하는 이야기 또는 예술가의 내면을 다루는 영화는 대중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대중적 오락성를 목적으로 한 영화가 아니라면, 다른 상징으로 이 영화를 해석할 수 있으며, 그러한 메타포적 영화는 관객들의 다양한 해석과 감정 그 모든 것이 정답이 되는 영화인 것이다.
이 영화는 영화제작을 담고 있기에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인 김지운 감독이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전달하고픈 메시지를 영화로 전달하고 있다는 관점으로 읽어내면 너무도 흥미로운 영화로 보인다.
현재 한국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상한 현실과 담론에 대하여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는 영화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시원하고 통렬한 우화 같은 코미디영화였다.
하나씩 이야기를 해보자.
후배들아 영화를 찍으려면 최소한 두 명의 동조자가 필요하단다.
한 명은 내 작품에 열광하는 제작부원(전여빈 분)이 필요하고, 그 사람이 제작사의 후계자나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더욱 좋다.
반대를 무릅쓰고 뚫고 나가줄 선봉대장이 되어 줄 것이다. 어떤 식이냐고? 배우의 투정을 용납하지 않고, 배역에 구멍 나도 본인이 대역하는 강인한 추진체가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은 조감독(김동영 분)이 중요하다. 이틀 동안 촬영해야 되는 상황에서, 배우들에게는 하루 촬영이라고 속여서라도 불러 모아 줄 것이다.
힘들다는 배우들의 투정에도 어르고 달래면서 끝까지 감독을 지켜줄 것이다.
문공부에서 심의가 거절 되는 상황이 벌어진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조감독이 ‘반공 영화’로 속이자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고, 대외적 포장을 잘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제작에는 이면이 있기 마련이다. 너의 영화가 제작되는 데에는 거절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제작자는 돈을 챙기고, 너(감독)는 시나리오를 챙겨야 한다.
서로의 비밀을 가지고 있어야 재촬영도 할 수가 있다.
재촬영 시에는 반드시 결말만 다시 찍으면 된다고 설득해야 하고, 걸작이 될 거라고 어필하여야 한다.
그러면 제작자는 짜증 섞긴 말투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휴~ 왜 그래요? 감독님. 하던 대로 하세요!’ 하지만 밀어붙여야 한다.
권력자나 공무원은 새로운 너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너의 동조자인 제작사와 조감독은 알아서 접대도 잘하고 거짓말도 서슴치 않고, 심지어 그들을 밧줄로 꽁꽁 묶을 것이다.
아참, 촬영장에서 너 옆에 앉아서 권력자가 갑질을 할지라도 절대 싫은 척 내색하면 안 된다. 어차피 곧 그들도 한배를 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항상 불만을 표출할 것이다.
‘스케줄이 바쁘다.’ ‘대본을 바꿨으면 준비할 시간을 줘야지 이렇게 촬영할 수 있냐.’ ‘대본이 이상하다’ 등 많은 말을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바람기 지닌 스타 배우(오정세 분)의 비밀(신인 배우 한유림(정수정 분)과 불륜)을 알게 될 수 있지만 입 다물고 촬영에만 집중해야 한다. 들어도 못 들은 척하라는 말이다.
세간의 평가와 평론가를 두려워하지 마라.
스승(정우성 분)과 비교하고, 삼류 치정극만 뽑아낸다고 악평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영화만 제대로 찍으면 틀림없이 걸작이 될 것이다.
이걸 알고도 비난이 무서워 피하면 죄악이 된다. 참아내며 항우울제를 틈나는 대로 먹도록 하라.
스태프들이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찍어야 한다.
너는 모르겠지만 스태프가 영화를 반대하는 사람을 묶어 세트장에 감금해 놨을 수도 있다.
하필 그날 세트에 불 지르는 화재 장면을 찍게 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촬영하도록 해라.
불타오르는 장면을 보며 쁠랑 세캉스(Plan Sequence, 한 신을 컷 없이 한 번에 찍는 것)로 해야 한다는 광기에 사로잡힐 수 있다. 괜찮다. 영화를 완성하기만 한다면, 극장 안에선 모든 사람이 기립박수를 칠 것이다.
영화 속에서만 아니라 세상에는 상식적이지 않거나 부조리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푸코(Michel Foucault)는 광기란 ‘속성’이 아니라, 규정되어진 것이고, 그 규정은 정치적인 행위로써 시대 속의 정치적 행위는 ‘기득권’의 레토릭이라고 했다.
광기가 예전에는 단순 속성이었다가, 지금은 ‘정신병’으로 규정 되어 진 것은 현재 광기는 정신병의 일환으로 담론화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970년대에는 ‘반공’이라는 담론을 정하고 이에 위반되면 죄로 규정짓던 시절이 있었다. 담론에 위반되면 어떠한 예술적 행위도 –단지 예술일 뿐이지만– 그 행위 자체를 규제받는 것이다.
담론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시대적 기득권 정치행위의 결과물이라는 푸코의 말이 생각난다.
1970년대에만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면, 지금의 규제되는 담론 자체가 얼마나 웃픈가.
영화 <거미집>은 예술가라고 하는 감독에게, 제작자에게, 배우에게, 권력가들에게, 지금의 현실에게 ‘거침없이 하이킥’을 제대로 한 방 먹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