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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편집 2024-05-17(금)
 
  • Schubert: Schwanengesang, D. 957, NO4 Serenade/Auf dem Wasser zu singen, D.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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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뉴스=경기도]이성아 기자=유튜브 뉴스

 

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 열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작곡가는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t, 1797~1828)입니다.
슈베르트는 1797년 1월 31일 오후 1시 30분 오스트리아 빈 교외의 리히텐탈에서 요리사였던 어머니가 일하는 조그만 부엌에서 태어났습니다.

슈베르트의 아버지 프란츠 테오도어 슈베르트는 빈에 이주하여 보조교사로 시작해 능력을 인정받아 교사가 되고 후에 리히텐탈에서 자신의 학교를 설립하여 경영했습니다.

지금의 비엔나 누스도르퍼스트라쎄 54번지에 위치한 이 학교는 운동장이 크고 교실이 여러 개 있는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학교 개념이 아니라, 다세대주택과 같은 곳에 방 두 칸이 딸린 곳으로 가족들이 생활하는 집이자 학교였던 것입니다.


슈베르트가 네 살이 되었을 때 부모님은 근처의 죠일렌가쎄 3번지로 이사하여 더 많은 학생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빈손으로 비엔나에 와서 작으나마 스스로 학교를 세워 아이들 가르치는 것을 매우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노동계층의 자녀들이 다니는 이 학교는 오전·오후 반 각 100명의 어린아이들이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무려 열여섯 명이나 되는 자녀들 중 열세 번째로 태어난 슈베르트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즐겨 하던 집안의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배우게 되었고 저녁이면 함께 모여 현악 사중주를 연주했습니다.
음악을 사랑했던 아버지는 일찍부터 아들들에게 현악기를 쥐여주었습니다.

페르디난트와 이그 나츠, 두 형이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을 맡으면 아버지는 첼로를 들고 든든한 기둥 역할을 자처했고 막내인 프란츠 슈베르트는 비올라 담당이었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현악 사중주도 즐거웠지만 슈베르트가 보다 더 좋아하고 재능을 보인 음악은 따로 있었습니다.

슈베르트는 어린 시절 탁월한 미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808년 10월 1일, 열한 살(11세)의 슈베르트는 슈타트 콘빅트(Stadtkonvikt; 황실에서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을 했는데 입학시험 당시 수많은 아이들이 시험에 응시했고 아이들은 파란색의 헐렁한 옷을 입은 초라한 모습의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슈베르트를 비웃었지만, 슈베르트의 노래는 그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고 음악 이론에서도 뛰어난 성적으로 합격을 하게 됩니다.

슈베르트는 아름다운 목소리 덕분에 빈 소년 합창단 오디션에 응시하여 합창단원의 제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왕실에서 운영하는 소년 합창단에 들어가면 기숙사 생활은 물론이고 최고의 교육 기관인 빈 슈타트 콘빅트에서 국비 장학생으로 교육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집안에서 자녀를 교육하는데 이보다 더 탁월한 선택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를 했는데 그는 집을 떠나 기숙사에 생활하며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즐거움을알게 되었고, 슈타트 콘 보트에서 공부하며 평생의 벗이 될 소중한 친구들도 얻게 됩니다.


학창 시절에 궁정 오르간 연주자인 루치아와 궁정 악장이었고 모차르트의 음악적 경쟁자였던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로부터 음악 이론을 공부했으며, 학교 오케스트라에서는 제1 바이올린 주자로 콘서트마스터를 담당하기도 했고 독창회에 나가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슈베르트의 아버지는 어디까지나 취미나 여가활동, 향후 학교 교사로서의 교육 수업 차원에서 음악을 가르친 것이었지 슈베르트가 음악가가 되는 것을 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음악가가 되는 것을 반대하였고 학교 교사를 시키려고 하였지만 슈베르트는 음악가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1812년 15세가 되던 해 어머니 엘리자베스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고, 급히 집으로 갔으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깊은 절망감과 실의에 빠져있던 슈베르트에게 그제야 아버지는 원한다면 음악가가 돼도 좋다고 허락해 주었지만 변성기가 찾아오면서 소년 티를 벗은 슈베르트는 황실 기숙학교의 규칙상, 이러한 상태에서는 퇴실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일반 과목에서 성적이 월등히 나았기 때문에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으나 이것도 잠깐, 일반 과목의 수가 많아지자 작곡에 몰두할 수 없어 음악 작업을 하는 것도 여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 법은 징병제였기 때문에 일정 연령이 된 남성은 의무적으로 군대를 가야 했습니다. 슈베르트는 군대에 가는 것이 교사가 되는 것보다 더 싫었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교사가 되는 것뿐이었습니다.
음악 쪽으로 진로를 삼고 싶었던 슈베르트는 교사라는 직업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군대만큼은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1814년 17세가 되던 해 기숙학교를 나와 시에서 뽑는 보조교사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여 아버지의 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게 됩니다.


하루 9시간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 외의 시간은 자유롭게 작곡만 할 수 있어 나름 만족스러운 생활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음악 교사 생활을 시작은 했지만 그가 정말 원하는 삶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는 음악에 대한 갈망과 아버지와의 대립으로 집을 떠나 스스로 방랑의 길로 접어들었고 고독한 그의 삶엔 늘 시와 노래, 그리고 그런 슈베르트의 곁에는 그와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요, 연주할 수 있는 소규모 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작곡에 몰두할 수 있도록 후원하는 이도 생겨났습니다.

그 모임은 점점 활성화되어 1820년에는 화가, 작가, 배우, 그리고 법률가까지 다양한 젊은이들이 모여 슈베르트의 음악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 모임은 시와 문학, 그리고 미술에 대한 이야기까지 폭넓게 토론하는 자리가 되었는데, 이 모임이바로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입니다.

 

슈베르티아데는 ‘슈베르트의 밤’이란 뜻으로 친구들이 얼마나 그를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괴테와 뮐러의 시를 읽으며 전율했고, 시를 노래로 옮기며 가슴이 뛰었습니다. 친구들은 그의 노래의 첫 번째 청중이 되어주었고, 때로 아름다운 가사를 쓰며 음악 작업에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슈타트 콘빅트 재학 시절에 만나 평생의 후원가가 된 법률가 요제프 폰 슈파운(1788 ~ 1865), 그리고 고급 공무원이었지만 시를 쓰는 일을 더 좋아했던 마이어 호퍼(1787 ~ 1836), 슈베르티아데를 화폭에 담고, 오선지를 그려주던 화가 레오폴트 쿠펠비저(1796 ~ 1862), 친구가 아닌 아버지 또래이지만 부드럽고 중후한 목소리로 슈베르트 노래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 성악가 미하엘 포글(1768 ~ 1840), 극작가 에두아르트 폰 바우에른펠트(1802 ~ 1890), 작곡가 안젤름 휘텐브렌너(1794 ~ 1868), 그리고 수많은 방황의 밤을 함께 했던 영혼의 단짝 음악 애호가 프란츠 폰 쇼버와 화가 모리츠 폰 슈빈트(Moritz von Schwind)까지... 친구들이 있어 슈베르트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훗날 마이어 호퍼는 슈베르트와 함께한 시간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천장이 가라앉고, 맞은편 건물에 빛은 가리어지고,

낡은 피아노와 허술한 책장만 놓인 방에서 함께한 날들을 잊지 못한다.

시와 음악에 대한 사랑은 우리를 긴밀히이어주었고,


나는 시를 쓰고, 그는 작곡을 했다.


다음 시간에는 슈베르트의 사랑과 작품 그리고 베토벤과의 인연과 생의 마지막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 열두 번째 시간에 소개해 드릴 작품은
드라마 여름향기에 샘플링되어 깊은 여운을 주었던 프란츠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입니다.

세레나데는 슈베르트 백조의 노래 중 네 번째 곡(Schubert: Schwanengesang, D. 957, NO4 Serenade)입니다.
1826년 7월 초에 셰익스피어의 시에 곡을 붙인 3곡 중에 한 곡입니다.

슈베르트가 31세인 생의 마지막 해에 작곡한 유작으로서 독일 시인 루드비히 레슈탑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입니다. 가곡집<백조의 노래>중 제4곡에 수록되었으며 슈베르트가 사망한 후 그동안 발표하지 않았던 14곡을 묶어 그의 친구가 백조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습니다.

슈베르트의 최후의 작품이라는 점과 평상시엔 울지 않다가 죽기 직전 단 한 번 운다는 백조의 전설이 통하는 의미였기에 이 가곡집의 제목이 백조의 노래로 붙여졌다고 합니다.또한 이 곡은 슈베르트가 실연을 겪어 상심하고 있을 때 친구와 교외를 산책하다가 술집에 들러 맥주를 마셨는데 그때 셰익스피어의 시를 본 후 즉석에서 악상을 얻어 친구가 메뉴판 뒷면에 그려준 오선지에 작곡을 했다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보통의 세레나데는 사랑을 노래하지만 슈베르트는 내성적이고 어두운 성격의 소유자로 그는 이 세상에 흥겨운 노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세상을 고통스럽게 바라봤던 작곡가였습니다. 

그의 내성적 성격과 실연 등이 사랑스러운 세레나데가 아닌 비통하고 애조의 세레나데를 탄생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두 번째 감상하실 곡은 가곡의 왕이라고 불리는 슈베르트인 만큼 가곡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물 위에서 노래함 D.774 ( Auf dem Wasser zu singen, D.774)이라는 제목으로 일종의 뱃노래입니다.

흥겹게 흔들리는 조각배의 율동감 속에서 인생의 무상함이 아련한 저녁노을의 풍경과 함께 펼쳐지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A 플랫 단조로 시작해서 A 플랫 장조로 곡을 마무리했습니다.
3개의 연을 가진 시에 될 수 있는 대로 간명한 음형을 띄워 누구나 한 번만 들어도 기억할 만한 멜로디가 되풀이되는 형태로 곡을 만들었습니다. 마치 물결에 흔들리는 뱃전을 연상케 한 것 같습니다. 넘치거나 부족함 없는 간결한 멜로디를 듣노라면 짧은 시간 잠시 머문 천재 음악가의 작별의 노래 같은 생각도 듭니다.

 

Vocalist : 이 안 보스트 리치 Ian Bostridge / Piano:줄리어스 드레이크 Julius Drake

 

Mitten im Schimmer der spiegelnden Wellen
Gleitet, wie Schwane, der wankende Kahn :
거울 같은 수면, 그 반짝이는 물결 위로,
하얀 백조처럼, 조각배 흔들리며 미끄러져 간다.

Ach, auf der Freude sanftschimmernden Wellen
Gleitet die Seele dahin wie der Kahn;
아, 내 영혼도 그 부드럽게 반짝이는 물결,
그 기쁨의 물결 위로 조각배처럼 미끄러져간다.

Denn von dem Himmel herab auf die Wellen
Tanzet das Abendrot rund um den Kahn.
저녁노을 하늘로부터 수면으로 내려와 조각배를 감싸며 춤을 춘다.
Uber den Wipfeln des westlichen Haines
Winket uns freundlich der rotliche Schein;
서쪽 수풀의 나뭇가지들 위로는 붉은 햇살 다정하게 손짓하고,

Unter den Zweigen des ostlichen Haines
Sauselt der Kalmus im rotlichen Schein;
동쪽 수풀의 나뭇가지들 아래로는 푸른 창포들이 속살거린다.

Freude des Himmels und Ruhe des Haines
Atmet die Seel im errotenden Schein.
내 영혼 붉게 물드는 노을 속에 하늘의 기쁨, 숲의 고요를 호흡 하누나.

Ach, es entschwindet mit tauigem Flugel
Mir auf den wiegenden Wellen die Zeit;
아, 시간은 출렁이는 물결 위로 이슬 젖은 날개와 함께 사라져 간다.

Morgen entschwinde mit schimmerndem Flugel
Wieder wie gestern und heute die Zeit,
내일도, 어제와 오늘처럼, 시간은 다시 반짝이는 날개와 함께 사라져 가리.


Bis ich auf hoherem strahlendem Flugel
Selber entschwinde der wechselnden Zeit.
마침내 나 자신 시간의 부침 속에, 저 높게 빛나는 날개 위로 사라져 가리라.

어느새 두꺼운 외투가 부담스러울 만큼 따스한 봄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한낮의 햇살과 봄바람은 반갑지만 아침, 저녁 쌀쌀한 공기에 건강관리에도 신경 쓰시길 바라며,,,
슈베르트의 애잔하지만 부드러운 세레나데와 아련함이 느껴지는 슈베르트의 가곡,
함께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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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으로 가는 여행, 해설이 있는 음악회 12편-프란츠 페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t, 1797~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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