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 Schubert | Symphony No.8 'Unfinished' D.759 - 1nd, 2nd
[GN뉴스=경기도]이성아 기자=유튜브 뉴스
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 열세 번째 시간입니다.
저번 시간에 이어 슈베르트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쇼팽이나 드뷔시 같은 작곡가는 하루 종일 피아노 앞에 앉아서도 곡을 한두 마디밖에 쓰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슈베르트의 작곡 방식은 매우 특별했습니다.
슈베르트는 레스토랑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도 갑자기 악상을 떠올리고 메뉴판이나 휴지 위에 음표를 그리는가 하면, 주변을 산책하다가도 악상이 떠오르면 수첩을 꺼내 작곡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런 자신의 작곡 스타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매일 아침 곡을 쓴다. 한 곡을 다 쓰면 곧바로 새로운 곡을 쓴다” 이러한 특별한 작곡 방식 덕에 3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을 했음에도 600여 곡의 가곡을 비롯해 9곡의 교향곡, 22곡의 피아노 소나타, 15곡의 현악 4중주 등 1000곡이 넘는 다수의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만 즉흥적으로 작품을 쓰다 보니 베토벤이나 브람스 같은 작곡가들에 비하면 구조나 형식 면에서 느슨하고 다소 엉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그런 면에서 형식미가 중요한 교향곡이나 소나타 작품은 가곡만큼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슈베르트 이 작곡 기법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조금 더 살았다면 감미로운 선율이나 탄탄한 형식까지 모두 갖춘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냈을 것입니다.
슈베르트는 키가 156cm의 작은 키와 곱슬머리였고 근시가 심해서 항상 안경을 썼습니다. 또 그는 와인을 무척이나 좋아해 과음을 자주 했고 그러다 보니 체형도 점점 뚱뚱해져 이런 슈베르트를 두고 친구들은 ‘작은 버섯(Schwammerl)’이라는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무척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무도회에서 피아노를 곧잘 연주를 하긴 했지만 자신이 춤을 추는 일은 결코 없었고 웃을 때도 환하게 웃지 못하고 웃음을 참는 듯 수줍게 미소만 지어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는 그에게 호감을 표하는 여성이 거의 없었습니다.
1814년 아버지 학교에서 임시교사로 일하고 있던 슈베르트가 16살이 되던 해 그에게 첫사랑이 찾아왔습니다
슈베르트가 활동하던 교회의 성가대에서 소프라노였던 테레제 그 로프였습니다.
교사 생활을 하며 읽었던 괴테의 시 '마왕' '들장미'를 읽고 그녀를 생각하며 작곡을 열심히 해서 이 시기 1815년 한 해에만 가곡 마왕, 들장미 등 114곡이나 되는 가곡을 남겼고 그가 남긴 가곡들 대부분은 테레제와의 사랑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수많은 명곡들은 안타깝게도 슈베르트에게 단 한 푼도 돈이 되어 돌아오지 못했고 평소 수줍음이 많았던 슈베르트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홀로 그녀를 위해 만든 음악만으로 사랑을 그려냈습니다. 테레제 역시 슈베르트를 좋아하긴 했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가난한 임시교사 슈베르트의 가정생활이 불안하다 판단해 결혼을 반대했고 결국 테레제는 1820년 슈베르트가 22살 때 빵 만드는 부자와 결혼해 가난한 천재 음악가 슈베르트를 떠났습니다.
슈베르트는 테레제와 이별 후 실연의 상처로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는데 또 돈이 없어 유통기한이 지나 싸게 처분하는 와인을 마구 사 먹다 보니 몸이 불어나 젊은 나이에 뚱뚱한 아저씨 몸매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슈베르트에게 또 다른 로맨스나 사랑이 찾아오는 일은 없었지만 주변에는 늘 좋은 친구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는 친구들과 나누는 우정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특유의 온화한 기질과 성품 덕분에 그는 낙천적이고 천진난만하며 악의나 질투 같은 어두운 감정이 없이 늘 유쾌하고 순수한 슈베르트를 친구들은 사랑했습니다.
슈베르트가 진로 문제로 아버지와 갈등을 겪은 후 집을 나와 방황할 때 프란츠 폰 쇼버가 자기 집의 방 한 칸을 내어주고 그곳에서 슈베르트는 본격적으로 음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쇼버는 재주가 많은 친구였습니다. 화가이자 시인이고 배우이다 보니 다방면으로 많은 친구들을 두었고 슈베르트의 음악을 무척 좋아했던 쇼버는 주변 친구들에게 슈베르트를 소개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슈베르트의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모임이 생겨나면서 ‘슈베르티아데’라는 모임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는데 말하자면 요즘의 인사들의 사교장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슈베르트는 좋은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행복한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그중 폰 쇼버와의 우정은 가장 특별했는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슈베르트가 방황하던 시기 자신의 집에 방을 내어주었고 쇼버가 쓴 시에 슈베르트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 쇼버는 빈 최고의 가수로 이름을 날리던 바리톤 미하엘 로 글을 슈베르트에게 소개해 주었고 로 글은 기회가 닿는 데로 슈베르트의 노래를 무대에 올려 슈베르트의 이름을 음악계에 알리는데 힘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쇼버는 배우이자 화가이면서 시인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항상 주변에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또 그는 밤의 향락을 즐기는데도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프란츠 폰 쇼버
쇼버는 슈베르트를 유흥과 향락의 세계로 이끌었고 한번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밤늦게까지 마신 뒤 홍등가를 드나들다 결국 매독에 걸리게 됩니다.
매독은 초기 증상이 없어 감염 여부를 인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슈베르트의 증세가 본격화된 건 감염이 된 지 2년이 지난 뒤인 1822년 12월, 그의 나이 25세였습니다.
머리에는 매독진이 생겨 삭발을 하여 가발을 쓰고 다녀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으며, 두통과 현기증에 시달렸습니다.
당시 이미 매독 3기에 접어들어 매 독균이 뇌까지 파고든 상황이었고 매독 말기 증세인 조울증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이 같은 정신질환은 슈베르트에게 창작을 하는 데 있어 큰 변화를 불러오게 됩니다. 차이코프스키와 슈만의 경우도 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앓았는데 조울증이 창작 능력을 고취시킨다는 연구도 결과를 증명이나 하듯 슈베르트는 연가곡 겨울 나그네 D.911, 현악4중주 14번 죽음과 소녀 D.810등 수많은 걸작을 만들어 냈습니다.
당시에 매독은 불치병으로 수은연고를 바르는 게 고작이었고 더 이상 병이 진전되지 않기를 바라는 게 전부였습니다. 슈베르트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기도 했습니다.
‘매일 밤마다 침대에서 눈을 감으며, 나는 매일 아침이 오지 않길 바란다’
슈베르트는 베토벤과 같은 동네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베토벤을 무척 존경했습니다.
슈베르트보다 27살 연상인 베토벤은 이미 슈베르트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최고의 작곡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고 베토벤에게 자신이 쓴 곡을 보이고 평가받고 싶었지만 수줍음이 많은 슈베르트는 용기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베토벤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내게 됩니다.
1827년 초, 침상 위에 누워있는 베토벤을 만나 자신의 가곡 악보를 건넸습니다.
베토벤은 슈베르트 가곡의 예술성과 완성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렇게 슈베르트를 격려했습니다.
‘자네 안에는 엄청나게 멋진 반짝이는 무엇인가가 있군’
존경하던 대가의 격려에 감동했지만 죽음을 앞둔 베토벤의 모습에 깊은 슬픔을 느꼈고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보라는 베토벤의 말에 비탄에 잠겨 허둥 지동 그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며칠 뒤 베토벤은 세상을 떠났고 슈베르트는 관이 운구될 때 옆에서 횃불을 들고 베토벤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습니다.
결국 1828년 11월 19일, 혼수상태에 빠진 슈베르트는 공무원이던 둘째 형 페르디난트의 집에서 31살이라는 너무도 젊은 나이에 위대한 작곡가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8개월 뒤였습니다.
마지막에 그는 속이 메스꺼워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구토만 반복하는 고통 속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의미 없는 말만 계속 내뱉었습니다. 매독성 뇌 질환 증세를 앓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슈베르트의 가족들은 공식적으로 그의 사인을 신경열, 즉 장티푸스로 기록했습니다.
사회적으로 공개하기 꺼리는 병인 매독을 사인으로 밝히긴 어려웠을 것입니다.
혼수상태였을 때 슈베르트는 "묻히는...... 건... 싫어... 홀로 있는 건 싫어......"라고 중얼거리자 곁에 있던 페르디난트가 "프란츠, 모두 널 걱정하여 모였단다. 걱정 마라."라고 말하자 갑자기 그는
“하지만 여긴 베토벤이 없잖아"라며 마지막까지 베토벤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사후 슈베르트의 바람대로 형 페르디난트와 친구들이 시신을 그가 그토록 존경하던 베토벤이 묻힌 빈 벨링크 공동묘지에서 안장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했고, 슈베르트의 후원자이자 당시 빈 음악계의 큰손이며 법률가였던 레오폴트 폰 존 라이트너가 '20년 아니, 10년만 더 살았더라면 베토벤 못지않게 유명한 음악가가 되었을 위대한 인물.'이라고 적극 옹호하고 생전의 베토벤 씨도 잠깐 만났음에도 그를 인정했던 만큼, 곁에 묻히면 무척 기뻐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힘을 써준 덕분에 시당국의 승인을 받아 베토벤의 바로 옆에서 영면하게 되었습니다.
왼쪽 베토벤 묘비 중앙 모차르트기념비 오른쪽 슈베르트 묘비
아이러니하게도 슈베르트를 밤의 향락으로 이끌었던 친구 쇼버는 86세까지 장수를 누렸다고 합니다.
천재 음악가들의 아주 사적인 음악세계 - 스토리 클래식 오수현 지음 / 참고
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 열세 번째 감상하실 작품은
프란츠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F. Schubert | Symphony No.8 'Unfinished' D.759) 입니다.
이 곡은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곡으로 1악장의 1주제와 2주제는 어디에선가 들어본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미완성 교향곡"이라는 제목이 나오면 보통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정도라고 합니다.
1악장과 2악장만 완성되었고, 3악장은 120마디 정도의 초고만 남아있을 뿐이며, 4악장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완성으로 남게 된 이유에 대한 여러 주장들이 있지만 모리스 브라운의 주장에 따르면 1822년 말 슈베르트가 병을 얻어 그렇지 않아도 감수성마저 예민했던 젊은이에게 어려움이 겹쳐 교향곡을 끝맺지 못했다는 추측 등 여러 주장들이 있습니다.
이 곡의 분위기는 투명하고 청순합니다. 아름다운 선율이 풍부하고 화성과 음색의 무한한 기교가 신선한 점 등으로 슈베르트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훌륭할 뿐만 아니라 초기 낭만파 음악의 큰 금자탑이 되었습니다. 서정시 같은 교향곡으로 음악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이 미완성 교향곡은 훗날 브람스, 브루크너, 말러 교향곡 등에서 그 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1악장(Allegro Moderato-적당히 빠르게)은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암울한 선율과 바이올린의 가녀린 떨림이 어우러지면서 슈베르트의 고뇌와 비애가 어둡게 집약되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의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제2악장(Andante con Moto-안단테보다 조금 빠르게, 그러나 활기 있게)은 수채화처럼 투명하고 서정적인 선율과 평화로운 전원을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난 후 꺼질 듯 이어지는 애절한 피날레는 왠지 모르게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눈을 감고 이 곡을 듣고 있으면 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처럼 평생 고독하게 떠돌다가 31세에 삶을 마감한 천재 작곡가의 비운이 전해옵니다.
곡이 좀 길어서 1악장만 올릴까도 생각해 봤지만 2악장까지 소개해드리고 싶어 모두 올려드렸습니다. 시간 나실 때 나누어 들어도 좋을 듯합니다.^^
어느새 낮 시간에는 땀이 흐를 정도로 더위도 느껴집니다. 봄이 훌쩍 이렇게 가려나 싶은 게 좀 아쉽기도 하고요...
밤낮의 기온차가 많이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건강에 더 신경 쓰시길 바랍니다^^
출처 : 의사신문(http://www.doctorstimes.com)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