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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 7편
    [GN뉴스=경기도]이성아 기자=유튜브 뉴스 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 일곱 번째 시간입니다.저번 시간에 이어 고전 낭만주의의 대표 음악가 요하네스 브람스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1850년 무렵 이미 리스트와 바그너가 주도하는 ‘신독일 악파’와 슈만이 대표하는 ‘보수 주의 악파’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브람스에 대한 슈만의 격찬은 ‘신독일 악파’쪽 음악가들에겐 마땅치 않은 반응을 얻고 있었지만 리스트는 브람스의 음악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그러나 브람스는 자의식적인 모더니스트들이라 생각했던 ‘신독일 악파’에게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이때부터 브람스는 ‘신독일 악파’와 ‘보수 주의 악파’의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고, 그의 인생에서 대부분의 혼란은 이러한 상황에서 비롯되게 됩니다.‘신독일 악파’ 그룹에는 영향력을 지닌 당대의 문장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슈만과 그의 지인이 창간하였으나 1845년 이후 ‘신독일 악파’ 추종자인 브렌델(F. Brendel)에게로 책임 편집자 자리가 넘어간 음악 신보(NeueZeitschrift für Musik)를 중심으로 해서 ‘신독일 악파’의 대외적인 창구로 삼아 리스트의 ‘교향시’와 바그너의 ‘음악극’을 적극 옹호하며, 그 밖의 음악 장르는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해버렸습니다. ‘신독일 악파’와 ‘보수 주의 악파’ 그룹의 대결은 두 가지의 국면을 갖습니다.첫 번째는 리스트와 ‘프로그램 음악’이 논쟁의 핵심에 서 있던 시기였고;두 번째는 리스트가 1861년에 바이마르에서 로마로 거주지를 옮기고 나서부터였습니다.이때부터는 바그너의 작품이 논쟁의 전면에 부상하게 되는데 이 논쟁은 1876년 브람스가 교향곡 1번을 작곡하여 대중 앞에 선보이면서, 교향곡이라는 장르와 교향악적 양식이 마치 새롭게 기초가 건설되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그러나 19세기 말에 이르러 이들 두 그룹의 싸움은 유야무야되었는데요 두 그룹에 속했던 음악가들과 이들을 지지하던 청중들이 상대방의 작품을 긍정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850년 슈만 부부와 첫 조우 이후 브람스는 점차 슈만의 가족들과도 가까워졌으며, 1854년 슈만이 처음 정신질환을 앓았을 때에는 클라라 슈만을 도와 슈만의 가정 사정을 살피게 됩니다.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그의 음악이 왜 비 오는 날이나 늦은 가을에 감상하기에 알맞은지, 왜 그토록 애절하고 우울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작곡가들은 수많은 러브스토리를 만들어 냈지만 특히 브람스처럼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평생 해바라기같이 한 여인을 바라보며 가슴 앓이를 한 작곡가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슈만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예술가로서의 압박감도 매우 크게 느끼고 있었으며 사교적이지도 못했습니다.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었고 그로 인해 정서적으로 피폐해지면서 이전부터 조금씩 엿보이던 우울증은 환청, 환각 등의 정신분열증 세로 악화되어 갔습니다. 정신병으로 자살한 13세 위의 누나와 슈만처럼 정신 병동에서 생을 마친 슈만의 차남을 유추해 보면, 그의 정신병은 외부 요인보다는 집안 내력으로 인한 유전적인 질병이 아니었나 하고 전해집니다.망상과 환청에 시달리며 심령술에 의지한 슈만은 결국 1853년 11월 뒤셀도르프 관현악단 지휘자 자리를 그만두게 되었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클라라 혼자서 버는 연주비와 레슨비로는 6명이나 되는 자녀들의 양육비와 슈만의 치료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이 무렵에 듬직한 젊은 독일 청년, 브람스가 추천장을 들고 그의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슈만은 브람스가 작곡한 곡에 감탄하면서 그의 평론지 ‘음악 신보’에 극찬을 하여 브람스를 음악계에 크게 알린 얼마 뒤 라인강에 투신을 하였지만 다행히 지나는 고깃배에 의해 목숨은 건질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짐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슈만은 자진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당시 클라라의 일기에는 ‘슈만의 음악을 연주하며 그의 숨결을 느꼈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온몸이 그의 음악 속에 녹아내리는 듯하다’라고 슈만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투신 소동 이후 여섯 아이의 엄마이자 임신부였던 클라라가 힘들게 생계를 꾸려가는 것을 본 브람스는 가족의 일원인 듯 슈만 가족을 성심성의껏 돌보았습니다.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꿈에 그리던 여성상이었고, 자신의 작품을 가장 완벽하게 해석하고 연주해 주는 거장이었습니다. 브람스는 어느새 사랑이 된 클라라에게 편지를 쓰게 됩니다.“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이란 단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사용해 당신을 불러보고 싶습니다.”그러나 클라라에게는 당장 슈만의 병원비와 갓 출산한 자녀를 포함해 7자녀의 양육 문제도 벅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주 기획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더 컸을 것입니다. 그의 일기에 나타나듯이 항상 슈만의 음악과 함께했기 때문에 외로움이나 정서적인 공허함도 느끼지 않았던 클라라는 브람스의 사랑을 완곡하게 거절하고 슈만의 아내로만 살기를 원했습니다.브람스는 슈만보다는 23세, 클라라보다는 14세 연하로 ‘연적’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어린 나이였습니다. 클라라에게 열렬한 사랑 편지를 보내고서 겨우 2년이 지난 1858년, 25세의 브람스는 괴팅겐 대학교수의 딸이자 명망가 출신의 아가테 폰 지볼테(1835~1909)와 약혼을 하게 됩니다.적극적으로 구애하던 브람스는 성악을 공부하던 아가테를 위해 ‘8개의 노래와 로맨스-작품 번호 14’와 ‘5개의 시-작품 번호 19’를 작곡하기까지 하지만 결혼 일정을 잡아야 하는 시기에 이르자 브람스는 사랑은 하지만 속박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돌연 파혼을 선언합니다.갑자기 파혼을 당한 아가테는 심한 충격에 빠져 10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결혼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후 브람스는 클라라의 셋째 딸인 율리와 사랑에 빠지지만, 1869년 율리는 이탈리아의 마름모 리트 백작과 결혼을 했고, 브람스는 이 황량한 마음을 담아 ‘알토 랩소디’를 작곡합니다.일부에선 클라라가 브람스와 율리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가족을 위해 헌신한 클라라가 둘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갑자기 파혼을 선언할 정도로 구속당하기 싫어하는 성향의 남자를, 더구나 이전 연주여행 동안 수많은 남자 음악가의 자유연애 행각을 접한 클라라가 딸의 평생 배필로 브람스를 인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곱 아이의 양육비와 투병생활 끝에 사망한 남편을 떠올리면 클라라에게 작곡가 사위는 달갑지 않았을 것이었습니다.클라라는 슈만이 정신병원에서 사망한 1856년부터 40년 동안 슈만 부인으로 남아 슈만과 브람스의 작품을 연주하면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음악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그녀의 연주에 단골 레퍼토리가 된다는 것은 브람스에게는 대단한 영광이었을 것입니다.클라라가 위독하다는 비보를 접하고 40시간 동안 달려왔지만 결국 임종을 지키지 못한 브람스는 그의 죽음을 누구보다 비통해했고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었고 가장 위대했던 가치였으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잃어버렸다”라며 탄식했다고 합니다.클라라는 77년 생애 중 16년의 결혼생활 동안 슈만을 사랑했고, 43년간 브람스와 만나면서 그들은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 되었다. 브람스의 음악은 독일 음악의 전통을 존중하며 견고한 구성감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주의적인 단순한 것이 아니라, 매우 풍부하고 다양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어쩌면 브람스의 음악은 클라파로 인해 만들어진 클라라가 남긴 유품일 수도 있겠습니다.1857~60년 브람스는 데트몰트 궁정과 괴팅겐 궁정 사이를 옮겨 다니며 피아노를 가르치고 합창단을 지휘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1859년에는 함부르크에 있는 여성합창단의 지휘자로도 임명이 되게 됩니다.그러한 직책들은 그에게 유용한 실제 경험을 제공했으며, 자신에게도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었습니다.정서적 갈등이 어느 정도 해결되자, 그의 창작은 날로 활발해져 갔습니다.1861년경 함부르크로 돌아간 그는 다음 해에 빈을 처음 방문하여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1863년 빈에 정착하여 아마추어 합창단 체인 '징아카데미'(Singakademie)의 감독이 되었고 그곳에서의 생활은 연주회의 성공과 실패 사이의 기복, 자신의 급한 성격으로 인한 언쟁, 그의 지지자와 바그너·브루크너 지지자 사이의 극심한 대립, 그리고 이루지 못한 1~2건의 연애사건 등의 소란을 제외한다면 전반적으로 평이하고 조용한 것이었습니다.몇 번의 실패와 바그너 주의자들의 지속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은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으며 그의 명성 또한 점점 높아져갔습니다. 빈에서 두 가지 직책을 가지고 있는 동안 브람스의 작품은 전성기를 맞았으며 그의 가장 중요한 몇몇 작품들이 이때 작곡되었습니다.1868년에는 그의 가장 유명한 합창 작품인 독일 진혼곡(Ein Deutsches Requiem)이 완성되었는데, 브레멘에서 이 작품이 초연되었을 당시, 청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 후 독일 전역에서 연주되게 됩니다.지금도 19세기 합창음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의 하나로 간주되는 이 작품으로 브람스는 독일 작곡가들 중 선봉에 있습니다.1872년경 그는 '음악동호인 협회'의 총지휘자가 되었으며 3시즌 동안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었습니다.그가 선택한 곡목들은 기대했던 것만큼 보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지휘했던 작품 가운데는 베를리오즈의 이탈리아의 아롤드(Harold en Italie)가 포함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비록 '브람스 주의자'들은 바그너에 대한 그들의 투쟁을 계속했지만 브람스 자신은 항상 그의 경쟁자에 대해 경의를 표했습니다.다음 시간도 브람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텐데요, 다양한 그의 작품세계와 후세의 평가 그리고 말년의 브람스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이번 시간에 들려드릴 곡은Brahms /String Sextet Op18 ll. Andante ma moderato브람스 현악 6중주 1번 2악장으로 일명 <브람스의 눈물>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곡입니다.이 곡은 '라 폴리아 ' 변주라고도 하는데 브람스가 평생을 사랑했던 스승 슈만의 부인'클라라'를 향한 사랑과 애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곡입니다.브람스 음악의 본바탕은 실내악에 잘 나타나 있는데 모두 24곡으로 그는 화려하고 크게 장식적인 것을 피했습니다. 브람스는 기본적인 현악 4중주에다 다시금 비올라와 첼로를 첨가시켜 현악 6중주를작곡했는데 <1>번은 1859년 가을부터 다음 해 여름에 걸쳐 작곡했으며, 전원적이고 밝은 기운으로 가득한 명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현악 6중주는 단 2곡으로 1번은 그의 생애를 통해 가장 행복하고 큰 성과를 이루고 있을 시기의 작품이며 따라서 즐겁고 행복하며 젊고 정열이 넘쳐흐르고 있습니다.그중 2악장은 진지하고 무거운 남자가 눈물을 흘리듯 굵고 묵직한 선율이 흘러나옵니다.아울러 신성하고 색채가 풍부하며 음향적인 데다가 단순하고 민요풍의 선율이 풍성합니다. 브람스는 2악장을 피아노 3중주곡으로 편곡한 후, 클라라의 41번째 생일에 선물로 준 것으로 유명합니다.슈만이 세상을 떠난 뒤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사랑의 감정을 넘어 평생을 두고 좋은 스승이며, 친구이며, 조언자로써 남았습니다.그런 젊은 시절의 사랑을 평생 가슴에 묻고 지낸 그이기에 브람스의 음악은 남자의 마음을 잘 대변하는 음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브람스의 눈물'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듣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브람스의 현악 6중주 1번 2악장... 함께 감상해 보겠습니다. [신동아 2012년 6월 호 클라라가 사랑한 슈만, 클라라를 사랑한 브람스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신독일악파와 보수주의의 대립 (서양음악사 100장면, 2002. 7. 20., 박을미, 김용환) 참고.
    • 문화/예술/스포츠
    2023-01-27
  • 2022년 대종상 영화제에서 배우 안성기가 공로상을 수상
    [GN뉴스=경기도]이성아 기자=유투브 뉴스 2022년 대종상 영화제에서 배우 안성기가 공로상을 수상하였다.안성기는 2022년 12월 9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새 천년홀에서 진행된 제58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되었다.혈액 암으로 투병 중에 있는 그는 이날 영상으로 수상소감을 대신하였다.안성기는 “올해 수상자 여러분께 축하를 드린다. 그리고 우리 영화인 여러분과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항상 감사드리지만 오늘 특별히 사랑하는 마음과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린다"라고 소감을 전했다.또한 “오래오래 영화배우로 살면서 늙지 않을 줄 알았고 또 나이를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최근 들어 시간과 나이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그는 이어 “지금 우리 영화와 영화인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라며 “그 영광의 뿌리는 우리 선배 영화인들이 심고 키운 것이고, 또 지금의 우리 탁월한 영화인들의 역량과 땀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우리 영화와 영화인들의 발전을 기원하면서 대종상 행사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라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제 건강 너무 걱정들 많이 해주시는데, 아주 좋아지고 있고 또 새로운 영화로 여러분들을 뵙도록 하겠다"라고 덧붙였다.대종상 영화제는 한국 영화인 총연합회가 주최하며 1962년 1회를 시작으로 지난해 57회 시상식은 코로나19로 인해 개최되지 못하고 올해 58회를 맞이했다.
    • 문화/예술/스포츠
    2023-01-11
  • 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 3편
    [GN뉴스]이성아 기자=유투브뉴스 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 세 번째 시간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아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리는 역사상 최고로 손꼽히는 19세기 바이올리니스트의 상징이기도 한 니콜로 파가니니입니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비올라, 클래식기타 연주자, 작곡가 그리고 지휘자이기도 합니다. 비루투오소의 시대를 연 최초의 연주자이며 후대 낭만주의 작곡가들인 프란츠 리스트, 로베르트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 등도 파가니니에게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니콜로 파가니니는 1782년 10월 27일,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에게 음악의 기초를 배웠고, 스승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 한지 몇 개월 만에 스승을 능가하는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파가니니의 재능을 눈치챈 그의 아버지는 베토벤의 아버지처럼 파가니니를 하루에 10시간씩 혹독하게 연습을 시켰다고 합니다. 여덟 살 무렵 바이올린소나타를 작곡했는데요 본인이 써놓고도 어려워 연주를 못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아홉 살 때에는 공개 무대에서 자작의 캄파넬라 변주곡을 연주할 만큼의 실력이었습니다. 1799년 북이탈리아지방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젊은 나이에 부와 명성을 쌓았으나 너무 빠른 성공에 도취되어 방탕한 생활과 도박에 빠졌고 결국 건강을 헤치게 되고 거액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가 아끼던 명품 바이올린 과르넬리까지 팔아야 했습니다. 1808년 스믈여섯살이 되던 해부터 1828년 46세까지 20년간에 걸쳐 밀라노,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각지를 여행하며 이전 바이올린 개념을 훨씬 넘어서는 천재적 재능을 뽐내며 청중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 명성은 이탈리아 이외의 각지로 퍼져나가며 파가니니의 이름은 온 유럽 음악 애호가들의 입에 존경하는 마음으로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 파가니니의 이름을 팔아 파가니니스타일의 양복 모자 장갑등이 유행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1828년 이후 빈 · 베를린 · 런던 · 파리 등지를 여행하며, 그 천재다운 솜씨로 유럽 일대를 사로 잡았고 그 인기로 많은 재산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신예 작곡가로 주목을 끈 베를로오즈와의 인연으로 그가 빈궁하다는 것을 알자 많은 액수의 돈을 보내어 연주회의 적자를 메우게 하는 등 자비의 소유자이기도 했는데요, 베를로오즈와 만날 무렵부터 파가니니는 건강이 악화되어 연주 활동이 뜸해졌으며 1840년 5월 27일 인후 결핵으로 남프랑스의 니스에서 57세의 나이에 사망하게 됩니다. 후손은 외아들 아킬레 파가니니(1825~1895)가 있었으며 그의 곁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연주는 기교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매력이 있어서 그를 좋지 않게 보던 사람들도 그의 연주를 듣고 난 후에는 열렬한 팬이 되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의 여동생인 엘리자 보나파르트는 그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기절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관객들이 집단으로 히스테리를 일으킨 적도 있다고 하니 파가니니가 말년에 루머에 시달린 데에는 기교도 기교지만 이 점이 크게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밤에만 나타나야 할 유령들도 그가 연주만 하면 나와서 감탄하고 춤추거나 울었다는 이야기도 나왔고, 심지어 악마도 감격해 울거나 춤추었다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였습니다. 1832년 직접 파가니니의 연주를 들어본 리스트는 너무나도 감격하여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는 기록을 남겼다고 합니다. 또한 리스트 본인은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든지, 아니면 미치광이가 되겠다라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소나타 21개 · 카프리치오 24개 · 4 중주곡 3개 · 협주곡 2개 등 많은 명곡이 남아 있는데요, 특히 그중의 카푸리치오는 가장 애주 되고 있는 명곡입니다. 이처럼 리스트, 브람스, 망고레 등 수많은 거장들에게 영향을 줬을 뿐만 아니라 듣는 이를 놀라 쓰러지게 만들 만한, 기교로 바이올린 분야에서 피에트로 로카텔리 이후 참 오랜만에 나타난 희대의 천재였습니다. 전 유럽 여성들의 마음을 거머쥔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묘한 외모와 화려한 연주 기교로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을 멎게 만들었던 니콜로 파가니니. 사후 4년 뒤인 1844년에야 그의 시신은 니스를 떠나 제노바로 돌아갔지만, 역시 교회 측의 반대로 인해 묘지에 묻히지 못하고 사후 36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대지의 품속에서 안식을 얻었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합니다. 파가니니의 묘비명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여기에 니콜로 파가니니 유해가 잠들다. 온 유럽에 영감을 준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그는 자신의 거룩한 음악과 최고의 재능에 의해 전례 없는 위대한 명성을 이탈리아에 가져다주었노라. 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 세 번째 곡은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 이탈리아어로 작은 종이라는 뜻의 이 작품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b단조의 3악장입니다. 마지막 론도 악장의 주제를 기반으로 프란츠 리스트가 1838년 작곡하고 1851년에 개정한 바 있는 파가니니에 의한 대연습곡 가운데 3번입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작곡한 거라는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 리스트가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해 더 유명해졌고 리스트를 매료시켰을 정도로 강렬하고 매혹적인 곡입니다. k-pop가수 블랙핑크가 셧다운(shut down)이란 곡의 도입부에 샘플링해 빌보드 메인 차트와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었지요 그 밖에도 1996년 개봉한 영화 샤인에서도 두 번 등장을 했고 1993년 개봉한 영화 더크러쉬에서 대리언이 이 곡을 연주했습니다. 이곡은 광고에도 자주 등장하는데요 대표적으로 캐논익서스 광고에도 쓰여졌습니다 이외에도 각족 게임과 tv 드라마에서도 쓰이고 있습니다. 바이올린 협주곡인 만큼 바이올린 솔리스트가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연주합니다. 론도형식의 곡으로 도입부의 선율이 반복되면서 머릿속에 오래 남게 됩니다. 주제 선율이 바이올린에 의해 제시되고, 이어 관현악이 이를 반복하면서 시작합니다. 곡이 진행되는 동안 새로운 멜로디가 나타나지만 주 멜로디도 부분적으로 다시 나오고, 왼손 피치카토, 더블 스토핑 등 바이올린의 기교가 숨 가쁘게 펼쳐진 후 짧은 코다로 끝을 맺습니다.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들의 한 해가 빛나시길 기원드리면서 앞으로도 gn네트워크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문화/예술/스포츠
    2023-01-01
  • [기자수첩] 참 따뜻한 사람 백영현 포천시장
    [GN뉴스=포천]양상현 기자="백영현 시장은 참 따뜻한 사람이에요. 평생을 야당 인사로 살아온 노인네에게 차별도 없이 물 건너 연탄과 라면까지 손수 들고 오시고 너무 고맙죠" 김유근 더불어민주당 포천·가평지역위원회 고문은 눈물을 글썽였다.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그는 지난 90년대부터 민주당 계열 소속 인사로 활동하며 수차례 총선에 출마했다. 지역에서는 나름 수십억대 부자였지만, 계속된 낙마로 그 많던 재산을 거의 다 탕진하고 지금은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는 독거노인이다. 돌이켜보면 해방 이후, 지난 74년간 정치역사에서 포천에서는 단 2년간만 민주당 계열인사가 국회의원을 한 셈이다. 포천지역에서는 연말연시를 맞아 어려운 이웃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려는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으로 취약계층은 이번 겨울이 더 힘겨울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지난 10일 토요일 오전, 포천시 공직자 희망나눔봉사동아리(이하 포희나리, 회장 유성식)와 전국경제인총연합회(회장 이진현, 삼보물류그룹 회장), 김점숙 전경련여성회장과 포천시청 직원들은 관내 사례관리 대상 4개 가정에 총 2,000장의 연탄을 전달했다. 이번 봉사는 동절기를 맞아 소외계층에 연탄을 지원하고, 주거환경 정비와 생필품을 지원하는 등 작지만 훈훈한 온기를 전하기 위해 마련됐는데, 독거노인이 거주하는 각 가정에 연탄 500장을 직접 배달하고, 쌀과 라면, 담요 등 생필품을 지원하며 따뜻한 마음을 전했다. 특히, 이날 연탄 전달에는 백영현 포천시장을 비롯해 윤충식 경기도의회 의원, 포천시청 공무원 등 40여 명이 참여했는데, 포천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지역이었다. 산 넘고 물 건너 가야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봉사단원들이 찾아간 곳은 김 고문이 혼자 사는 컨테이너 집. 바닥에는 냉기가 돌았다. 유일한 난방시설은 연탄보일러. 하루에 단 3장으로 방 한 칸을 데우고, 더운물을 만들어 세수를 하고 설거지를 한다. 연탄값도 심상치 않았다. 2019년 800원에서 올해 1000원으로 3년 사이 40%나 올랐다. 강 건너 언덕길로 이어진 김 고문의 집엔 차량이 들어갈 수 없어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연탄을 날라야 했다. 배달료가 추가되면 연탄 한 장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이제 12월, 1월과 2월... 남은 겨울은 연탄 몇 장으로 나야 하나. 김 고문의 한숨이 깊었다. 백 시장은 이날 맨 앞자락에 배치돼 연탄을 날랐다. 가파른 언덕길로 자리를 옮긴 단원들은 곧 일렬로 늘어섰다. 연탄을 실은 트럭이 강을 건널 수 없어 인간 띠를 만든 것. 고무장갑을 끼고 백 시장이 트럭에서 연탄을 내리고, 다음 단원이 연탄을 전달해 인간띠 사이로 시커먼 연탄이 오갔다. 한 장당 4.5kg 내외인 19공탄 연탄이 무거울 법도 했지만 누구 하나 내색하는 이는 없었다. 이들은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해 추운 날씨에도 연탄을 들고 언덕길을 누비며 구슬땀을 흘렸다. 연탄 자국과 땀범벅이 된 봉사단원들의 얼굴에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즐거움으로 웃음이 가득했다. 백영현 시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그저 노력봉사를 했다"면서 "날씨는 추웠지만만 기업인들과 직원들의 따뜻한 마음이 연탄과 함께 전달되었길 바란다"면서 "작은 나눔이 어려운 이웃들의 훈훈한 겨울나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포천시는 앞으로도 소외된 분들을 위한 더 큰 포천 더 큰 행복 더 따뜻한 나눔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백 시장은 김 고문을 찾은 이유에 대해 "사례관리 대상이었기 때문이라며, 정치적 고려는 일절 없었다"고 했다. 또 "김 고문이 연세도 많아, 집에 돌아가는 길이 위험하다"면서 "난간 설치 등 진입로 정비도 해야 한다"고 했다. 포천시 공무원 희망나눔봉사동아리와 전경련여성회 한마음 봉사단에서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나눔 활동을 실천하기 위해 매달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실천력은 코로나로 비롯된 팬데믹 위기 상황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데 있어서 우리 포천시민들이 꼭 필요로 하는 리더의 자질이다. 백 시장은 자신의 말을 실행에 옮기고, 결과를 만들어 내는 성과형, 실천형 정치인이다. 가장 그늘지고 추운 곳에서 살고 있는 독거노인들에게 온기를 전해주는 연탄과도 같은 사람이다. 다이아몬드와 연탄의 재료가 같은 탄소인 것처럼 어떤 환경에 노출이 되냐에 따라서 다이아몬드가 될 수도 있고 사람들의 발에 치이는 연탄재가 될 수도 있다. 다양한 환경, 어려운 환경을 통해서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해지고 또 포천을 빛낼 것이기에 함부로 차서는 안된다. 독거노인들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했던 적이 없었던 포천사회에 연탄이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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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14
  • 도, 장기방치 건축물 철거 등 하반기 고충민원 해결 우수공무원 6명 선정
    [GN뉴스=경기도]양상현 기자=경기도는 공사중단 장기방치 건축물 철거로 고충민원을 해결한 공무원 등 2022년 하반기 고충민원 해결 우수공무원 6명을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고충민원 해결 우수공무원 선정은 도민 입장에서 고충민원을 해결하는 행정 분위기를 조성하고 적극적인 업무 추진을 독려하기 위해 2015년 처음 도입됐으며, 매년 상·하반기 2회 우수공무원을 선정하고 있다. 도는 부서에서 추천받은 고충민원 사례를 대상으로 1차 실무부서 심사와 당연직으로 구성된 2차 평가위원회를 거쳐 ▲건축디자인과 홍일영 팀장 ▲하천과 김희수 주무관 ▲도로건설과 지완진 주무관 ▲도로정책과 고경덕 주무관 ▲철도건설과 표명규 팀장 ▲공동주택과 이미옥 주무관 6명을 고충민원 해결 우수공무원으로 선정했다. 이들에게는 인사위원회를 거쳐 최고 1.5점에서 0.5점까지 인사가점이 부여된다. 이번 평가에서는 24년째 장기 미해결 과제였던 공사중단 방치건축물을 철거하고 공사를 재개토록 한 건축디자인과 홍일영 팀장이 최우수 사례로 선정됐다. 안양역 앞 번화가에 신축 중이던 건축물이 소송 등으로 1998년부터 공사가 중단돼 방치되고 있어 도시미관을 저해하고 각종 안전사고 우려 등 민원이 제기돼 왔다. 경기도는 공사중단 건축물의 정상 추진을 위해 국회, 안양시, 건축관계자 등과 지속적으로 협의한 결과 해당 건축물을 철거하고 타 용도의 건축물을 신축하는 것으로 합의를 도출했다. 이와 함께 남양주시 구운천에서 매년 홍수 범람 피해가 반복되고 있지만 지역주민 간 이해관계가 상충 돼 13년 이상 정비를 하지 못한 일을 해결한 사례(하천과 김희수)도 있었다. 도는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고 환경부 협의와 공청회, 주민설명회 등 충분한 주민 의견 수렴으로 절충안을 마련해 하천정비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합의를 이끌어냈다. 최은순 경기도 감사관은 “도민의 고충사항에 공감하며 적극적으로 민원 해결에 앞장서는 적극 행정 공무원들을 계속 선발해 우수 사례가 계속 나오도록 지원하고 격려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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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09
  • 장애·비장애 모두를 위한 체육의 시작
    [GN뉴스=포천]양상현 기자=운동은 중요하다. 신체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여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포천시 창수면에 장애인들의 체력을 측정하여 맞춤 운동 처방을 하는 곳이 생겼다. 경기도장애인체력인증센터 포천센터(센터장 이한수)다. 경기도장애인체력인증센터 포천센터(이하, 센터)는 지난 8월 말 개관했다. 경기도에서는 고양시와 광주시에 이어 세 번째다. 직원은 총 5명, 다각도로 체력을 측정하여 적합한 운동처방을 제공하는 전문가들이다. 김준식 운동처방사는 “운동은 건강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개개인의 체력 상태를 고려하지 않으면 자칫 독이 될 수 있다”라면서 “요즘은 체육관 등에서 체력측정 및 맞춤 운동지도를 하는 곳이 많이 있지만, 장애인의 경우 상대적으로 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적다. 센터는 장애 유형별로 체력검사를 수행하고 특성에 적합한 체력증진 운동처방을 제공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장애인 체력인증센터인 만큼 센터는 여러 종류의 장애에 대응 가능한 신체측정도구를 구비했다. 가장 만족도가 높은 것은 S10이라는 신체구성 측정장비다. 피검사자가 맨발로 기구에 올라서서 손잡이를 잡아야 측정할 수 있는 일반기기와 달리 S10으로는 누운 채로도 검사가 가능해 휠체어 장애인 등 지체장애인도 불편함 없이 체성분 측정 및 영양진단을 받을 수 있다. 센터는 찾아가는 체력측정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장애 정도가 심해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서다. 센터 이용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개소 첫 달 50명 남짓이었던 이용자가 다음 달에는 117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얼마 전부터는 체력측정을 받은 분들을 대상으로 체력증진교실을 열었다. 개개인의 장애상태와 컨디션에 맞추어 체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지도·관리하는 프로그램이다. 참여자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다. 장애인들의 건강관리를 돕는 일은 뿌듯하고 보람된 일이지만 돌발 상황도 종종 발생하곤 한다. 체력 측정 중 무섭다며 박차고 나간 분을 따라가 설득해야 했던 일도 있었고, 중복장애를 가진 분과 의사소통이 어려워 진땀을 흘린 적도 있었다. 김준식 운동처방사는 “업무 중 발생하는 어려운 점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직원들끼리 공부도 계속하고 있다.”면서 “우리 센터를 통해 포천을 포함한 경기북부지역 모든 장애인분들이 체력관리를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라며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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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9

실시간 인물 기사

  • “가평군 인권의 첫걸음” 가평군 인권센터 발대식
    [GN뉴스=가평군]조중휘 시민기자=누구나 사람으로서 천부인권설에 근거하여 기본권을 침해받지 않고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삶의 터전이 되는 지역사회는 인권이 침해받지 않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지역사회의 환경은 정말 중요하다. 이처럼 가평군 또한 한 사람의 인권도 침해받지 않는 환경을 제공하는 지역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이에 책임을 느낀 가평군 인권센터 김경태 센터장은 가평군이 인권 보장되고 성 평등이 실현되는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 한 발짝 더 전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의 인식개선과 발전은 지역민 모두의 동참과 실천으로 변화를 촉구할 수 있다.그 변화의 첫걸음으로써 오는 2023년 7월 8일(토요일) 오전 10시 가평문화원 3층 다목적 강당에서 가평군 인권센터 발대식을 진행할 예정이다.차별 없는 사회, 사회적 약자도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하여서 가평군 지역민 모두의 참여가 절실하다. 인권이 바로 서는 가평군, 행복한 지역사회로서의 첫 출발을 함께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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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29
  • 가평 로타리클럽 45대. 46대 회장 이·취임식
    [GN뉴스=가평군]이성아 기자=24일 오후 3시 가평읍에 위치한 벨리 웨딩홀에서 가평 로타리클럽 45대 회장(한광익) 이임식과 46대 회장(조상현) 취임식이 진행되었다.이 자리에서 서태원 가평 군수는 지역의 대표적인 봉사조직으로 지역 발전에 이바지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줄 것을 당부하며 격려와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가평 로타리클럽은 1979년 5월 8일 창립하여 현재 65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지역 발전을 위해 봉사와 이웃사랑을 실천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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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24
  • 인추협, 상면초등학교 조연옥선생님 올해의 스승으로 선정
    [GN뉴스=가평군]이성아 기자=인추협(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에서는 오늘날 발전된 우리 사회가 있기까지 교육에 헌신하신 선생님들을 공경, 존중하는 사회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서 매년 스승의 날인 5월 15일에 올해의 스승을 선정하여 발표해 왔다. 인추협은 2013년 올해의 스승으로 사랑의 일기 지도 교사인 조연옥(경기도 가평군 상면초등학교 교사) 선생님을 선정하고 15일 10시 30분에 인추협 고진광 이사장과 임동윤 운영위원이 상면초등학교로 찾아가 참스승 선정패를 전달하고 축하한다. 사진 좌측부터 고진광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이사장 조연옥선생님 홍정표 교장 조연옥 선생님은 가평군 설악면 천안리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경기도의 성남, 서울 등지에서 27년 동안 초등교사로 재직하였다. 학도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하시고 가평재향군인회 회장을 역임하셨던 고 조원흥 호국영웅님의 따님으로 가족보다는 남을 위한 봉사와 희생, 나라를 위해 평생을 사셨던 아버님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투철한 교육자의 사명감과 고향인 가평군의 후진 양성을 위해 올해부터 상면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조연옥 선생님은 '삶이 있는 교육과정'을 기획하시고 다양한 일기쓰기 지도 실천을 통해 어린이들의 인성 함양과 자신들의 삶을 표현하는 글쓰기 교육에 노력하였다. 일기쓰기 지도 활성화를 위해 6학년 멘토 교사제를 통한 후배 교사 양성에 힘쓰고 다양한 일기쓰기 주제 개발에 참여하였으며 교육과정 발표회 사례발표를 통해 학급 운영 방법을 소개하고 일기쓰기 운동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2014년 이후 사랑의 일기 보급과 일기 쓰기 지도에 노력하여 지도한 어린이들이 ‘사랑의 일기 큰잔치’에서 다수 입상하고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였다. 또한 자치회, 동아리 활동 지도를 통해 월별 프로젝트 활동에 주력하였다. 3월 <100년의 무게를 우리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독립선언문 필사릴레이, 4월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주제일기쓰기, 5월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감사편지 쓰고 보내기, 6월 나라사랑 프로젝트 활동 (애국가 협동화 제작, 남북분단 체험)을 통한 통일, 환경,인성교육에 힘써 왔다. 특히 2017년에는 세종 사랑의 일기 연수원 방문하여 매몰 일기장 발굴에 동참하고 사랑의 일기 연수원 살리기 활동에 함께 했다. 2019년 사랑의 일기 범국민선포식을 통해 사랑의 일기장을 배부하고 "사랑의 일기 가족 안전 한마당 세계 대회”에 참가, 어린이들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하여 어린이들의 인성 함양을 위해 노력하였다. 2022년 인추협에서 사랑의 일기 지도교사를 대상으로 진행된 사랑의 일기 지도 강사 양성과정의 기본 및 심화 지도 강사로 활동하였고 2023년에는 사랑의 일기장 개발 연구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인추협은 설립한지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하였으며 사랑의 일기 운동을 통해 인성교육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학부모운동으로 확산돼 우리나라 교육운동에 이바지하였으며 사회지도층과 청소년, 그리고 어르신이 한자리에 어우러지며 세대공감을 이루는 사회통합을 위한 세대공감 운동을 펼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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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5
  • "설악면 허브 역할을 위해 설악마을공동체가 달려간다."
    설악마을공동체 김경태 대표 [GN뉴스=가평군]김가영 기자=김경태 대표는 설악마을공동체를 2016년 7월27일 창립했다. 설악마을공동체의 김경태 대표는 지역 봉사를 통해 경기도지사상, 경찰청장감사장과 지역봉사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김대표는 올해 목표와 포부 의지를 견고히 했다. Q 올해 활동 계획중인 행사가 있나요? A 설악마을공동체는 올해 새롭게 추진하는 마을의 깨끗한 환경을 위해 가족봉사단을 모집할 것이다. 가족봉사단은 설악면의 환경 보호에 도움을 줄 수 있고 가족이 봉사를 한다는 점에서 사회 공헌을 하고, 지역 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갈 것이다. 또 각 가족간의 관계를 형성해가는 인적 네트워크 구축에도 큰 도움울 줄 수 있다. 지역과 사회적 배려자 가정뿐 아니라 ‘횡성군 (사)함께하는 누리’, ‘화성시 마을인문학’, ‘광명시지속발전가능협의회’와 업무 협약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리고 다른 여러 지역과도 다양한 협약식을 하면서 지역간의 허브 역할도 꾸준히 할 것이다. Q 설악마을공동체의 장점이 있다면 뭐가 있나요? 마을의 허브 역할처럼 지역 사회에 도움이 필요한 다문화 가정에 딱 알맞게 도움을 주고 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격려해주며 지역과 다문화 개인, 나아가 가정을 연결해주는 허브 역할로 최선을 다하는 점이 강점이다. 그리고 설악마을 공동체의 지역 주거환경개선사업의 일환인 ‘부엉이 마을벽화 그리기’를 계속적으로 이어서 진행 할 것이고, 올해 부엉이 플리마켓을 개최할 사업도 구상중이다. Q 특별히 부엉이를 모티브로 사업을 하는 이유가 있나요? 세계적인 부엉이작가이신 김규태 화백과 설악에서 우연히 만났고 부엉이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지혜, 재물 그리고 가정의 화목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좋은 의미가 지역에 많이 확산 되길 바라면서 ‘어린이사생대회’ 및 ‘마을 벽화 그리기’등 다양한 활동에 부엉이를 테마로 적용했다. 김경태 대표를 중심한 설악마을공동체는 지역의 여러 민간단체와 지역간의 화합의 상징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2023-02-24
  • [기고문]세상은 왜 불공평할까?
    작가 rawpixel.com출처 Freepik [GN뉴스=경기도]청연=기고문 세상은 왜 불공평할까? 사마천은 ‘사기’에서 ‘인간의 삶에서 ‘도척’같은 사람은 포악한 짓을 저지르고 천하를 어지럽혔는데도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 남에게 나쁜 짓만 하고 죽을 때까지 호의호식하며 자손에게까지 이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에 반해 갈 만한 곳을 조심조심 골라서 가고, 말 한마디도 때를 가려서 하며, 길을 갈 때도 지름길을 찾지 않고, 공명정대한 일이 아니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재앙을 만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늘이 낸 도리라는 ‘天道’가 있다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 것인가 하며’ 세상에 불공평함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불공평하다 느끼는 것이 어떤 것이 있는가 생각해 보면, 같은 조건에서 시작하지 않는 것,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 주위 환경과 사람 그리고 運 등이 있다. 하지만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가진 자나 없는 자나 똑같이 느낀다. 차이가 있다면 그 정도와 개별적 성격에 의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가진 자도 자신 보다 많이 가진 사람을 보고 불공평하다고 주장한다. 없는 자는 아예 쉽게 체념하거나 잘못되었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거나 비난을 한다. 이렇듯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마 노력한 만큼 얻지 못해 그런 감정이 생길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불공평하다는 느낌은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다. 남과 비교하면서 불공평 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그런 감정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열 가지를 비교하면 차이가 많이 나지만 백 가지를 비교하면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비교하다 보면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교육, 학벌, 재산, 환경, 외모, 사람, 부모 등 사람들이 행복의 기준으로 삼는 것을 비교하면 차이가 많이 나고 극복할 수 없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관점을 전환해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 돈이 많은 부모가 아닌 사랑이 가득한 부모, 부유한 배우자가 아닌 사랑스런 남편이나 아내, 머리가 비상한 아이들이 아닌 건강하게 잘 자라는 아이들, 상속할만한 재산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병으로 고생하지 않으시는 건강한 부모님, 경제적 여유는 없지만 서로를 위해 주는 형제들, 수는 적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 큰 돈벌이는 되지 않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자리 등... 생각하기에 따라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줄일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아도 그 속에도 결핍이 존재할 수 있고, 가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계급사회가 해체되면서 자신이 노력하면 얼마든지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계급이 다시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영역들이 생기고 있다. 이제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고,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주어진 환경이 나쁘면 한계가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가진 자는 더 가지고, 없는 자는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불공평한 세상을 비난하고만 살 수는 없다. 불공평한 세상이지만 주어지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러한 시간이 불공평을 줄여주는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인생 전체를 보면 공평할 수 있다.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재산, 학식, 능력, 사람 관계 등으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세상이 불공평하다 생각하거나 탓하지 말고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부유하게 살았다 해서 잘 살았다 할 수 없고, 부러워할 만한 명예나 권력을 가졌다 해서 반드시 행복하다 할 수는 없다. 어쩌면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한 불공평은 없앨 수는 없다. 다만 사람들의 노력과 개인적인 마음가짐으로 불공평한 정도를 줄일 수는 있다. 인생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불공평은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도,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는 인생을 사는 것도, 개개인의 특성이 다르기에 정답은 있을 수 없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면 된다.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남과 다른 환경에 태어났어도 자신에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면 평범하게 될 수 있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푸념만 하고 있다면 그런 세상에 살아야겠지만,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불공평을 줄일 수는 있다. 결국 인생의 차이는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와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 문학
    2023-02-23
  • 의정부과학도서관, ‘경성 기억 극장’ 최연숙 저자 강연회 개최
    - 역사를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를 이야기하는 최연숙 작가 - 대표작: 「경성 기억 극장」, 「경성 고양이 탐정 독고묭」 등 - 운영일시: 2023. 3. 11.(토) 14시 - 대 상: 초등 4~6학년, 20명 - 2023. 3. 2.(목) 오전 10시부터 의정부과학도서관 홈페이지 선착순 접수 [GN뉴스=의정부시]이성아 기자= 「경성 기억 극장」 최연숙 저자 강연회는 3월 사서 컬렉션 주제인 ‘우리의 역사’의 연계프로그램으로, 일제 강점기 시대의 역사를 배워보고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다. 또한, 지우고 싶은 기억을 그림으로 그리고 구겨버림으로써 부정적인 기억을 헤쳐 나가는 체험활동도 진행할 예정이다. 참여 신청은 3월 2일(목) 오전10시부터 의정부과학도서관 홈페이지(https://www.uilib.go.kr/science/index.do)를 통해 신청하며, 기타 궁금한 점은 의정부과학도서관 홈페이지를 참고하거나 의정부과학도서관(031-828-8683)으로 문의하면 된다.
    • Daily
    2023-02-23
  • [기고문] 꿈 너머의 꿈
    [GN뉴스=경기도]청연=기고문 꿈 너머의 꿈 누구나 살면서 소망하는 것이나 목표가 있다. 부자로 사는 것, 좋은 배우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정말 가슴 뛰는 일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공부를 많이 해서 세상에 자신의 지혜를 펼치는 것, 약한 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 등 무수히 많은 소망과 목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소망을 포기하거나 목표를 잃어버리며 산다. 먹고살기에 바빠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면 잠시 멈춰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이 온 길을 뒤 돌아보고, 목적지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는지, 아니면 목표는 잘 잡았는데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약 목표가 없거나 목표를 잘못 잡았다면 목표를 다시 잡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목표를 이루고 나서 그 이후를 생각하는 긍극(窮極)의 목표인 꿈 너머의 꿈을 꿔야 삶을 잘 살았다는 평가를 스스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서 꿈 너머의 꿈을 꾼다는 것은 인생의 최종 목적을 찾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거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인생의 목적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꿈이 있다면 그 꿈 너머의 꿈을 찾아가야만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또한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도 결코 삶을 잘 살았다 할 수 없다.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가 자신만 잘 살려고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살면, 어느 순간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인생이라는 것이 행복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불행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산다면 그것이 행복한 것이고 불행한 일을 당했다고 해서 잘 못 살았다 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해 이루더라도 그 목표 너머에 다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공허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목표는 일회성으로 완성할 수 있는 그런 목표도 아니고, 산을 정복하는 것처럼 끝이 존재하는 목표도 아니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세상을 구하고, 인류를 위해 헌신하라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 위에 목적을 찾아야 하는 것이 그 이유다. 그 목적을 알고 찾으려고 노력하면 삶의 의미도 발견할 수 있고, 무엇을 하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인지도 알 수 있게 될 수 있다. 세상에 온 이유를 꼭 알아야만 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냥 태어나서 본능적으로 살다가 죽는다면 뭔가 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꿈 너머의 꿈이 막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자신이 꿈꿔왔던 것을 잊어 버린 상태가 오랜 시간 지속되면 생각대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을 하고 살기에 삶이 단조로울 수도 있고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잊고 있던 지난날의 꿈을 마음의 서랍에서 꺼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그 꿈을 향해 자신의 지난 세월들을 돌이켜 보자. 그리고 늦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꿈을 향해 도전해 보자. 자신이 생각해 왔던 꿈이 기억속에 잠시 지워진 것은 꿈 너머의 꿈을 꾸지 않아서 그랬다는 것을 명심하고 자신의 꿈을 찾아 다시 한번 떠나 보자.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 앙드레 말로 - ‘꿈은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당신의 운명을 비춰준다.’ - 칼 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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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07
  • 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 7편
    [GN뉴스=경기도]이성아 기자=유튜브 뉴스 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 일곱 번째 시간입니다.저번 시간에 이어 고전 낭만주의의 대표 음악가 요하네스 브람스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1850년 무렵 이미 리스트와 바그너가 주도하는 ‘신독일 악파’와 슈만이 대표하는 ‘보수 주의 악파’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브람스에 대한 슈만의 격찬은 ‘신독일 악파’쪽 음악가들에겐 마땅치 않은 반응을 얻고 있었지만 리스트는 브람스의 음악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그러나 브람스는 자의식적인 모더니스트들이라 생각했던 ‘신독일 악파’에게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이때부터 브람스는 ‘신독일 악파’와 ‘보수 주의 악파’의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고, 그의 인생에서 대부분의 혼란은 이러한 상황에서 비롯되게 됩니다.‘신독일 악파’ 그룹에는 영향력을 지닌 당대의 문장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슈만과 그의 지인이 창간하였으나 1845년 이후 ‘신독일 악파’ 추종자인 브렌델(F. Brendel)에게로 책임 편집자 자리가 넘어간 음악 신보(NeueZeitschrift für Musik)를 중심으로 해서 ‘신독일 악파’의 대외적인 창구로 삼아 리스트의 ‘교향시’와 바그너의 ‘음악극’을 적극 옹호하며, 그 밖의 음악 장르는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해버렸습니다. ‘신독일 악파’와 ‘보수 주의 악파’ 그룹의 대결은 두 가지의 국면을 갖습니다.첫 번째는 리스트와 ‘프로그램 음악’이 논쟁의 핵심에 서 있던 시기였고;두 번째는 리스트가 1861년에 바이마르에서 로마로 거주지를 옮기고 나서부터였습니다.이때부터는 바그너의 작품이 논쟁의 전면에 부상하게 되는데 이 논쟁은 1876년 브람스가 교향곡 1번을 작곡하여 대중 앞에 선보이면서, 교향곡이라는 장르와 교향악적 양식이 마치 새롭게 기초가 건설되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그러나 19세기 말에 이르러 이들 두 그룹의 싸움은 유야무야되었는데요 두 그룹에 속했던 음악가들과 이들을 지지하던 청중들이 상대방의 작품을 긍정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850년 슈만 부부와 첫 조우 이후 브람스는 점차 슈만의 가족들과도 가까워졌으며, 1854년 슈만이 처음 정신질환을 앓았을 때에는 클라라 슈만을 도와 슈만의 가정 사정을 살피게 됩니다.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그의 음악이 왜 비 오는 날이나 늦은 가을에 감상하기에 알맞은지, 왜 그토록 애절하고 우울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작곡가들은 수많은 러브스토리를 만들어 냈지만 특히 브람스처럼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평생 해바라기같이 한 여인을 바라보며 가슴 앓이를 한 작곡가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슈만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예술가로서의 압박감도 매우 크게 느끼고 있었으며 사교적이지도 못했습니다.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었고 그로 인해 정서적으로 피폐해지면서 이전부터 조금씩 엿보이던 우울증은 환청, 환각 등의 정신분열증 세로 악화되어 갔습니다. 정신병으로 자살한 13세 위의 누나와 슈만처럼 정신 병동에서 생을 마친 슈만의 차남을 유추해 보면, 그의 정신병은 외부 요인보다는 집안 내력으로 인한 유전적인 질병이 아니었나 하고 전해집니다.망상과 환청에 시달리며 심령술에 의지한 슈만은 결국 1853년 11월 뒤셀도르프 관현악단 지휘자 자리를 그만두게 되었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클라라 혼자서 버는 연주비와 레슨비로는 6명이나 되는 자녀들의 양육비와 슈만의 치료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이 무렵에 듬직한 젊은 독일 청년, 브람스가 추천장을 들고 그의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슈만은 브람스가 작곡한 곡에 감탄하면서 그의 평론지 ‘음악 신보’에 극찬을 하여 브람스를 음악계에 크게 알린 얼마 뒤 라인강에 투신을 하였지만 다행히 지나는 고깃배에 의해 목숨은 건질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짐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슈만은 자진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당시 클라라의 일기에는 ‘슈만의 음악을 연주하며 그의 숨결을 느꼈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온몸이 그의 음악 속에 녹아내리는 듯하다’라고 슈만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투신 소동 이후 여섯 아이의 엄마이자 임신부였던 클라라가 힘들게 생계를 꾸려가는 것을 본 브람스는 가족의 일원인 듯 슈만 가족을 성심성의껏 돌보았습니다.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꿈에 그리던 여성상이었고, 자신의 작품을 가장 완벽하게 해석하고 연주해 주는 거장이었습니다. 브람스는 어느새 사랑이 된 클라라에게 편지를 쓰게 됩니다.“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이란 단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사용해 당신을 불러보고 싶습니다.”그러나 클라라에게는 당장 슈만의 병원비와 갓 출산한 자녀를 포함해 7자녀의 양육 문제도 벅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주 기획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더 컸을 것입니다. 그의 일기에 나타나듯이 항상 슈만의 음악과 함께했기 때문에 외로움이나 정서적인 공허함도 느끼지 않았던 클라라는 브람스의 사랑을 완곡하게 거절하고 슈만의 아내로만 살기를 원했습니다.브람스는 슈만보다는 23세, 클라라보다는 14세 연하로 ‘연적’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어린 나이였습니다. 클라라에게 열렬한 사랑 편지를 보내고서 겨우 2년이 지난 1858년, 25세의 브람스는 괴팅겐 대학교수의 딸이자 명망가 출신의 아가테 폰 지볼테(1835~1909)와 약혼을 하게 됩니다.적극적으로 구애하던 브람스는 성악을 공부하던 아가테를 위해 ‘8개의 노래와 로맨스-작품 번호 14’와 ‘5개의 시-작품 번호 19’를 작곡하기까지 하지만 결혼 일정을 잡아야 하는 시기에 이르자 브람스는 사랑은 하지만 속박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돌연 파혼을 선언합니다.갑자기 파혼을 당한 아가테는 심한 충격에 빠져 10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결혼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후 브람스는 클라라의 셋째 딸인 율리와 사랑에 빠지지만, 1869년 율리는 이탈리아의 마름모 리트 백작과 결혼을 했고, 브람스는 이 황량한 마음을 담아 ‘알토 랩소디’를 작곡합니다.일부에선 클라라가 브람스와 율리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가족을 위해 헌신한 클라라가 둘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갑자기 파혼을 선언할 정도로 구속당하기 싫어하는 성향의 남자를, 더구나 이전 연주여행 동안 수많은 남자 음악가의 자유연애 행각을 접한 클라라가 딸의 평생 배필로 브람스를 인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곱 아이의 양육비와 투병생활 끝에 사망한 남편을 떠올리면 클라라에게 작곡가 사위는 달갑지 않았을 것이었습니다.클라라는 슈만이 정신병원에서 사망한 1856년부터 40년 동안 슈만 부인으로 남아 슈만과 브람스의 작품을 연주하면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음악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그녀의 연주에 단골 레퍼토리가 된다는 것은 브람스에게는 대단한 영광이었을 것입니다.클라라가 위독하다는 비보를 접하고 40시간 동안 달려왔지만 결국 임종을 지키지 못한 브람스는 그의 죽음을 누구보다 비통해했고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었고 가장 위대했던 가치였으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잃어버렸다”라며 탄식했다고 합니다.클라라는 77년 생애 중 16년의 결혼생활 동안 슈만을 사랑했고, 43년간 브람스와 만나면서 그들은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 되었다. 브람스의 음악은 독일 음악의 전통을 존중하며 견고한 구성감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주의적인 단순한 것이 아니라, 매우 풍부하고 다양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어쩌면 브람스의 음악은 클라파로 인해 만들어진 클라라가 남긴 유품일 수도 있겠습니다.1857~60년 브람스는 데트몰트 궁정과 괴팅겐 궁정 사이를 옮겨 다니며 피아노를 가르치고 합창단을 지휘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1859년에는 함부르크에 있는 여성합창단의 지휘자로도 임명이 되게 됩니다.그러한 직책들은 그에게 유용한 실제 경험을 제공했으며, 자신에게도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었습니다.정서적 갈등이 어느 정도 해결되자, 그의 창작은 날로 활발해져 갔습니다.1861년경 함부르크로 돌아간 그는 다음 해에 빈을 처음 방문하여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1863년 빈에 정착하여 아마추어 합창단 체인 '징아카데미'(Singakademie)의 감독이 되었고 그곳에서의 생활은 연주회의 성공과 실패 사이의 기복, 자신의 급한 성격으로 인한 언쟁, 그의 지지자와 바그너·브루크너 지지자 사이의 극심한 대립, 그리고 이루지 못한 1~2건의 연애사건 등의 소란을 제외한다면 전반적으로 평이하고 조용한 것이었습니다.몇 번의 실패와 바그너 주의자들의 지속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은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으며 그의 명성 또한 점점 높아져갔습니다. 빈에서 두 가지 직책을 가지고 있는 동안 브람스의 작품은 전성기를 맞았으며 그의 가장 중요한 몇몇 작품들이 이때 작곡되었습니다.1868년에는 그의 가장 유명한 합창 작품인 독일 진혼곡(Ein Deutsches Requiem)이 완성되었는데, 브레멘에서 이 작품이 초연되었을 당시, 청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 후 독일 전역에서 연주되게 됩니다.지금도 19세기 합창음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의 하나로 간주되는 이 작품으로 브람스는 독일 작곡가들 중 선봉에 있습니다.1872년경 그는 '음악동호인 협회'의 총지휘자가 되었으며 3시즌 동안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었습니다.그가 선택한 곡목들은 기대했던 것만큼 보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지휘했던 작품 가운데는 베를리오즈의 이탈리아의 아롤드(Harold en Italie)가 포함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비록 '브람스 주의자'들은 바그너에 대한 그들의 투쟁을 계속했지만 브람스 자신은 항상 그의 경쟁자에 대해 경의를 표했습니다.다음 시간도 브람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텐데요, 다양한 그의 작품세계와 후세의 평가 그리고 말년의 브람스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이번 시간에 들려드릴 곡은Brahms /String Sextet Op18 ll. Andante ma moderato브람스 현악 6중주 1번 2악장으로 일명 <브람스의 눈물>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곡입니다.이 곡은 '라 폴리아 ' 변주라고도 하는데 브람스가 평생을 사랑했던 스승 슈만의 부인'클라라'를 향한 사랑과 애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곡입니다.브람스 음악의 본바탕은 실내악에 잘 나타나 있는데 모두 24곡으로 그는 화려하고 크게 장식적인 것을 피했습니다. 브람스는 기본적인 현악 4중주에다 다시금 비올라와 첼로를 첨가시켜 현악 6중주를작곡했는데 <1>번은 1859년 가을부터 다음 해 여름에 걸쳐 작곡했으며, 전원적이고 밝은 기운으로 가득한 명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현악 6중주는 단 2곡으로 1번은 그의 생애를 통해 가장 행복하고 큰 성과를 이루고 있을 시기의 작품이며 따라서 즐겁고 행복하며 젊고 정열이 넘쳐흐르고 있습니다.그중 2악장은 진지하고 무거운 남자가 눈물을 흘리듯 굵고 묵직한 선율이 흘러나옵니다.아울러 신성하고 색채가 풍부하며 음향적인 데다가 단순하고 민요풍의 선율이 풍성합니다. 브람스는 2악장을 피아노 3중주곡으로 편곡한 후, 클라라의 41번째 생일에 선물로 준 것으로 유명합니다.슈만이 세상을 떠난 뒤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사랑의 감정을 넘어 평생을 두고 좋은 스승이며, 친구이며, 조언자로써 남았습니다.그런 젊은 시절의 사랑을 평생 가슴에 묻고 지낸 그이기에 브람스의 음악은 남자의 마음을 잘 대변하는 음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브람스의 눈물'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듣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브람스의 현악 6중주 1번 2악장... 함께 감상해 보겠습니다. [신동아 2012년 6월 호 클라라가 사랑한 슈만, 클라라를 사랑한 브람스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신독일악파와 보수주의의 대립 (서양음악사 100장면, 2002. 7. 20., 박을미, 김용환) 참고.
    • 문화/예술/스포츠
    2023-01-27
  • [기고문]길었던 밤이 지나간 새벽에.
    [GN뉴스=경기도] 길었던 밤이 지나간 새벽에. 어느 늦은 가을날 무작정 카메라에 얇은 점퍼 하나 입고 떠난 짧은 여행길에서 아침 햇빛을 간절히 기다리던 새벽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단출한 여행자에게 밤의 찬 기운은 맨몸으로 맞서기에는 너무 힘든 벽이었습니다. 준비 없이 떠난 길이 무모했노라 후회도 했지만 당장 찾아온 밤을 지나가야 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둘러보면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많은 집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곳에는 따뜻한 공간과 정겨운 가족들이 있으니까요. 온 몸에 밀려오는 차가운 한기를 막아내려 버둥대는 몸부림으로 영원 같은 순간을 지나가는 밤은 너무 길고도 길었습니다. 까무러치듯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며 버텨낸 밤이 새벽으로 달려가고 어둠이 물러간 후 성냥팔이 소녀의 손에 들렸던 작은 불처럼 옅은 아침 햇살이 비칠 때 보는 것만으로도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그 긴 밤을 지나고 나니 햇살 한 조각 따스함이 얼마나 고마운 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되돌아보면 햇살뿐인가요? 아무런 감흥 없이 지나온 일상 속에서 감사해야 할 작지만 너무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작은 것들이 모여 행복이 되는 것을, 너무 욕심 부리지 않아도 넉넉한 것을 배우는 여행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미 많이 가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글. 정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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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
    2023-01-19
  • [기고문] 하늘 바람 별 그리고 물. 봄
    [GN뉴스=경기도] 하늘 바람 별 그리고 물. 봄 거실 창 앞에 겨울을 벌거숭이로 지나온 키 작은 배나무가 한그루 있습니다. 여름날 무성하던 잎은 어느 날부턴가 떨어지더니 채 겨울로 접어들기도 전에 모두 다 날아가고 앙상한 가지로만 이 추운 날들을 지나 왔습니다. 소복하게 쌓인 눈을 이불 삼아 인고의 시간을 견뎌냅니다. 지난 해 겨울이 다 끝나 갈 무렵 비가 내렸습니다. 밤사이 촉촉하게 적셔 땅이 숨 쉴 때 작은 배나무 가지에도 방울방울 빗물이 맺혔습니다. 창을 마주하고 바라보던 나의 눈가에도 촉촉한 눈물이 고였습니다. 앙상하게 볼품없이 서 있는 배나무가 고마웠습니다. 견뎌 내주었구나.……. 가느다란 가지가 애달팠는데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새 잎파리를 볼 수 있겠구나. 지금 어딘가에서 앙상한 배나무 가지처럼 이 겨울을 지나가고 있는 누군가에게, 우리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따뜻한 바람 불어오는 봄이 온다고. 말없는 배나무가 그랬듯이 당신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어서 응원 받고 있노라고. 당신의 봄을 기다립니다. 우리의 봄날을 기다립니다. 글. 정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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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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