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6(금)
 
  • ( No10 Op.69 no2 , B 150. op.pos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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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뉴스=경기도]이성아 기자=유튜브 뉴스

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 네 번째 시간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불리우는 폴란드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프레드리크 프랑수와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입니다.

폴란드인이 존경하는 폴란드 최고의 위인이기도 한 쇼팽은 1810년 3월 1일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 귀족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1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많은 천재 음악가들이 그렇듯 쇼팽 또한 아주 어릴 때부터 피아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7살 때 무려 두 곡의 폴포네이스(폴란드의 춤곡)를 작곡했을 정도였습니다.

1818년 공개 연주회에서는 아달베르트 기로베이츠(Adalbert Gyrowetz)의 협주곡을 연주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스승이었던 지브니는 쇼팽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면서 스스로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당시 폴란드 언론은 "천재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만 태어나는 줄 알았지만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천재가 태어났다."라고 극찬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1822년 바르샤바 음악원의 창설자인 유제프 엘스네르(Józef Antoni Franciszek Elsner)를 통해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우게 되었고 1825년 중학생 때는 러시아 황제 앞에서 연주를 하여 크게 칭송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1826년 음악원에 입학하여 피아노 소나타와 변주곡 등을 작곡하였고, 바르샤바 음악원을 졸업한 후, 1828년과 이듬해까지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면서 음악의 중심지인 빈으로 가서 피아니스트로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830년 쇼팽이 다시 빈을 방문하였을 때 그를 위한 고별 연주회에 그가 좋아했던 콘스탄 치아 그와트코프스카(Konstancja Gładkowska)가 찬조 출연했는데요, 사실 쇼팽이 빈에 유학을 간 이유는 그녀에게 고백하지 못하자 고민 끝에 그녀가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쇼팽의 곡 중 에튀드 3번 '이별의 곡'과 협주곡 1번과 2번은 사실 그녀를 위해 작곡한 곡이라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1830년 11월 쇼팽이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 중이었을 때 폴란드에서는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1831년 9월 빈을 떠나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하여, 러시아군에 의해 폴란드 혁명이 진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혁명에 큰 기대를 걸었던 쇼팽은 매우 실망을 했습니다.
사실 여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 혁명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작곡한 것이 《혁명 에튀드(작품 op.10 no12)》로 불리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1832년 그는 파리에서의 최초의 연주회를 개최하여 호평을 받았고, 그 뒤 폴란드 귀족의 소개로 파리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또 이 무렵부터 창작활동도 활발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1836년 드레스덴에서 바르샤바 시절의 여자친구인 마리아 보진스카를 다시 만나 이듬해에는 약혼으로까지 진전되었으나, 이때 쇼팽은 이미 폐결핵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의 반대도 많아 결국 파혼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마리아 다구 백작부인이 주최한 파티에 참석하여 당대 화제의 인물이었던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요, 그녀가 바로 쇼팽 필생의 여인, 여류문학가인 조르주 상드(1804~1876)였습니다.
상드는 당대에 성공한 소설가로서 문학계에서 상당히 뛰어난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또한 여성 인권 옹호자였고, 남장을 하고 살롱에 출입하며, 남편 외에도 많은 남자들과 염문을 벌인 여러 가지 일들로 화제가 되던 인물이었습니다.


보수적인 성향이 이었던 쇼팽은 그런 상드를 보고 처음에는 싫어했지만, 점점 그녀의 매력에 빠져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쇼팽보다 6세나 연상인 그녀는 쇼팽의 지병에 신경을 쓰며 모성애적 애정으로 그를 돌보아줌으로써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약 10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846년 가정불화와 쇼팽의 건강 악화로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됩니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두 사람의 관계는 상드의 일방적인 헌신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레슨으로 얻는 수익의 대부분이 상드와 그의 자식들에게 돌아갔고 반대로 정열적인 팜므파탈 상드가 순진한 쇼팽을 이용만 하다 차버린 듯한 이미지도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상드도 쇼팽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몸이 약한 쇼팽이 죽을 뻔했을 때 헌신적으로 간호해 살려놓기도 했고, 마요르카 섬에서는 피아노를 들여오고 보금자리를 마련하며 생필품을 구입하는 등 생활 일체를 상드 혼자 꾸려갔으며 그들 관계의 10년 중 7년은 쇼팽의 성적 불능과 병치레로 보냈다고 합니다.
실제로 상드를 몇 년 동안 제대로 본 적도 없던 쇼팽의 가족들마저 상드에게 쇼팽을 부탁할 정도였습니다.

그 후 쇼팽은 건강 상태는 악화일로를 거듭하였지만,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1848년 영국으로 건너가 연주회와 모임 등에서 피아노를 계속 연주하였습니다.


파리로 돌아온 쇼팽은 개인교습 말고는 일절 다른 연주 활동도 못할 만큼 중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가는 것도 힘들어했고 누군가 업어주지 않으면 2층으로 올라가지도 못했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면도와 옷매무새만큼은 단정히 했다고 합니다.

쇼팽은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에 자신의 첼로 소나타 도입부를 연주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채 다 듣기도 전에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연주를 중단시켰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두려워하던 것과 똑같이 살아 있는 채로 묻히는 것을 막아달라는 메모를 남겼으며, 자정 즈음 몸이 어떠냐는 의사의 질문에 "이제는 안 아파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결국 1849년 10월 17일, 쇼팽은 "어머니... 나의 어머니..."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은 2주 후인 10월 30일에 거행되었는데, 그가 바르샤바를 떠날 때 선물로 받은 폴란드의 흙이 그의 유해 위에 뿌려졌다고 합니다.


폴란드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자유롭고 시대를 앞서나가는 독자적인 양식으로 협주곡 2곡, 소나타 3곡 이외에 작품을 많이 남겼으며 특히, 약 200곡에 이르는 피아노곡으로 유명합니다.
피아노 페달의 사용에 의해 음색의 종류를 늘렸으며 약박(弱拍)을 약간 인접한 강박(强拍)에 접근시키는 연주법으로 후세의 피아노 연주법에도 큰 영향을 끼쳤던 프레드리크 프랑수와 쇼팽.

다음 시간에는 쇼팽의 음악적 특징과 평가 그리고 그의 작품과 업적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 네 번째 시간
첫 번째 준비한 곡은 수많은 쇼팽의 피아노곡 중,
왈츠 10번 op. 69 no.2


쇼팽 왈츠 중에서 꽤나 유명한 곡인 op.69 no.2는 1829년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쇼팽이 10대일 때 작곡된 1820년대의 왈츠 4곡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게 평가되는 곡입니다. 쇼팽의 왈츠는 흔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왈츠와는 멜로디가 좀 차이가 있는데요 이 곡은 쇼팽의 왈츠 특유의 애달프고 슬픈, 아련한 멜로디가 가장 잘 녹아있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슬라브 민족의 음악적 특징인 서글프고, 애처롭게 호소하는듯한 선율 속에 그들의 향토색이 깊게 서려있어 아마도 쇼팽의 왈츠가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을 됩니다.

왈츠 10번 B단조 작품 번호 69의 주요 주제는 B단조이며 모데라토의 전체 빠르기로 표시됩니다.
이 작품은 b단조 곡으로 이 곡은 밤에 들어야 좋은 것 같은 아름다운 멜로디를 가지고 있습니다.
포르테 (forte-세게) 뒤에 리타르단도 (ritardando-점점 느리게)가 나와주고 칼란도(calando-점점 약하게)가 나오고 끝이 납니다.
이 왈츠는 이전의왈츠인 op.69 no1보다 유명하며 낭만적인 멜로디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앞서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에서도 설명드렸던 론도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주 선율(A)은 아주 감상적인 반면 제2선율(B)은 D장조로 약간 밝고 트리오(C)는 B장조의 구성으로 반복됩니다.
A-B-A-C-A-B... A

두 번째 소개해 드릴 곡은 쇼팽의 왈츠 B.150(19) op.posth
이 곡은 1843~1848년에 쓰여진 곡이라고 추정되지만 쇼팽이 사망한 1849년 이후부터 1860년까지 드러나지 않다가 사후에 발표된 곡으로 영국의 음악학자모리스 브라운이 쇼팽의 작품 목록을 정리하여 출판된 곡입니다.곡명을 보면 앞부분 B는 Brown Index의 약자로 모리스 브라운이 작품 목록을 정리한 번호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생전의 출판한 작품은 작품 번호를 뜻하는 op. 뒤에 번호로 표기가 되지만 사후에 발견된 작품들은 op. posthumous (사후, 사후의) 줄임말인 posth로 표기되고 있습니다.
가단조 왈츠로 처음부터 끝까지 4분의 3박자를 유지하며 왈츠 속에서 단조-장조-단조를 오가며 연주합니다.
짧지만 강렬한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그리워하며 혹은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아련한 쇼팽의 왈츠,
함께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체댓글 1

  • 68340
민희

클래식으로가는 여행 가는여행
화이팅입니다
잔잔한 음악을 혼자듣기아까워 오늘도 누군가에게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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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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