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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편집 2024-05-04(토)
 
  • 즉흥환상곡 Fantasy-Impromptu, op.66 , 녹턴(야상곡) Chopin Nocturne Op.9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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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뉴스=경기도]이성아 기자=유튜브 뉴스

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저번 시간에 이어 쇼팽에 대해 이야기해 볼 텐데요...

쇼팽은 그의 음악은 대부분이 피아노를 위한 곡만을 작곡했습니다. 가곡이나 다른 악기를 주제로 한 작품들도 있긴 했지만 피아노 곡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쇼팽이 활동할 당시에는 낭만주의 음악의 시대였음에도 쇼팽은 자신의 음악이 낭만주의로 평가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초기에는 일부 사람들에겐 낭만주의자로도 인정받지도 못했었다고 합니다. 대담한 전조나 당시 절대적으로 기피됐던 불협화음, 생소한 기교 등은 그를 음악사에서 완전한 돌연변이로 만들다시피 했고 심지어 그를 제대로 된 음악교육도 받지 못한 아마추어 음악가로 오해하고 착각하게 만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엔 쇼팽이 낭만주의 작품의 대명사처럼 불리며, 대중들이 가장 잘 아는 낭만주의 피아노 작곡가 중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피아노로 다양한 음색을 구현하기 위해 페달을 기능적으로 사용하여 장식음으로 활용하고 이를 선율의 하나로서 취급한 루바토 기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표현적인 목적을 위해서 반주의 리듬은 엄격하게 지키는 반면 선율의 리듬에서 약간의 융통성을 허용하는 미묘한 기법)

쇼팽의 작품들은 생전에는 대중에게 크게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피아노가 중산층 가정에 빠르게 보급되던 시점이었지만 아직 라디오, 전축이 나오기 이전이었고 피아노가 오늘날의 오디오 기기 역할까지 도맡던 상황이었기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보 업계에서 원하던 피아노 곡은 가볍고 경쾌하면서도 아마추어들도 어렵지 않게 연주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쇼팽은 당시 악보 업계에서 원하던 종류의 곡을 작곡하기보다는 내면성, 주제의 변형, 반음계주의, 자유자재로 변형한 화성 진행 등 해석을 중시하는 비전통적인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동시대의 작곡가이자 쇼팽의 동료이기도 했던 리스트의 음악에 비해 난이도 면에서는 왠지 모르게 어렵다는 평가를 하지 않는 듯하지만 리스트와는 다르게 왠지 어렵게 들리지는 않으나 상당히 어려운 곡들이 많다.
리스트는 쇼팽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보고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살롱계에서 살길을 마련하도록 애썼으며 쇼팽을 평생 존경했다고 합니다. 쇼팽도 리스트의 연주를 높이 평가해서 자신의 에튀드를 그에게 헌정하기도 했지만 리스트의 작곡 실력을 높게 쳐주지 않았고 그의 작곡 능력에 대해 0점이라고 하거나 남의 말을 타고 높은 산을 정복한다고 비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리스트를 내심 꽤나 신뢰하였는지 연주회를 기피하는 쇼팽이었지만 리스트와 함께 여러 번 무대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쇼팽은 자신의 아파트 열쇠를 리스트에게 맡기기도 했었는데 리스트는 애정행각을 벌이는 용도로 쇼팽의 아파트를 사용했고 이 사건으로 인해 리스트와 쇼팽의 사이가 멀어졌다고 추측하는 이들도 꽤나 있었으나 이것으로 당장 절교를하진 않았다고 합니다.


쇼팽은 생전에 신랄한 입담으로 유명했던 듯합니다. 워낙 타인에게 음악적 영향을 안 받기도 했고 깐깐했기도 했지만, 베를리오즈에 대해서는 "잉크를 여기저기 튀기면서 작곡한다"라고 험담을 했고, 19세기의 아이돌이나 다름없던 리스트에 대해서는 "쟤는 나중에 어느 나라의 왕이나 국회의원이 되겠지"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누군가 리스트는 쇼팽에게 왕국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고 하자 "리스트의 제국 안에 있는 작은 왕국이겠지"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험담의 주인공인 베를리오즈와 리스트는 쇼팽의 음악에 대해 여러 칭찬을 남겼습니다.


쇼팽은 자신의 일생 동안 바흐와 모차르트를 가장 존경하며 추종했다고 합니다.
세계 음악 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인 바흐와 모차르트가 작곡한 곡의 치밀함과 완성도처럼 쇼팽의 곡도 구조적으로 짜임새가 있고 한 음이라도 틀릴 경우 바로 티가 날 정도로 섬세하고 치밀합니다.


바흐의 아주 완벽한 음악 체계를 자신의 음악으로 끌고 와서 새로운 피아노 테크닉을 만들어냈는데, 오죽하면 자신의 제자들에게 “손가락 연습을 하려면 바흐의 곡을 통해 테크닉을 기르라”라고 말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모차르트의 영향력도 이에 못지않았는데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 나오는 아리아 내게 손을 주렴(La ci darem la mano)이라는 곡을 자신이 피아노 변주곡(Variations)으로 새롭게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모차르트의 완벽하고 천재적인 음악성은 쇼팽의 피아노 창작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유명한 쇼팽의 어록 중 하나가 “모차르트는 음악 창작에 있어 전 영역을 아우르지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내 부족한 머리로 이 건반에 손을 대는 것일 뿐이다.”입니다.
또한, 자신의 장례식에 반드시 단 하나의 곡을 연주해달라고 지인들에게 유언 같은 부탁을 했는데요 그 곡이 바로 모차르트의 레퀴엠입니다.

쇼팽이 사망하고 나서 약 3,000여 명이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그 가운데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연주되었습니다. 이처럼 쇼팽은 음악 창작과 자신의 일생에 있어 바흐와 모차르트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폴란드 침공 때 있었던 폴란드군과 독일군의 바르샤바 공방전 기간 동안, 바르샤바 방송국은 확성기와 스피커를 통해 쇼팽의 음악들을 큰 소리로 도시 전역에 송출했다고 합니다. 나라가 위기에 빠진 절체절명의 순간,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 시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던 셈인데요. 폴란드인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결국 바르샤바는 독일군에게 점령당했다. 그리고 바르샤바 방송국을 점령한 독일군은 바르샤바가 독일의 지배하에 들어갔다는 뜻에서 독일의 음악가 바그너의 곡을 송출했습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폴란드가 독일의 손에 넘어가 있을 때, 쇼팽의 음악을 연주하면 처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혁명을 열렬히 지지했던 쇼팽은 혁명을 열렬히 지지했던 쇼팽은 1831년 여행 중 혁명 좌절의 소식을 접하고 비분과 절망으로 크게 상심하여 귀국을 단념하고 망명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러시아의 지배가 계속되는 한 귀국하지 않기로 결심한 쇼팽은 죽을 때까지 조국의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쇼팽의 열려한 애국자로서의 모습은 그의 삶과 음악세계 면면에 드러나 있습니다.
조르주 상드(G. Sand)에 따르면 쇼팽은 “폴란드보다 더 폴란드적”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파리에서 프랑스인, 독일인 등 많은 외국인 예술가와 교류하면서도 그는 폴란드어를 고집했습니다. 

쇼팽이 남긴 수백 통의 편지는 모두 폴란드어로 쓰였으며, 그가 자신의 곡에 붙인 텍스트는 단 한 편의 예외도 없이 모두 폴란드어로 작성돼었습니다. 쇼팽은 프랑스식 이름과 프랑스 여권을 사용했지만, 그것은 폴란드를 지배하는 러시아에 자신의 신원을 확인하는 역할을 맡기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쇼팽의 첫 곡은 폴포네이즈이고 마지막 곡은 마주르카입니다. 폴포네이즈와 마주르카는 둘 다 폴란드의 전통 춤곡 입니다. 이처럼 쇼팽은 그의 음악에서도 드러나듯이 폴란드를 사랑한 뼛속까지 폴란드인이었으며 그 자긍심은 대단했습니다.


위대한 작고가 쇼팽의 업적을 기념하는 여러 가지들이 있는데요,
LOT 폴란드 항공의 바르샤바 허브 공항이 바르샤바 쇼팽 국제공항이 있습니다. 역시 쇼팽을 기리기 위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LOT의 제2허브인 부다페스트의 공항명은 쇼팽과 친했던 리스트의 이름을 본뜬 부다페스트 리스트 페렌츠 국제공항입니다.
또, 폴란드의 화폐 기념권과 옛날 구 권의 5,000즈워티(złoty)에도 쇼팽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쇼팽의 시신은 프랑스 페르 라셰즈 묘지에 있지만 그의 심장은 폴란드 바르샤바 성 십자가 성당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쇼팽의 시신에서 적출된 심장은 그의 누나인 루드비카가 고국으로 가져가 폴란드 성 십자가 성당 기둥에 묻었고, 쇼팽은 1894년 심장이 없는 상태로 프랑스 묘지에 묻혔습니다.
그리고 1927년에 시작되어 1955년부터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굉장히 권위 있고 명망 있는 대회라서 우승을 하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려 왔습니다.
아르헤리치, 폴리니, 부닌 등이 이 대회에서 우승해 유명 피아니스트로 거듭났으며, 임동혁, 임동민 형제는 2005년 2위 없는 공동 3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 조성진이 1위를 한국인 최초로 차지하였습니다.


폴란드가 사랑한 아니 전 세계가 사랑한 피아노의 시인 프레드리크 프랑수아 쇼팽,이번에 들려드릴 곡은 쇼팽을 대표하는 곡이라고 손꼽히는 곡 중

즉흥환상곡 Fantasy-Impromptu, op.66 과 녹턴(야상곡) Chopin Nocturne Op.9 No.1입니다.


첫 번째 들려드릴 즉흥환상곡 Fantasy-Impromptu, op.66
1834년 작곡해서 1855년에 출판된 피아노 연주곡입니다. 쇼팽의 즉흥곡 중 네 번째이며,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이지만 쇼팽은 즉흥곡 중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사후에 폐기해 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현제 쇼팽의 대표곡이 되었습니다.
이 곡은 A-B-A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강렬한 파도가 물결쳐 오르는 듯하다가 어느새 아련한 선율로 흐르다 다시 격렬해지는 마치 쇼팽 자신의 변덕스러운 감정을 표현한 듯합니다.


두 번째 곡 녹턴(야상곡) Chopin Nocturne Op.9 No.1

녹턴 op. 9는 총 3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830년에서 1832년 사이에 작곡이 되어 그해 출판되었습니다.
이 곡은 벨기에의 피아니스트인 마리 플레옐 에게 헌정되었다고 합니다.
순환적인 두 도막 형식(A-A-B-A-B-A-C)으로 되어 있고 마지막 코다인 C 부분이 추가됩니다.

주제 부분인 A, B 부분에서는 많은 음이 재현되며 장식적인 음이 많이 가미되었다. 특히 A에서는 여린 음으로 시작하여 부드러운 연주를 중시하며 우아한 음이 많이 내포되어 있다. 곡이 끝으로 치달을수록 A는 발전을 거듭하여 첫 부분보다 트릴과 잇단음표의 사용 빈도가 많아집니다.
곡에서 계속된 부드러운 음은 C 부분인 코다(한 악곡이나 악장, 또는 악곡 중의 큰 단락의 끝에 종결 효과를 강조하기 위하여 덧붙이는 부분)에서 격정적으로 변화하여 빠르기가 빨라진 후 화려한 트릴(2도 차이 나는 음 사이를 빠르게 전환하는 꾸밈음)이 전개되고 나서야 고요한 음으로 마칩니다.

모든 일생을 피아노에 바친 위대한 작곡가 프레드리크 프랑수아 쇼팽,
그의 위대한 피아노곡들을 함께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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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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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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